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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철 입찰' 초유의 법정공방…우진산전, SR과 다투는 배경

중앙일보

입력

 [이슈분석]

현대로템이 지난해말 출고한 차세대 고속열차인 EMU-320. 연합뉴스

현대로템이 지난해말 출고한 차세대 고속열차인 EMU-320. 연합뉴스

 SR(수서고속철도)이 발주한 차세대 고속열차 입찰 결과를 놓고 유례없는 법정 다툼이 벌어지게 됐다. 그동안 전동차나 일반열차 입찰을 두고는 법정 공방이 있었지만, 고속철은 이번이 처음이다.

 2일 철도업계에 따르면 스페인의 고속열차 제조사인 탈고와 컨소시엄을 구성해 입찰에 참여했다가 탈락한 우진산전이 지난달 SR을 상대로 ‘고속철도차량의 도입 및 정비사업에 대한 입찰 관련 계약이행금지 및 낙찰자 지위 확인 가처분'을 법원에 신청했다.

 앞서 지난 4월 21일 동력분산식 고속열차 EMU-320 14편성(112량)과 차량 유지보수 서비스를 한데 묶은 SR의 1조원대 입찰에서 현대로템이 낙찰예정자로 선정된 바 있다. 당시는 현대로템과 우진산전·탈고 컨소시엄이 맞붙어 17년 만에 국내 고속철 시장에 경쟁구도가 부활한 상황이었다.

 우진산전 측은 입찰 및 심사 과정에서 여러 문제점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우선 국가계약법령상 낙찰자가 선정될 때까지 외부 유출과 공개가 금지된 예정가격이 사전에 공개됐다는 것이다.

우진산전이 SR을 상대로 법적 다툼에 들어갔다. [우진산전 홈페이지 캡처]

우진산전이 SR을 상대로 법적 다툼에 들어갔다. [우진산전 홈페이지 캡처]

 예정가격은 계약담당자가 입찰 또는 계약체결 전에 낙찰자, 계약자, 계약 금액을 결정하는 기준 등으로 삼기 위해 미리 작성해둔 가격을 의미한다. 사실상 발주자가 맘속에 두고 있는 적정가격으로 낙찰자 선정에 중요한 잣대인 셈이다.

 그런데도 SR이 현대로템의 단독입찰로 최초입찰이 유찰된 뒤 전자조달시스템에 예정가격을 공개해 '예정가격 비공개의 원칙'을 위배했다는 게 우진산전 측 주장이다.

 우진산전 측은 또 ▶SR이 기술평가 결과를 비공개하고, 이의신청 절차도 두지 않았고 ▶심의위원 구성 절차도 불투명했으며 ▶공정한 평가에 대한 의구심이 있고 ▶평가 기준이 현대로템에 유리하게 설정됐다고도 주장한다.

 하지만 SR은 별 문제 될 게 없다는 입장이다. 김진형 SR 홍보실장은 “이번 입찰에선 경험이 많은 코레일의 입찰방식을 대부분 준용했다”며 “특정업체에 유리하게 입찰을 진행한 사실 역시 없다”고 밝혔다. 사실 철도업계에서도 우진산전이 명확한 근거를 확보한 건 아니라는 관측이 나온다.

 상황이 이런데도 우진산전이 SR을 상대로 법정 다툼에 들어간 건 '기술평가' 결과 때문이라는 해석이다. 해당 업체가 고속철을 만들 기술력과 시스템, 납품 실적을 갖추고 있는지를 평가하는 것으로 우진산전·탈고 컨소시엄은 '부적격' 판정을 받았다.

 이번 입찰은 '2단계 기술가격 분리 동시 입찰 방식'으로 우선 기술평가를 한 뒤를 이를 통과한 업체들만을 상대로 예정가격 이하의 최저가를 써낸 업체를 낙찰자로 정하는 순서로 진행됐다.

SR은 우진산전의 가처분 신청에 대해 별 문제될 게 없다는 반응이다. 뉴스1

SR은 우진산전의 가처분 신청에 대해 별 문제될 게 없다는 반응이다. 뉴스1

 우진산전·탈고 컨소시엄은 1단계 기술평가에서 탈락했기 때문에 가격을 열어볼 대상도 되지 못한 것이다. 앞서 지난 3월 있었던 코레일의 EMU-320 17편성 입찰 때는 우진산전 단독으로 입찰에 나섰다가 역시 기술평가에서 떨어진 바 있다.

 익명을 요구한 철도업계 관계자는 “우진산전으로선 탈고와 손잡고 입찰에 나서면 기술평가는 당연히 통과할 것으로 판단했을 수 있다"며 “이번처럼 기술평가에서 떨어지면 컨소시엄의 의미가 사라지는 데다 고속철 사업을 계속 추진하기 어렵다는 위기의식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우진산전은 가처분 신청서에서 “입찰 참여에 앞서 규격에 대한 자체 평가를 한 결과 적격 판정을 받기 위한 85점은 무난하게 넘을 수 있다고 분석됐다”며 “심지어 보수적으로 평가하더라도 적격 평가 기준을 상회했다”라고 적었다.

 결국 우진산전으로선 이대로 기술평가 탈락이 기정사실로 되면 고속철 사업의 추진동력이 소멸할 위기인 셈이다. 그렇다고 다른 파트너를 찾기도 쉽지 않다. 프랑스 알스톰(TGV), 독일 지멘스(ICE) 등 유명 고속철 업체들은 자체 생산일정 때문에 컨소시엄 구성이 어려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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