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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노 마스가 웬 '하입보이'…120만뷰 터진 그 목소리 진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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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AI(인공지능) 기술보다 우선했던 것은 음악적 변화에 대한 제 간절한 마음이었어요.”
그룹 에이트 출신의 발라드 가수 이현(40)은 자신의 노래에 AI 기술을 사용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17년 동안 굳어진 부드러운 이미지를 깨고 싶었던 그는 지난달 15일 '미드낫'(MIDNATT)이란 새로운 이름으로 신곡 '마스커레이드'(Masquerade)를 발표했다. 리듬감 있는 신스웨이브 장르의 곡에, 올해 초 하이브가 인수한 AI 오디오 기업 ‘수퍼톤’의 기술을 적용했다.

지난 15일 가수 이현(가운데)이 '미드낫'(MIDNATT) 명의로 새 디지털 싱글 '마스커레이드'(Masquerade)를 발표했다. 정우용 하이브IM 대표(왼쪽)와 신영재 빅히트 뮤직 대표(오른쪽)가 기자간담회에 참석했다. 사진 하이브

지난 15일 가수 이현(가운데)이 '미드낫'(MIDNATT) 명의로 새 디지털 싱글 '마스커레이드'(Masquerade)를 발표했다. 정우용 하이브IM 대표(왼쪽)와 신영재 빅히트 뮤직 대표(오른쪽)가 기자간담회에 참석했다. 사진 하이브

곡 중반부 등장하는 여성 보컬은 별도의 피처링(featuring) 가수 섭외가 필요 없었다. 이현의 목소리에 AI 기반 보이스 디자이닝 기술을 적용해 여성의 음색으로 구현했다. 성별은 여성으로 바뀌었지만, 거칠게 표현한 이현의 창법이 그대로 유지됐다. 정우용 하이브IM 대표는 “곡에 어울리는 최적의 여성 보컬을 미드낫(이현)의 목소리를 기반으로 재창조했다”고 했다. “콘서트 현장에서 라이브로 노래하더라도 이 기술을 이용하면 관객에게 해당 부분을 실시간 여성의 목소리로 들려줄 수 있다”고 덧붙였다.

또 AI 기반 ‘다국어 발음교정 기술’을 활용해 '마스커레이드'를 한국어, 영어, 스페인어, 일본어, 중국어, 베트남어 6개 언어로 동시 발매했다. 하나의 음원을 언어별 원어민이 노래 박자에 맞춰 가사를 녹음하고, 이를 가수가 부른 각각의 외국어 버전 노래에 적용한 건 최초의 사례다. 가수의 가창은 살리면서 원어민의 발음과 강세를 더하는 방식이다.
신영재 빅히트뮤직 대표는 "6개 언어는 전 세계 80억 인구의 절반이 사용하는 만큼 언어적 제약을 넘어 K-팝의 영향력이 확대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이브는 다른 소속 가수를 대상으로도 AI 기술 접목을 검토하고 있다.

K-팝에 스며든 AI 기술…작곡·편곡도 뚝딱

성별과 언어를 넘나드는 신기술이 음악에 구현되면서 AI 기술은 점차 K-팝 시장의 게임 체인저로 떠오르고 있다. 미드낫 곡에 기술을 제공한 수퍼톤의 이교구 대표는 지난달 'AI와 K팝 산업'을 주제로 한 콘퍼런스에서 "목소리의 샘플만 있다면 원래 노래를 완전히 다른 사람의 것으로 바꿀 수 있고, 가수의 목소리를 활용해 수천, 수만 명 팬의 이름을 넣어 부른 노래도 만들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AI 기술은 K-팝에 다양한 형태로 스며들고 있다. 걸그룹 에스파의 세계관에서 가상 세계 조력자인 ‘나이비스(nævis)’는 비주얼과 목소리 모두 AI 기술을 통해 창조됐다. 나이비스는 이달 8일 공개된 에스파의 미니 3집 선공개곡 ‘웰컴 투 마이 월드’(Welcome To MY World)’에 피처링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성우 여러 명의 목소리를 조합해 만든 나이비스의 음색이 곡 도입부와 중반부 코러스에 담겼다. 소속사 SM엔터테인먼트는 현재 나이비스의 솔로 가수 데뷔를 준비 중이다.

걸그룹 에스파의 세계관 속 조력자로 등장하는 '나이비스'. 사진 SM엔터테인먼트

걸그룹 에스파의 세계관 속 조력자로 등장하는 '나이비스'. 사진 SM엔터테인먼트

작곡과 편곡에도 AI 기술이 활용된다. 지니뮤직은 지난해 AI 스타트업 ‘주스’의 기술을 기반으로 가수 테이의 히트곡 ‘같은 베개’를 편곡해 드라마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의 OST를 제작했다. 이 과정에는 AI가 노래를 듣고 음정의 길이와 멜로디를 파악해 디지털 악보로 구현하는 기술이 적용됐다. AI 작곡 기업 ‘포자랩스’는 원하는 느낌의 곡을 넣으면 5~10분 만에 AI가 비슷한 곡을 만들어 주는 서비스를 올해 안에 제공할 계획이다.

전문가가 아닌 AI가 만들어낸 음악 콘텐트 또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AI 커버곡이 대표적이다. 미국 팝가수 브루노 마스의 목소리를 AI로 학습한 뒤 뉴진스의 '하입 보이'를 커버한 영상은 유튜브에 올라온 지 3주 만에 조회수 120만 회를 넘어섰다. 더 위켄드의 ‘큐피드’(피프티피프티), 프레디 머큐리의 '양화대교'(자이언티) 등 다양한 커버 영상이 꾸준히 생산돼 온라인 상에서 퍼지고 있다.

국회, AI 법안 발의…AI 콘텐트 잡는 AI 기술도

인공지능(AI) 자료 사진. 로이터=연합뉴스

인공지능(AI) 자료 사진. 로이터=연합뉴스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지난 4월 더 위켄드와 힙합 스타 드레이크의 신곡으로 화제를 모았던 노래 '허트 온 마이 슬리브'가 AI 기술을 통해 만들어진 가짜로 밝혀졌다. 이후 소속사의 조치로 뒤늦게 삭제됐다. 박준우 대중음악 평론가는 “폭넓은 음악 향유가 가능하다는 측면에서 분명 장점이 있지만, 듣는 이가 AI 기술을 활용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할 때는 무서운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더 위켄드와 드레이크의 가짜 신곡 사례처럼 AI가 만든 가짜 음악을 인간이 만든 진짜 음악으로 오해할 수 있고, 가수 고유의 특색 있는 목소리가 보편화하면서 저작권 문제가 생기는 등 업계 전체의 패러다임이 바뀔 수도 있다는 것이다.

최근 국회에선 AI 기술로 만들어진 콘텐트에 그 사실을 정확히 표기해야 한다는 내용의 법안이 발의됐다. 또 AI 기술을 활용해 저작권을 침해하는 AI 콘텐트를 잡아내는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음원 모니터링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운드마우스코리아의 최보나 본부장은 “유튜브 등 콘텐트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일일이 확인해 음원 저작권자의 권리를 보호하기엔 한계가 있다”면서 “5~6년 전부터 AI 기술을 도입해 음원이 얼마나 많은 곳에서 사용됐는지 등의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저작권 이슈는 단순히 기술의 발전 만으로 해결되기는 어렵고, 정책과 업계의 인식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야 하기 때문에 이러한 부분에 대한 논의가 향후 더 필요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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