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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탄소’가 기가막혀…석탄발전, 풀가동도 폐쇄도 못해 문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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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3호 03면

애물단지 된 석탄화력발전소

강원 삼척시에 들어서고 있는 석탄화력발전소. 최영재 기자

강원 삼척시에 들어서고 있는 석탄화력발전소. 최영재 기자

약 17조원. 지난 2021년부터 상업운전에 들어간 신서천화력과 고성하이화력(1·2호기), 강릉안인화력(1·2호기), 올해 10월과 내년 4월 준공될 삼척화력(1·2호기) 등 신규 석탄화력발전소 7기 건설에 투입된 총 사업비 규모다. 탄소중립(탄소 배출 제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석탄화력발전소를 점진적으로 퇴출하는 것과 동시에 새로 짓는 대규모 투자가 이뤄진 것이다. 왜 그랬을까. 지금과 달랐던 시대 상황이 배경에 있다.

해당 발전소 7기를 짓기로 한 것은 이명박 정부 때인 2013년이다. 세계적으로 온실가스 배출량의 단계적 감축을 선언한 파리협정이 발효된 2016년보다 3년 전이다. 이명박 정부는 2011년 폭염 등에 따른 대규모 정전 사태(블랙아웃)를 계기로 전력난에 대한 위기감이 높아지자, 전력 수급 안정을 위해 2013년 신규 석탄화력발전소 건설을 허가했다. 석탄화력이 가장 빠르고 저렴하게 전기를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불과 3년 후를 내다보지 못한 정부의 판단이 잘한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 당시에도 이미 온실가스 배출량 저감 필요성에 대한 목소리가 높았고 국제사회의 규제 움직임도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주무부처였던 지식경제부(현 산업통상자원부)는 “2027년까지 15년간 전력 소비량이 연평균 3.4% 증가할 것”으로 전망하면서 “전기 요금을 물가 상승률 전망치의 3분의 1 수준으로 맞춰 국가적 부담을 덜기 위해 원자재 가격이 안정적이고 저렴한 석탄화력발전을 늘리는 것”이라고 밝혔다.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지자체도 앞 다퉈 석탄화력발전소 유치에 나섰다.

탄소중립 역행에 환경단체 반발

시민단체가 발전소 건설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시민단체가 발전소 건설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여기에 이명박 정부는 정부의 부담을 덜기 위해 민간 주도 개발을 강조하면서 신서천화력을 제외한 6기엔 민간 자본이 대거 투입됐다. 민간 기업이 자금을 투입해 건설하고, 이후 30년간 상업운전을 통해 투자비를 회수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이후 국내·외 정서가 급변하기 시작하면서 석탄화력발전소는 애물단지가 되기 시작했다. 결정적인 계기는 2015년 세계 195개국이 온실가스 배출을 줄여 지구 온도 상승을 막자는 파리협정을 채택한 것이었다. 파리협정은 이듬해 발효됐고, 주요국은 적극적으로 온실가스 배출량 저감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문재인 정부는 파리협정에 발맞추기 위해 신규 석탄화력발전소 7기 건설·가동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기 시작했다. 폭염 우려가 잦아들면서 블랙아웃에 대한 우려도 점차 해소되고 있었다. 하지만 정부가 적법하게 추진한 사업권을 강제로 회수하기 어려웠고, 무엇보다 이미 대규모 민간 자본이 투입된 만큼 손을 대기 어려웠다. 다 짓지도 않은 발전소를 없애거나 조기 폐쇄하면 수조원에 달하는 막대한 매몰비용에 대한 국가와 기업 간 법적 분쟁이 발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문재인 정부는 건설 중인 7기의 석탄화력발전소는 그대로 두고 기존의 낡은 석탄화력발전소부터 폐쇄하기 시작했다. 석탄화력발전소를 한쪽에선 철거하고, 한쪽에선 새로 짓는 웃지 못할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2015년 국내 전체 발전량에서 절반 가까운 48.2%를 차지했던 석탄화력 비중은 이로 인해 2021년 41.9%까지 낮아졌다. 윤석열 정부는 이 같은 석탄화력 비중을 2036년까지 14.4%로 대폭 낮추는 게 목표다. 대신 원자력과 액화천연가스(LNG), 재생에너지 등 친환경 발전 비중을 높여 석탄화력의 점진적 퇴장을 메운다는 복안이다.

