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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중 ‘샤프’ 리더십, 스타 없는 ‘골짜기 세대’ 반란 이끌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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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3호 02면

결승 못 갔지만 잘 싸운 U-20 월드컵

김은중 감독이 9일 열린 U-20 월드컵 이탈리아와의 준결승에서 선수들에게 작전 지시를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김은중 감독이 9일 열린 U-20 월드컵 이탈리아와의 준결승에서 선수들에게 작전 지시를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우리 선수들은 할 수 있는 모든 걸 쏟아 부었습니다. 졌지만 후회 없는 경기를 했습니다. (결승에 오르지 못한) 마지막 결과는 아쉽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그라운드를 누빈 선수들에게 감독으로서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경기를 마친 김은중(44) 20세 이하 축구대표팀 감독은 결승 진출이 무산된 아쉬움을 뒤로 하고 먼저 선수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대회 내내 특유의 포커페이스를 유지해 화제가 된 그도 “이제껏 내색하지 않았지만, 우리 선수들이 알게 모르게 그동안 많이 힘들었다”고 말할 땐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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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9일(한국시간) 아르헨티나 라플라타 스타디움에서 열린 국제축구연맹(FIFA) U-20월드컵 준결승에서 유럽의 강호 이탈리아에 1-2로 져 결승 문턱에서 멈춰 섰다. 전반 14분 체사레 카사데이에게 골을 내준 뒤 9분 만에 이승원(강원)의 페널티킥 골로 승부의 균형을 맞췄지만, 후반 41분 시모네 파푼디에게 프리킥 골을 내줘 아쉬움 가득한 패배를 맛봤다.

2019년 준우승에 이어 두 대회 연속 결승행의 꿈은 사라졌지만, 김 감독은 완성도 높은 실리축구 전술가로 주목 받았다. 한국은 4강에 오르기까지 매 경기 상대에게 볼 점유율을 내주면서도 끈끈한 수비 조직력과 위력적인 역습을 앞세워 무패(3승2무) 가도를 달렸다. 데이터에서는 뒤졌지만 승부처에서 높은 집중력을 발휘해 마지막에 웃는 흐름이 반복됐다.

이번 대회 선수들이 이른바 ‘골짜기 세대’로 불리며 큰 주목을 받지 못했기에 4강 진출의 여운이 더욱 컸다. 2003~04년생이 주축인 이번 대표팀에는 앞서 U-20월드컵 무대를 누빈 이승우(수원FC·2017년), 이강인(마요르카·2019년) 등 스타급 기대주가 없었다. 소속팀에서 주전으로 뛰는 선수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대회 준비 과정에서 돌발 악재도 있었다. 인도네시아에서 열릴 예정이던 개최지가 개막을 불과 한 달 앞두고 갑작스럽게 아르헨티나로 변경됐다. 2시간에 불과하던 한국과의 시차가 12시간으로 늘어났고, 경기 장소가 지구 반대편으로 바뀌며 기후와 환경이 확 달라졌다. 경기장·훈련장·생활환경 등 공들여 준비한 모든 사전 작업이 물거품이 됐다.

김 감독은 형님 리더십을 앞세워 선수들이 동요하지 않도록 다독였다. 한편으로는 현역 시절 별명인 ‘샤프(sharp)’처럼 날카롭고 정교한 전술로 승부수를 던졌다. 이번 대회 한국이 터뜨린 9골 중 절반에 가까운 4골을 세트피스 상황에서 미리 준비한 플레이로 만들어냈다. 개막 직전 브라질 베이스캠프에서 9일간 세트피스를 집중 연마한 게 주효했다.

김 감독은 왼쪽 눈의 시력이 거의 없다. 중3 때 경기 중 공에 맞은 이후 사실상 실명 상태가 됐다. 하지만 내색을 하지 않았다. 동갑내기 절친 이동국이 ‘한쪽 눈으로 우승했다’는 기사를 보고 뒤늦게 그 사실을 알았을 정도다.

이후 한쪽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핸디캡을 오히려 자극제로 삼고 오감을 활용해 K리그 무대에서 123골을 터뜨렸다. 일본 J리그 베갈타 센다이 시절엔 현지 팬들로부터 ‘독안룡’(獨眼龍·한쪽 눈만으로 싸우는 용맹한 무사)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김 감독은 선수 시절 갖은 어려움을 견디며 갈고 닦은 인내심과 마인드컨트롤 방법을 선수들에게도 전수했다. 4강 상대였던 이탈리아가 무려 26개의 파울을 범한 것을 비롯해 상대 팀의 지저분한 플레이가 이어졌지만, 우리 선수들은 흔들리지 않았다. 매 경기 심판의 석연찮은 판정으로 피해를 보면서도 ’김은중의 아이들‘은 묵묵히 갈 길을 갔다. 김 감독은 상대의 거친 파울로 경기가 중단될 때 그 틈에 전술 지시를 하는 냉정함도 보여줬다.

이번 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낸 미드필더 이승원, 골키퍼 김준홍(김천), 스트라이커 이영준(김천), 중앙수비 듀오 김지수(성남)와 최석현(단국대) 등은 모두가 김 감독이 제시한 전술적 틀 안에서 완성도 높은 플레이를 선보여 각광을 받았다. 이승원은 한국의 9골 중 6골의 시발점 역할을 했다. 2골·4도움으로 지난 대회 MVP 이강인과 똑같은 성적을 냈다. 스트라이커 이영준은 같은 포지션의 박승호(인천)가 조별리그 도중 부상으로 귀국하는 바람에 매 경기 풀타임을 소화하며 투혼을 불태웠다. 이승원은 이탈리아전 직후 “경기에서 패해 고개 숙이거나 눈물을 보인 선수들도 있지만 어쨌든 우리의 대회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영준은 “우리는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아직 한 경기가 남았다”고 강조했다.

나이지리아와의 8강전 승리 직후 김 감독은 “우리 선수들은 기대보다는 우려의 눈길을 받으며 이곳에 왔다. 잠재력이 있는데 그것조차 인정을 제대로 못 받는 상황에 마음이 아팠다”며 속내를 털어놓기도 했다. 그는 “1년 7개월 동안 함께 발을 맞추는 과정에서 선수들이 자신도 알지 못하던 잠재력을 끌어내는 모습이 반가웠다”면서 “그동안 소속팀에서 이렇다 할 출전 기회를 얻지 못한 선수들이 이번 대회 분위기를 살려 더 많은 기회를 잡길 바란다”고 제자들의 밝은 미래를 기원했다.

◇ 김은중 감독은…

출생 : 1979년 4월 8일 서울
체격 : 1m84㎝ 78㎏
출신교 : 성내초-동북중-동북고
현역 포지션 : 스트라이커
A매치 경력 : 15경기 5골
K리그 경력: 396경기 105골
주요 소속팀 : 대전 시티즌-베갈타 센다이-FC 서울-제주 유나이티드-강원 FC-포항 스틸러스
별명 : 샤프, 독안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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