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5년간 고립된 생활 정유정, 사이코패스 성향 극대화된 듯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842호 10면

살인 및 시신 훼손·유기 혐의로 구속된 정유정이 2일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송봉근 기자

살인 및 시신 훼손·유기 혐의로 구속된 정유정이 2일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송봉근 기자

2일 오전 9시 부산 동래경찰서 정문. 20대 여성을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유기한 혐의로 구속된 정유정(23)이 검찰로 송치됐다. 정유정은 신상공개가 결정됐으나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포토라인에 섰다. 정유정은 범행 동기 등을 묻는 말엔 입을 굳게 다물었다. 다만 “피해자와 유가족에게 죄송하다. (범행을 저지를 땐)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정유정은 지난달 26일 부산에서 혼자 살던 20대 여성 A씨를 해친 뒤 시신을 훼손해 낙동강 변에 유기한 혐의를 받고 있다. 정유정은 경찰 조사에서 살인 등 끔찍한 범죄를 다룬 내용의 방송과 서적 등에 심취해 ‘사람을 죽여보고 싶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수사기관은 일면식도 없는 상대방을 잔인하게 해친 이 사건이 ‘사이코패스 범행’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정유정을 상대로 관련 검사를 진행하는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다.

프로파일러인 배상훈 우석대 경찰학과 교수는 중앙일보와의 전화 통화에서 “오랜 기간 고립된 생활을 할 때 정유정의 사이코패스 성향이 각성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경찰에 따르면 정유정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5년간 외부와 거의 교류하지 않고 고립된 생활을 했다. 직장생활을 해본 적도 없는 정유정에게 이 5년은 현실 세계와 동떨어진 온라인에서만 활동하며 방송과 서적 등 범죄물에 집중적으로 빠져든 시간이었다. 배 교수는 “청소년기가 끝나는 10대 후반은 인간의 심리적 변화가 매우 큰 시기”라며 “이때 은둔생활을 하며 살인 사건과 관련된 저작물에 심취했다면, 반사회적 성향이 극대화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사이코패스 각성이 일어나면 현실감각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다는 게 배 교수 설명이다. 배 교수는 “정유정의 경우 자신이 빠져들었던 살인사건 속 세계와 현실을 분간하지 못하게 됐을 가능성이 높다”며 “또한 모르는 사람을 찾아가 해칠 만큼 강한 살의에 매몰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배 교수는 정유정이 현실감각을 잃은 듯한 모습이 사건 곳곳에서 드러난다고 말했다. 가령 정유정은 처음부터 A씨를 해칠 마음을 먹고 있었지만, 살인 이후에야 여행용 캐리어 등 유기에 필요한 물건을 조달하려고 현장을 벗어났다. 이 과정에서 정유정이 집과 가게, 현장을 오간 동선 대부분이 경찰 조사에서 드러났다.

배 교수는 “강한 살의에 따라 사람을 해치는 데만 집중한 나머지 범행 이후 유기 등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며 “한 가지에만 골몰하면 시야가 좁아져 ‘다음 단계’를 떠올리지 못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캐리어에 담은 시신을 유기하려고 야심한 시각 택시를 탄 것도 마찬가지”라며 “적발되거나 택시기사에 의해 신고당할 가능성 등을 처음부터 떠올리지 못했기에 이 같은 행동이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이코패스의 범행이 ‘완전범죄’에 가깝다는 건 소설 속에서나 가능한 이야기라고 배 교수는 짚었다. 그는 “(범행을) 계획한 대목에선 치밀함이 보이지만 현실감각이 떨어져 곳곳에서 허점이 생긴다”며 “이 경우 사이코패스는 크게 당황한다”고 말했다. 이어 “살해 현장은 깨끗한데 유기 현장에선 무더기 지문이 나오는 식으로 증거가 불균형한 게 사이코패스 범죄의 또 다른 특징”이라며 “오랜 고립 생활과 범죄물 탐닉이 정유정을 ‘어설픈 괴물’로 만든 셈”이라고 설명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