문제는 새로 지은 7기의 석탄화력발전소로 인한 환경 부담을 국가와 지역 주민이 고스란히 짊어져야 한다는 점이다. 환경부에 따르면 신규 석탄화력발전소의 연간 온실가스 배출량은 지난해 2207만t이었다. 올해는 3736만t에 달할 전망이다. 7기 모두 상업운전을 시작하는 내년부터 2050년까지는 연간 5018만t으로 확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지역경제에 미칠 악영향도 고려해야 한다. 석탄화력발전소의 가동 연한이 30년인 걸 고려하면 신규 발전소 7기가 들어선 곳은 2051~2054년까지 좌초자산(기존엔 경제성이 있어 투자가 이뤄졌지만 환경 변화로 가치가 하락해 부채가 된 자산)에 묶여 경제 활성화 동력을 잃게 된다. 낡은 석탄화력발전소가 몰려 있는 충남도가 최근 ‘석탄발전 폐지지역 지원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는 것도 그래서다.

가동률 80% 밑돌면 채산성 안맞아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발전소를 조기 폐쇄하거나 가동률을 낮춰도 경제적 손실은 발생한다. 석탄화력발전소에 투자해 수익을 회수하려면 30년간 평균 가동률이 80%대여야 한다. 하지만 정부의 탄소중립 추진 등으로 지금도 연간 70%를 기록하기 힘든 상황이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민간 기업과, 이들의 피해를 보전해야 할 의무가 있는 한국전력공사에 돌아간다. 신규 석탄화력발전소에 투자한 한 업체 관계자는 “이미 발전을 하면 할수록 손해가 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소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의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신규 석탄화력발전소 7기의 가동률은 2030년 62.4%, 2040년 25.2%, 2050년 10%대로 곤두박질친다.

정부도 뾰족한 해법은 없어 보인다.  석탄화력발전소를 풀가동 하는 것도 부담이지만, 그렇다고 17조원을 들인 멀쩡한 발전소를 조기 폐쇄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삼척에 지은 2기는 완공을 코앞에 두고 공사를 중단할 수도 없다. 가동률이 높아도 문제, 낮아도 문제인 상황에서 윤석열 정부는 절충안을 모색 중이다. 산자부 관계자는 “탄소중립 목표에 따라 석탄화력 비중을 줄여나가고 있지만, 당장 전력 수급 안정의 필요성과 경제적 손실을 고려하면 7기의 신규 발전소를 조기 폐쇄하거나 건설을 중단시키긴 어렵다”며 “환경적 악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발전 설비 개선과 청정화력 기술 연구에 대한 투자 등 노력을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산자부는 탄소중립 이행에 따른 민간 기업과 지역사회의 좌초자산 부담을 어떻게 최소화할지에 관한 기초 연구 용역을 외부에 맡기기도 했다.

발전 업계도 석탄화력발전소 전반의 설비 보강으로 환경오염 수준을 경감하는 것이 그나마 현재로선 최선이라고 분석한다. 백강수 한국동서발전 탄소중립실장은 “전력 공급의 안정성과 경제성을 고려하면 석탄화력발전소의 조기 폐쇄가 답은 아니다”면서 “발전소 내 설비를 보강하면 환경오염물질 배출량을 LNG복합화력발전 수준으로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설비 보강을 위해선 추가 비용 부담이 필요하다. 업계 관계자는 “LNG 연료 공급을 위한 배관 등을 갖추는 데만 해도 ㎞당 100억원에 가까운 추가 비용이 든다”고 전했다.

탄소세 도입 등 에너지 세제 개편을 통해 기업을 움직여야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상준 서울과학기술대 에너지정책학과 교수는 “기업들에 재생에너지 사용에 따른 인센티브를 확대 제공하면 석탄화력발전소가 완전 폐쇄되기까지의 과도기 동안 환경오염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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