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野 급작스런 상임위원장 내분…3년전 김종인이 펼친 덫 때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더불어민주당이 21대 국회 마지막 상임위원장단 선출을 놓고 내분에 휩싸였다. 21대 국회 첫 상임위원장 인선 때부터 단추가 잘못 끼워졌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오른쪽)가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박광온 원내대표와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오른쪽)가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박광온 원내대표와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30일 국회 본회의 직전 열린 민주당 의원총회에선 민주당 몫 상임위원장 3명의 인선이 추인되지 않았다. 당 원내지도부는 직전 원내대표였던 박홍근 의원을 교육위원장, 환경부 장관을 지낸 한정애 의원을 보건복지위원장, 현직 최고위원인 정청래 의원을 행안위원장으로 선출해달라고 요청했으나 의원들의 항의가 쏟아졌다. 그동안 민주당에서는 선수(選數)와 나이를 고려하되 장관이나 원내대표, 최고위원을 지낸 경우 상임위원장을 맡지 않는 것이 관례였다. 그러나 최근 이런 관례가 무너지자 의원들이 “상임위원장 선출에 원칙과 기준이 없다”고 불만을 터트린 것이다. 결국 민주당은 다음 의원총회로 관련 논의를 미뤘다.

당내에선 관례가 무너진 계기로 21대 국회 전반기 원 구성 협상을 지적한다. 당시 여야는 18개 상임위원장 배분을 논의하면서 서로 법제사법위원장 자리를 양보할 수 없다고 팽팽히 맞섰다. 2020년 치러진 21대 총선에서 177석을 얻은 거여(巨與) 민주당은 야당의 ‘국정 발목잡기’를 허용하지 않겠다며 법사위원장을 고집했다. 미래통합당은 그동안 야당이 법사위원장을 맡아온 국회 관행이 이번에도 지켜져야 한다고 맞섰다. 당시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와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가 3차례 공개 회동 끝에 11(민주당) 대 7(미래통합당) 배분에 합의하면서 갈등은 일단락되는 듯 보였다. 그러나 통합당 의원총회에서 최종적으로 이 안이 거부되면서 민주당이 18개 상임위원장을 독식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김종인 당시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해 1월 발간한 회고록에서 전체 상임위원장을 보이콧하기로 한 배경을 소개했다. 그는『왜 대통령은 실패하는가』이란 저서에서 “여당이 정 법사위원장 자리를 가져가겠다면 우리는 모든 상임위원장 자리를 포기하겠다고 밝혔다”며 “국정 운영의 모든 책임을 여당이 짊어지도록 하겠다는 뜻이었다”고 적했다. 당시 협상에 참여한 민주당 관계자는 “김종인 위원장이 ‘거여 프레임’을 민주당에 씌우려고 추가 협상에 응하지 않은 측면도 있었다”고 주장했다.

2020년 6월 28일 당시 박병석 국회의장(가운데),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왼쪽), 미래통합당 주호영 원내대표가 국회 의장실에서 원구성 협상을 위해 만나 자리에 앉고 있다. 중앙포토

2020년 6월 28일 당시 박병석 국회의장(가운데),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왼쪽), 미래통합당 주호영 원내대표가 국회 의장실에서 원구성 협상을 위해 만나 자리에 앉고 있다. 중앙포토

결국 민주당은 18개 상임위원회를 채우기 위해 그동안 장관 출신들은 상임위원장을 맡지 않도록 하는 관례를 깨고 3명(도종환·진선미·이개호)을 상임위원장으로 선출했다. 상임위원장은 대개 3선급 이상인데 장관 출신들까지 차출하지 않으면 18명 자리를 다 채울 수 없는 상황이었다.
여당의 상임위원장 독식 사태는 21대 국회 2년 차 들어 여야가 18개 상임위원장 자리를 11(민주당) 대 7(국민의힘)로 배분하고, 법사위원장을 교대로 맡기로 합의하면서 막을 내렸다.

그러나 민주당 내부에선 한번 무너진 관례가 좀처럼 회복되지 않았다. 지난해 박홍근 원내대표 체제에선 최고위원의 상임위원장 겸직 논란까지 벌어졌다. 지난해 7월 국회 과학기술방송통신위원장으로 선출된 정청래 의원은 같은 해 8·28 전당대회에서 최고위원으로 당선됐지만 상임위원장직을 내려놓지 않았다. 당시 원내지도부 관계자는 “정 의원이 최고위원에 당선될지가 확실하지 않아 일단 선수에 따라 과방위원장으로 선출했다”며 “최고위원 당선 이후에 원내지도부가 사임요구를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한 원내대표를 역임한 경우엔 상임위원장직을 맡지 않는다는 관례도 깨졌다. 20대 국회에서 원내대표를 지낸 우원식 의원은 법사위와 함께 양대 핵심 상임위로 분류되는 예산결산특별위원장에 임명됐다.

지난달 30일 국회 본회의에서 민주당 정청래 의원이 본인이 위원장인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 사임의 건에 대한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30일 국회 본회의에서 민주당 정청래 의원이 본인이 위원장인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 사임의 건에 대한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21대 국회 마지막 원내지도부에서도 이처럼 관례에서 벗어난 상임위원장 인선이 계속 이뤄지자 그동안 쌓인 불만이 지난달 30일 의원총회에서 터져 나온 것이다. 당시 의총에서 박홍근 의원과 한정애 의원은 원내지도부의 뜻이 모아지면 따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한다. 하지만 정청래 의원은 과방위와 행안위를 1년씩 맞교대하기로 한 지난해 여야 합의에 따라 행안위로 옮겨 위원장을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정 의원은 1일 페이스북에 “정청래가 물러나면 다음 타겟팅은 이재명 대표와 지도부”라며 “단순한 행안위원장 싸움이 아니다. 행안위원장 기필코 사수하겠다”고 적었다.

민주당 원내지도부는 현재 각 선수별 의원 모임과 연구단체, 소그룹 모임 등에 상임위원장 선출 기준과 원칙 등을 논의해서 알려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민주당은 6월 임시국회에서 이번에 추인이 불발된 교육위원장, 보건복지위원장, 행정안전위원장 외에 환경노동위원장,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장, 예산결산특별위원장까지 6곳의 상임위원장을 새로 선출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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