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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삶의 향기

보행은 가없이 넓은 도서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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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고진하 시인·목사

고진하 시인·목사

풀섶에서 구불텅구불텅 기어 나오는 큰 뱀을 만났다. 늦잠에서 깨어 몸을 풀기 위해 개울 둑을 걷는데, 길이가 1m 이상은 될 듯싶은 거무튀튀한 독사를 만났던 것. 얼마나 놀랐던지! 풀섶에서 기어 나온 독사 역시 키가 껑충한 낯선 나를 보고 놀랐겠지. 녀석은 금세 도망치지 못하고 나를 향해 삼각형의 머리를 곧추세웠다. 순간 나는 손에 든 스틱으로 바닥을 톡톡톡 두드리자 녀석은 곧추세운 머리를 돌려 옆의 풀섶으로 스르르 사라졌다.

나는 안도의 숨을 내쉬고는 땅을 주시하며 더 천천히 걷는다. 단지 뱀을 만나는 것이 두려워서가 아니다. 걷다 보면 개미나 달팽이나 다족류 벌레들도 뻘뻘 기어 다니는 게 보이는데, 되도록 벌레들도 밟지 않으려고 일부러 보행의 속도를 늦춘다. 그렇게 속도를 늦추면 봄풀 틈으로 새롭게 돋아나기 시작하는 여름풀도 볼 수 있다. 보행은 가없이 넓은 도서관이라는데, 지구 공동체의 소중한 기반인 식물의 생태를 익히는 공부에도 큰 도움이 된다.

마음의 군더더기 걷어내는 걷기
로마인이 찬양한 유유자적한 삶
바캉스는 ‘아무것도 없는 상태’
시간표에 얽매이지 않는 즐거움

삶의 향기

삶의 향기

어쨌든 천천히 걷기는 내 마음을 가난하고 단순하게 하고 불필요한 군더더기를 덜어내게 해준다. 고대 로마인들은 삶의 예술을 ‘오티움’(otium)이라 했는데, 그것은 ‘유유자적’이란 뜻이다. 그들은 복잡한 로마와 폭염을 피해 바닷가로 가서 유유자적 비생산적인 것에 몰두하며 영혼과 마음을 높이 갈고 닦는 시간을 즐겼던 것. 그들은 그곳에서 독서와 철학, 명상, 친구들과의 대화로 의미 있는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로탕스 드빌레르, 『모든 삶은 흐른다』 참조)

나는 해마다 봄이면 야산에 핀 꽃을 뜯어 화전을 부치는데, 그래서 우리 집 한옥 주련에 ‘날마다 화전 놀이하듯!’이라는 문장을 써서 달아놓고 나름 ‘오티움’의 삶을 누리고 있다. 오티움의 반대되는 말은 ‘네고티움’(negotium), 그것은 분주한 삶을 가리킨다. 매사에 시간표와 스케줄과 의무와 제약으로 이루어진 삶. 이런 삶은 우리가 바캉스를 즐기는 시간에도, 은퇴 후에도, 주말에도 여전히 이어진다.

사실 바캉스는 그 어원으로 보더라도 ‘아무것도 없는 상태’, 소위 비어 있어 자유로운 상태를 가리키는데, 우리는 여름철에 바캉스를 즐기겠다고 나선 길에 교통 체증 속에서 짜증을 내고 숱한 사람들 속에 섞여 혼자 있을 때의 여유를 누리지 못한다. 무엇보다 바캉스는 나를 보는 시선에서 벗어나야 하지만 사람들로 붐비는 시간 속에선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롭기가 쉽지 않다. 우리가 진정으로 축제 같은 삶을 즐기려면 타인의 시선은 물론 무언가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한다.

철학자 칼하인츠 A 가이슬러는 “사랑에서 혹은 평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느림이다. 사랑은 느림에 의지한다”(『시간』)라고 했다. 몇 해 전 인도 동부 해안을 천천히 걸으며 여행하다가 진정한 생태주의자들인 자이나교 신자를 만난 적이 있다. 첨단문명 속에 사는 이들은 이해하기 어렵지만, 그들 중에는 옷도 아예 걸치지 않고 벌거벗은 몸으로 대로를 활보하는 나체족도 있다. 옷의 재료가 되는 식물을 해치지 않기 위해 알몸으로 사는 삶을 택하고, 땅에 기어 다니는 벌레를 보호하기 위해 빗자루를 들고 다니기도 하니, 지구 생명을 알뜰살뜰 챙기려는 지극한 생태적 삶의 본보기가 아닌가.

아침 산책을 마치고 집으로 오는 골목길을 막 들어서자 머리 위에서 까치들이 깍깍거린다. 경로당과 우리 집 사이에 큰 전봇대가 세워져 있는데, 전선이 얼기설기한 전봇대 위에 까치가 둥지를 틀고 있었다. 주변에 큰 나무가 많은데도 튼튼한 전봇대 위에 둥지를 트는 걸 보니 올여름에는 비가 많이 내릴 듯. 벌써 둥지를 틀기 시작한 지 여러 날이 된 듯 농구공 두 개 정도 크기의 집이 완성 단계로 보인다. 보행자를 경계하는지 한 마리는 아래를 내려다보며 깍깍거리고, 다른 한 마리는 긴 나뭇가지를 주둥이에 문 채 둥지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나는 까치의 집짓기를 방해하지 않으려고 서둘러 대문간으로 들어와 문을 빠끔 열어놓고 까치의 놀라운 건축 예술을 지켜본다. 멀리서 보아도 까치가 물어 나른 나뭇가지는 수백 개가 넘을 듯. 주둥이로 물어온 나뭇가지를 이리 끼우고 저리 끼우며 꼼꼼히 건축한 둥지는 거센 비바람에도 끄떡없을 듯. 혹시 마을 사람이 불법 건축물이라고 고발이라도 하면 전기안전공사에서 나와 허물어 버리고 말겠지만, 자연에 위해를 끼치지 않는 스몰 하우스. 저 아름다운 건축술의 신비는 오래도록 내 가슴에 남으리라.

고진하 시인·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