뽕짝 신세계 열고 K팝 신기록…250을 아직도 모르시나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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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3호 19면

[비욘드 스테이지] 대중음악계 평정한 프로듀서 250

올해 한국대중음악상 4관왕을 석권한 작곡가 겸 프로듀서 250. [사진 비스츠앤네이티브스]

올해 한국대중음악상 4관왕을 석권한 작곡가 겸 프로듀서 250. [사진 비스츠앤네이티브스]

‘뽕짝의 신세계’를 열고 ‘K팝의 신기록’도 세웠다. 장르 불문 대중음악계를 평정한 작곡가 겸 프로듀서 250(이오공·본명 이호형·41) 얘기다. ‘고속도로 황태자’ 이박사의 왕좌를 강탈한 개인 음반 ‘뽕’과 K팝의 빌보드 역사를 새로 쓴 걸그룹 뉴진스라는 극과 극 스타일의 음악으로 지난 3월 한국대중음악상을 휩쓸었다. 개인 자격으로 올해의 음반, 올해의 음악인 등 4관왕에 올랐고, 그가 프로듀싱한 뉴진스는 올해의 신인, 최우수 K팝 음반 등 3관왕이 됐다.

프로듀싱한 뉴진스도 3관왕

그런 그가 6월 일본 투어에 나서고, 7월에는 ‘아직도 모르시나요’라는 자신의 브랜드를 건 공연까지 한다고 해서 만남을 청했다. 궁금한 게 많았다. ‘미스 트롯’ ‘미스터 트롯’ 등 트로트 열풍이 불기 한참 전인 2015년부터 뽕짝과 EDM(일렉트로닉 댄스 뮤직)을 절묘하게 블렌딩한 앨범 ‘뽕’을 만들기 위해 무려 7년간 공들인 기록이 유튜브 다큐멘터리 ‘뽕을 찾아서’에 담겨 있다. 2018년 같은 브랜드의 공연을 했을 때는 관객이 썰물처럼 빠져 나갔다지만 몇 년 새 세상은 트로트 천하가 됐고, 두 번째 ‘아직도 모르시나요’(7월 15일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는 오픈 직후 매진됐다. 250은 이런 세상을 예감했을까.

“전혀요. 앨범 작업할 땐 음악을 얼마나 완성도 있는 수준으로 만들 것인가만 생각했죠. 그러다 트로트 열풍을 만났는데, 그저 시장이 드러나는 거라 생각했어요. 전에도 유명 트로트 가수가 지방에서 공연하면 웬만하면 매진되곤 했거든요. 우리가 아는 차트나 방송에서 드러나지 않던 시장이 매체의 조명을 받고, 실제로 얼마나 큰 시장인지 알려진 것이죠.”

250의 대표곡 ‘뱅버스’의 싱글 앨범 커버. [사진 비스츠앤네이티브스]

250의 대표곡 ‘뱅버스’의 싱글 앨범 커버. [사진 비스츠앤네이티브스]

가수가 아닌 프로듀서가 자기 이름을 걸고 음반을 내는 것부터 이례적인 일인데, 왜 하필 ‘뽕’이었을까. “유행 타고 흘러가는 음악에 비해 뽕짝은 예나 지금이나 계속 있는 이 시대의 클래식이 아닐까 싶었거든요. ‘뽕짝’이라는 형식은 한국인에게 영원한 대중음악이고, ‘뽕끼’라는 것도 한국인에게 영원한 코어같은 정서라 생각해요. 그러니 한국에서 음악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뽕’부터 시작해야 할 텐데, 아무도 안 하고 있었기 때문에 제가 당연하게 시작했어요.”

