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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세 판사 "그만 두시라"는 동료와 소송전…美법원 종신직 논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오는 20일이면 96세가 되는 폴린 뉴먼 미국 연방순회항소법원 판사. 현직 미국 판사 가운데 최고령인 그의 사전에는 '정년'이란 말이 없다.

종신직인 미국 연방판사 특성상 한 번 임명되면 평생 현역 지위가 보장되기 때문이다. 사망하거나, 스스로 물러나거나 범죄 행위로 인해 탄핵당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오는 20일이면 96세가 되는 폴린 뉴먼(사진) 미국 연방순회항소법원 판사. 그는 최근 미국 법조계에서 판사 종신직 문제와 관련해 논쟁의 중심에 섰다. 로닷컴 홈페이지 캡처

오는 20일이면 96세가 되는 폴린 뉴먼(사진) 미국 연방순회항소법원 판사. 그는 최근 미국 법조계에서 판사 종신직 문제와 관련해 논쟁의 중심에 섰다. 로닷컴 홈페이지 캡처

뉴먼 판사는 100세 가까운 나이에도 백악관과 워싱턴 모뉴먼트가 내려다보이는 라파예트 광장의 사무실에 출근하고 있다. 약 40년간 법조계에서 일하며 특허와 지식재산권 분야의 '산 증인'이란 평판도 얻었다.

그런 그가 지난 4월 동료로부터 “물러나라”는 취지의 소송을 당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같은 연방순회항소법원 소속 킴벌리 무어 판사가 '사법 처리 및 장애법'을 근거로 "뉴먼은 심신 건강 문제로 직무수행에 부적합하다"는 내용의 소장을 미국 사법위원회에 제출했다. 통신은 "해당 법에 의거해 판사의 업무 적합성과 관련해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면서 "추후 법관에 대한 자진퇴직 요청 등 광범위한 조치가 취해진다"고 전했다.

이를 계기로 미국 법조계에서 ‘판사 종신제’ 논쟁에 불이 붙었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최근 보도했다. 뉴먼 판사가 지난달 자신을 고소한 무어 판사를 상대로 맞소송을 제기하며 "일을 그만 둘 수 없다"고 한 가운데 사법위원회는 뉴먼 판사의 거취와 관련해 내달 13일 비공개 청문회를 열기로 했다.

동료들은 뉴먼 판사의 업무 능력이 과거보다 줄었다고 평가했다. WP는 “뉴먼은 최근 5년간 시행된 법원 규칙을 잊거나 사망한 지 한참된 수석 판사를 언급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최근엔 온라인 보안교육을 이수하지 못했고, 컴퓨터에서 파일을 찾지 못할 때 “해커 탓”이라고 하는 등 컴퓨터를 다루는 능력이 떨어졌다는 의혹을 샀다. 지난 2월 이후 새 사건이 배정되지 않았는데도 기존 사건 해결에 진전이 없어 동료들의 불만이 높았다.

폴린 뉴먼 판사는 화학자로서의 경험을 살려 특허와 지적재산권에서 한 우물을 팠다. 국제법과 정의 기구 홈페이지 캡처

폴린 뉴먼 판사는 화학자로서의 경험을 살려 특허와 지적재산권에서 한 우물을 팠다. 국제법과 정의 기구 홈페이지 캡처

반면 뉴먼 측은 "사건 처리에 지장 없고 여느 동료처럼 생산적으로 일한다"고 주장했다. WP에 따르면 그는 판결문을 쓸 때 반대 의견을 주로 내왔기 때문에 업무처리에 상대적으로 시간이 더 걸린다는 주장을 펼쳤다. 뉴먼을 30년간 알고 지낸 변리사 제니스 뮐러는 WP에 "법조계에서 숙련된 반대자가 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역할"이라고 평했다.

뉴먼은 WP에 "동료들 말마따나 내가 정말 신체적·정신적으로 쇠약해졌다면 물러날 수도 있다"면서도 "하지만 지금대로라면 나는 충분히 기여할 수 있고 반드시 일해야 한다고 느낀다"고 강조했다.

WP는 "일각에선 자리에서 물러나지 않는 그를 '이기주의의 전형'이라며 비판하지만, 본인은 급격한 기술 변화의 세계인 특허·지재권 분야에서 자신의 오랜 경험과 안목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한다"고 전했다.

실제로 뉴먼은 미국 법조계에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애초 의사를 꿈꿨다가 여성 차별적인 분위기가 강했던 의학 대신 화학 전공을 택했고 컬럼비아대 석사, 예일대 박사 과정을 밟은 뒤 변리사 자격증을 땄다. 화학 분야에서도 성 차별 탓에 적절한 커리어를 찾지 못하자 뉴욕대 로스쿨을 거쳐 법조계에 투신했다.

폴린 뉴먼은 미국 법조계에서는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ISSUU 홈페이지 캡처

폴린 뉴먼은 미국 법조계에서는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ISSUU 홈페이지 캡처

1984년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에 의해 연방순회항소법원 판사로 임명된 뒤 특허와 지식재산권에서 한 우물을 팠다. 미국 언론은 "법원의 무지에 맞서 반대 의견을 많이 내온 뉴먼은 발명가들의 가장 큰 옹호자"라고 평가했다. 여성으로는 두 번째로 미국 대법관이 됐던 고(故)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대법관은 “뉴먼은 지성, 근면, 법에 대한 헌신으로 젊은 여성들에게 귀감이 된다”고 평했다.

한편 뉴먼의 장수는 집안 내력이기도 하다고 WP가 전했다. 그의 부모님은 90대까지 살았고, 여동생은 89세에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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