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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세금으로 ‘윤 퇴진’ 강의에 해외여행…복마전 된 민간단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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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보조금 314억 횡령 1865건 적발, “빙산의 일각” 지적

감시 손 놓은 전 정부 책임 커…재발 근절 대책 시급

이관섭 대통령실 국정기획수석이 4일 공개한 국고 보조금 감사 결과는 충격적이다.  ‘횡령 백화점’으로 전락한 민간단체들의 민낯을 보여준다. 리베이트 수수, 허위 수령, 사적 전용, 서류 조작 등 갖가지 수법이 동원됐다. 국민 세금을 현금인출기에서 출금하듯 마음대로 쓰고, 사기범들 수법까지 모방한 실태가 새 정부의 감사를 통해 드러났다. 이렇게 사익에 혈안인 단체들이 설립 신고 목적에 걸맞은 공익 활동에 전념했을 리 만무하다.

정부가 지난 1월부터 4개월간 최근 3년간 민간단체에 지원된 6조8000억원의 용처를 감사한 결과, 부정 집행이 1865건 적발됐다. 비위 사업에 지급된 돈은 1조1000억원에 달하고 횡령액도 314억원에 이른다. 지난해 8월부터 6개월간 감사원이 감사한 결과 10개 민간단체가 17억4000만원을 횡령한 정황이 드러나 73명이 수사 의뢰를 당했는데, 이는 예고편에 불과했다.

이번 감사 결과, 한 통일운동 단체는 ‘민족 영웅 발굴’ 명목으로 6260만원을 받은 뒤 ‘윤석열 정권 100일 국정 난맥 진단’ 강의를 편성하고, 강의 원고 작성자도 아닌 이에게 지급 한도의 3배 가까운 원고료를 준 것으로 드러나 수사 의뢰를 당했다. 어느 사회적 협동조합 이사장은 2022년 ‘청년 창업 지원’ 명목으로 타낸 1000만원 전액을 개인 용도에 쓴 것으로 드러난 뒤 연락이 두절됐다고 한다. 또 한 연맹은 2022년 해외 출장 3건에 대해 1344만원을 따냈는데 2건은 연맹 사무총장 개인의 해외여행이었고, 1건은 허위 출장으로 드러났다. 어느 아동센터 원장은 행사 사진 일부를 자르거나, 사진 속 현수막 날짜를 조작해 운영비를 빼돌린 사실이 적발됐다. 행사 참석자의 배치나 복장을 바꿔 사진을 찍은 뒤 다른 행사처럼 속여 돈을 더 타낸 사례도 여러 건 적발됐다니 기가 막힌다. 이번 감사는 인력의 한계로 사업비 3000만원 이하 사업들은 빠졌다니 드러나지 않은 횡령 사례가 얼마든 더 있을 공산이 크다.

민간단체 보조금은 문재인 정부 시절 급증했다. 매년 4000억원씩 늘어 총 22조원 넘게 지원됐다. 그러나 이렇게 퍼주고 감시는 손을 놓다시피 했으니 민간단체들의  도덕적 해이와 혈세 누수가 일상화한  것 아니겠는가. 이제라도 근본 대책을 세워야 한다. 정부는 최근 1억원(현행 3억원) 이상 보조금 회계 검증 의무화 시행령을 예고했다. 당연한 조치다. 이걸로 끝이 아니다. 모든 보조금 집행 내역은 종이 영수증 대신 전자 증빙을 의무화하고, 횡령이 적발된 단체는 보조금 전액을 환수하고 고발하는 한편, 신고 시민의 포상금 한도도 높여야 한다. 세금을 빼돌려 자신과 주변의 호주머니를 채우는 민간단체의 부조리가 더 이상 용인돼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