트로트를 정식으로 연구하는 학자는 더러 있지만, 적어도 그는 ‘뽕’에 대해 가장 진지한 뮤지션일 듯하다. 다큐멘터리를 보면 B급 바이브를 가장하고 있지만, 뽕의 DNA를 찾아 헤매는 인류학적 탐구라 할 만하다. 뽕의 정수를 시각화한 대표곡 ‘뱅버스’ 뮤직비디오는 국제 영화제에서 수상할 정도로 공을 들였다. 가장 유행에 민감한 대중음악 뮤지션이 웬 장인정신인지 몰라도, 고정관념 따위 집어던지고 예술혼을 제대로 갈아 만든 앨범이라 하겠다.

“정확히는 뽕짝음악도 아니고 ‘뽕’이라는 한 글자에서 떠오르는 것들을 담아내고 싶었어요. 대체 뽕이 뭔지 내가 납득할 수 있어야 음악에 적용할 수 있으니까요. 연구자들을 찾아다니기도 했는데, 그분들 말씀에 나름 힘을 얻었어요. 뽕의 정서가 외국 음악에도 있는 보편적인 감정 영역에 속한다니, 내가 이상한 짓 하는 건 아니구나 싶었죠.(웃음)”

‘21세기적 뽕짝’을 실제로 구현하는 작업은 90년대 ‘이박사 뽕짝’을 극복하는 지난한 과정이었다. 이박사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먼저 이박사를 만나야 했다. “누구나 뽕짝이라고 하면 이박사를 떠올릴 만큼 목소리만으로 장르가 규정된 분이잖아요. 완벽한 형태로 완성된 그의 음악을 넘어설 순 없어도, 이런 뽕짝도 가능하다는 다양성을 시도한 정도죠. 항상 기준은 제 자신이었어요. 뻔한 음악을 좋아하는 촌스런 제 취향과 뭔가 특별하고 재밌는 걸 해보고 싶은 욕심이 줄타기를 한 결과라 생각해요.”

늘 자신을 “댄스음악 만드는 250”이라고 소개하지만, 어쩐지 인간 250은 댄스음악과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춤보다는 책을 좋아할 것 같고, 눈빛도 우수에 젖어 있었다. 그가 찾아 헤맨 뽕의 근원도 결국 ‘슬픔’이라는데, 슬픔과 애수를 신나는 춤으로 날려버리는 것이 ‘뽕’ 앨범의 정서란다. 임영웅·김호중 같은 ‘미스터 트롯’들의 음악과는 미묘하게 다르다. “조지훈의 ‘승무’ 같은 시에서 느껴지는 감정들 있잖아요. 슬프기 때문에 춤을 추거나, 슬픔을 느끼면서 거꾸로 웃음짓는 모습에서 감정의 범위가 넓어지지 않나요. 제가 느끼는 뽕필은 요즘 젊은 가수들처럼 테크닉이 좋은 게 아니라, 살짝 엉터리같은 느낌인 것 같아요. 어떤 창법을 구현한다기보다, 그 사람 본연의 목소리에 흐르는 거죠.”

앨범의 첫 트랙을 이박사의 키보디스트인 맹인 작곡가 김수일이 부른 ‘모든 것이 꿈이었네’로 시작한 이유다. 퍼포머인 이박사의 뒤에서 평생 음악을 만들기만 한 그에게서 자기자신을 봤다고도 했다. “그분의 미발표곡이었는데, 처음 부르신 녹음본을 그대로 앨범에 실었어요. 목소리만으로 스토리가 느껴지고, 가사도 충격적일 정도로 슬프고도 아름다워서요. 한 번도 자기 목소리로 노래한 적 없는 분인데, 저도 그런 사람이거든요. 그가 만든 곡을 발굴해서 녹음하고 돌아가는 차에서 정말 ‘뽕을 찾아서’라는 제목에 맞는 일을 했다고 생각했어요. 그 노래가 바로 뽕이고, 그래서 첫 번째 트랙이어야만 했죠.”

