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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에 시집 온 ‘일본댁’…어촌마을 ‘영업부장’ 되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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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3년째 울산 어촌마을 방어진의 문화 해설사로 활동 중인 사카시타 사나에. 김윤호 기자

3년째 울산 어촌마을 방어진의 문화 해설사로 활동 중인 사카시타 사나에. 김윤호 기자

40대 한 일본인 주부가 3년째 울산의 어촌마을에서 ‘마을 해설사’로 활약하고 있다. 지방 어촌마을 역사와 문화 흔적을 발품 팔아 공부하고 익혀 방문객에게 소개하고 있다. 외국인이 타국의 작은 지방 어촌마을 ‘영업부장’을 자처한 셈이다.

주인공은 일본 가가와(香川)현 출신인 사카시타 사나에(坂下苗·49)씨다. 그는 2020년부터 울산 동구 방어진 마을의 문화 해설사로 활동 중이다. 일주일에 두어 차례 노란색 문화 해설사 명찰을 달고, 방어진 박물관으로 나간다. 사카시타씨는 8일 “지자체에서 활동비 정도 받는 일이지만, 그래도 직업으로 생각하고 그간 방어진을 찾은 2000여 명에게 마을의 역사적 배경과 문화 등을 즐겁게 소개했어요”라고 말했다.

사카시타씨가 문화 해설사로 활동하게 된 건 방어진의 특별한 역사적 배경이 동기가 됐다. 2009년 일본 도쿄(東京)에서 회사에 다니다가 한국인 남편을 만나 울산에 정착한 그는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 지역 다문화센터에 다녔다. 한국 생활이 익숙해지기 시작할 무렵인 2018년 그는 울산 동구에서 ‘방어진’이라는 어촌마을을 새롭게 정비 중이라는 말을 다문화센터에서 들었다.

“국내외 관광객이 찾는 글로벌한 어촌마을로 방어진을 새롭게 꾸민다고 했어요. 그때 방어진과 일본 제 고향의 연결고리를 알게 됐어요”라고 사카시타씨는 말했다. 때마침 다문화센터에서도 사카시타씨에게 일본인 방문객이 올 수 있으니 문화 해설사로 참여해달라고 부탁했다. 이후 그는 방어진 이야기를 2년여간 공부했다.

방어진박물관에 전시 중인 과거 방어진 항구에 정박된 배들의 모습. 김윤호 기자

방어진박물관에 전시 중인 과거 방어진 항구에 정박된 배들의 모습. 김윤호 기자

1897년 일본인 선박이 조업 중 떠내려와 방어진에 도착했다. 이때부터 방어진 앞바다에서 삼치류가 많이 잡힌다는 게 알려져 사카시타씨의 고향인 가가와현을 비롯해 오카야마(岡山)현 등에서 일본인 어부가 하나둘 들어왔다. 1910년만 하더라도 방어진은 전체 30가구 정도의 작은 어촌이었는데, 1940년대엔 일본인 가구만 500여 가구에 달했다. 일본 지명을 그대로 딴 ‘히나세 골목(日生町)’이 있을 정도였다. 울산에서 전기는 방어진에 가장 먼저 들어왔다.

“일제강점기 방어진 역사·문화 흔적은 지금도 찾을 수 있어요. 전당포 모습이 남아있고, 목욕탕과 방파제·적산가옥 등에서도 흔적을 확인할 수 있어요. 그리고 마을 전체 분위기가 과거 고향 어촌마을 느낌도 많이 나요”라고 사카시타씨는 설명했다. 그는 “일제강점기 때 한국인들이 슬픈 일을 당했어요. 힘든 역사적 사실을 받아들이면서도 과거 방어진 이야기를 재미있게 소개하고 있어요”라고 덧붙였다.

사카시타씨는 자신이 일본인이라는 점 때문에 마을 이야기를 설명할 때 곤란을 겪을 때도 있다고 했다. “한국을 약탈한 일본인이 왜 마을 설명을 하느냐” “일본인들이 예전에 방어진 고기 다 수탈해가지 않았는가”라는 질문을 받기도 해서다. “슬픈 역사가 만든 현실인 걸 알아요. 전 그렇게 웃으며 넘겨요. 그러고 다시 재밌는 방어진 이야기를 계속해요.”

사카시타씨는 방어진에 일본인 관광객이 찾지 않아 안타깝다고 했다. 방어진 역사와 현재 마을 모습 등이 일본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아서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외국인이 좋아할 만한, 어촌마을다운 특색 있는 음식을 개발해야 할 것 같아요. 또 현대적으로 마을을 뜯고 다 바꿀 게 아니라 사라져가는 과거의 흔적도 보존했으면 합니다”라고 그는 말했다.

중학생과 초등학생 딸 두 명을 키우는 사카시타씨는 작은 꿈이 있다고 했다. “한때 ‘노 재팬(No Japan)’ 분위기로 힘든 적이 있어요. 내 작은 활동이 보탬이 돼 아이들이 어른이 됐을 땐 한국과 일본의 깊은 감정 골이 사라졌으면 합니다”라고 그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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