마지막 트랙 ‘피날레’가 다소 생뚱맞게 애니메이션 ‘아기공룡 둘리’를 모티브 삼은 것도 가슴 짠한 이유가 있다. 원곡 가수 오승원을 3년 동안 찾아 헤매 기어이 클로징 송을 부르게 했다는데, “나에게 뽕은 노스탤지어”이기 때문이란다. “뽕짝의 정서 중에 옛 생각이 나게 만드는 지점도 있거든요. ‘둘리’는 명랑만화지만 애니메이션은 주제가 때문에 너무 슬펐어요. ‘엄마 잃고 떠내려온 아이, 외로운 아기공룡 둘리’로 시작하니, 어린 시절 부모님이 맞벌이라 혼자서 TV를 보던 저에게는 모든 에피소드가 슬펐어요. 까치나 하니나 독고탁이나, 80년대 만화 주인공들은 부모와 떨어져 혼자 사는 경우가 많았잖아요. 이산가족 상봉처럼 방송에 우는 사람이 많이 나오고, 드라마도 대부분 슬프던 시절이었죠. 82년생인 저의 노스탤지어를 찾아주러 가는 앨범이기도 했고, 그래서 둘리 주제가가 ‘피날레’가 되어야 했어요.”

“뽕짝은 이 시대의 클래식”

백현진이 출연해 조회수 100만뷰를 기록중인 ‘ 뱅버스’ 뮤직비디오. [사진 유튜브]

백현진이 출연해 조회수 100만뷰를 기록중인 ‘ 뱅버스’ 뮤직비디오. [사진 유튜브]

‘뽕’을 졸업하고 준비 중인 다음 앨범의 컨셉은 ‘메이드 인 아메리카’다.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는 느낌이었던 ‘뽕’과 달리, 의식적으로 멋을 내고 싶어 들었던 음악을 찾아나서는 작업이라는데, 알쏭달쏭하다. 250은 얘기를 나눌수록 궁금해지는, 정체를 알기 힘든 사람이었다.

슬픔과 노스탤지어를 꾹꾹 눌러 담은 ‘뽕’을 만들면서 더없이 발랄한 K팝 댄스곡을 동시에 뽑아내다니, ‘지킬 앤 하이드’ 류의 괴물인 걸까. “자연스럽고, 스위치가 필요 없는 일”이라며 쿨하게 미소짓는다. “저는 원래 가요 작곡가이고, 개인 작업이 보너스 같은 일이니까요. 하지만 사람에게 슬픔, 노스탤지어를 자극하는 요소를 하루종일 찾는 건 우울해지는 일이거든요. 오히려 K팝 작업은 기분이 좋아지는 음악을 만드는 게 목적이니 숨통 트이고 즐거운 일이죠.”

“하루종일 골방에서 음악을 만드는 것이 본업”인 사람이 벌이는 라이브 퍼포먼스는 어떤 모습일까. 7월 세종문화회관 공연은 동시대 가장 핫한 아티스트들을 모은 페스티벌 ‘싱크넥스트’ 프로그램이다. 클럽이 아닌 정식 공연장이 낯설긴 하지만, “모든 관객을 춤추게 하려는 목적은 똑같다”고 했다. “방식은 아직 구상 중이지만, 좌석이 아니라 스탠딩으로 가는 이유는 설명이 돼야 겠죠. 춤을 춰야만 하냐고요? 물론 보고만 있어도 되는데, 그렇다면 제가 할 일을 잘 못하고 있는 것이 되겠죠.(웃음)”

과연 250은 모든 관객을 춤추게 할 수 있을까. 지난해 독일 함부르크에서 열린 첫 해외 쇼케이스에서 서양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덩실덩실 고속도로 춤을 추게 한 것이 그의 음악이니,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의 풍경도 기대할 만하다. “독일 할머니들이 뽕짝의 가사나 정서를 이해할 수 없었겠지만, 그런 빠르고 방정맞은 템포의 음악이 나오는데 춤을 안 추는 게 더 부자연스러웠을 거예요. 다 같은 춤을 추시는 걸 보니, 그런 춤을 출 수밖에 없는 리듬이구나 싶더군요. 새삼 ‘뽕’은 춤을 강요하는 음악이고, 전 세계 어딜 가도 통한다는 걸 실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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