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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개발"이란 北 궤변…위성 발사는 '안보리 결의 위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북한이 31일 군사정찰위성 목적의 우주 발사체를 발사했다. 이 발사체는 궤도에 진입하지 못한 채 비정상 비행 후 추락했다. 합동참모본부는 서해 어청도 서방 200여km 해상에서 북한의 우주 발사체를 식별해 인양했다. 합참 제공

북한이 31일 군사정찰위성 목적의 우주 발사체를 발사했다. 이 발사체는 궤도에 진입하지 못한 채 비정상 비행 후 추락했다. 합동참모본부는 서해 어청도 서방 200여km 해상에서 북한의 우주 발사체를 식별해 인양했다. 합참 제공

한·미 양국의 강도 높은 경고에도 북한은 31일 끝내 군사정찰위성 ‘만리경-1호’를 발사했다. 한·미·일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핵·미사일 개발 중단 요구를 보란 듯 무시한 셈이다. 특히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가급적으로 빠른 기간 내에 제2차 발사를 단행할 것”이라며 추가적인 위성 발사를 예고했다. 북한의 이같은 무력 도발은 압박·제재를 우선순위에 두는 한·미 양국의 대북 원칙론 강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북한은 1998년 광명성 1호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총 6차례에 걸쳐 위성을 발사할 때마다 “평화적 우주개발”이라는 점을 강조해왔다. 위성 발사는 핵·미사일 고도화와는 무관한 우주 개척 차원의 활동이고, 그 수단 역시 정당하다는 논리였다. 실제 1967년 발효된 우주조약에는 “각국은 무차별하고 자유롭게 우주공간과 천체를 탐사·이용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박경수 북한 국가우주개발국 부국장 역시 이를 근거로 지난 3월 “우리의 우주활동은 국제법적으로 담보됐다”고 주장했다.

'우주조약'보다 앞서는 '안보리 결의' 효력 

북한은 총 6차례에 걸쳐 위성을 발사했다. 이 중 2차례만 궤도 진입에 성공했다. 사진은 2016년 북한이 발사한 광명성 4호.연합뉴스

북한은 총 6차례에 걸쳐 위성을 발사했다. 이 중 2차례만 궤도 진입에 성공했다. 사진은 2016년 북한이 발사한 광명성 4호.연합뉴스

하지만 북한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에 따라 탄도미사일 기술을 이용한 일체의 발사 시험이 금지된 상태다. 안보리는 2006년 대북제재 결의(1718호)를 통해 “탄도미사일 프로그램과 관련한 모든 활동 중단”을 결정했고, 2009년엔 “탄도미사일 기술을 이용한 어떤 발사도 금지한다”는 내용의 결의(1874호)를 채택했다.  

결과적으로 북한 입장에선 우주조약과 안보리 대북 제재가 상충하는 상황인데, 이 역시 유엔 헌장에 답이 나와 있다. 유엔 헌장 103조에는 “분쟁 발생 시 다른 모든 국제적 의무보다 유엔 헌장에 따른 회원국의 의무가 우선된다”는 점이 명시됐다. 유엔 헌장에는 또 “평화에 대한 위협이 발생할 경우 안보리는 국제 평화와 안전을 유지하기 위한 조치를 결정할 수 있다”며 안보리 결의의 효력을 우선시하는 내용도 담겼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대북 제재 결의를 통해 탄도미사일 기술을 활용한 일체의 발사체 발사를 금지하고 있다. 연합뉴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대북 제재 결의를 통해 탄도미사일 기술을 활용한 일체의 발사체 발사를 금지하고 있다. 연합뉴스

안보리가 탄도미사일 기술을 활용한 발사체를 포괄적으로 금지한 것은 위성 발사 기술이 언제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 핵미사일 발사에 전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탄도미사일과 정찰 위성은 발사 원리와 기반 기술이 동일한 탓이다. 로켓 추진력을 활용하는 발사체에 위성을 탑재하면 우주 발사체고, 탄두를 장착하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 된다. 다만 우주 발사체는 위성을 대기권 밖에 실어 나르는 것으로 역할이 끝나지만, ICBM은 수직으로 치솟아 대기권을 벗어난 이후 목표 지점을 타격하기 위해 대기권에 재진입해야 한다.

"응분의 대가와 고통" 후속조치는 

한미일 북핵수석대표는 31일 북한의 위성발사 직후 3자 유선 협의를 개최했다. 사진은 지난 4월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북핵수석대표 협의 전 기념 촬영하는 김건(가운데)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성 김(오른쪽)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 후나코시 다케히로(船越健裕)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장. 연합뉴스

한미일 북핵수석대표는 31일 북한의 위성발사 직후 3자 유선 협의를 개최했다. 사진은 지난 4월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북핵수석대표 협의 전 기념 촬영하는 김건(가운데)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성 김(오른쪽)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 후나코시 다케히로(船越健裕)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장. 연합뉴스

북한의 위성 발사 직후 한·미·일은 “단호하고 단합된 대응” 필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한·미·일 북핵수석대표는 이날 오전 3자 유선 협의를 갖고 “북한이 국제사회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국제법을 위반하여 국제사회의 평화와 안정을 위협하는 발사를 결국 감행한 것을 강력히 규탄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정부는 강도 높은 규탄 성명 이외에도 사전 경고한 ‘응분의 대가와 고통’을 구체화할 방안 마련에 착수할 예정이다. 문제는 강도 높은 대북 규탄 성명 이외에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을 저지할 물리적 수단이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특히 중·러의 반대로 유엔 안보리 차원의 추가 대북 제재는 논의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안보리에서 추가 제재가 채택된다 해도 북한이 중·러 등 우방국을 포섭해 제재의 빈틈을 넓히는 상황에선 그 효과가 제대로 발휘되기 어렵다.

암호화폐 '돈줄 차단'에 주력 

결국 북한을 옥죄기 위한 정부의 대미(對美) 공조는 북한의 불법 교역과 외화벌이 등 기존 구멍을 메꾸는 대신 새로운 돈줄을 차단하는 데 방점이 찍힐 것으로 보인다. 북한 핵·미사일 개발의 ‘캐시카우(cash-cow)’가 된 암호화폐 해킹은 중·러의 조력이 제한되는 분야로 평가된다. 해킹을 통해 불법 취득한 암호화폐를 동결하거나 역해킹으로 이를 환수할 경우 중·러가 이를 막아서거나 북한을 우회 지원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30일 제주 해비치 호텔에서 열린 확산방지구상(PSI) 고위급회의 공동성명엔 암호화폐 탈취에 대응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사진은 윤석열 대통령의 PSI 고위급 회의 영상 메시지. 연합뉴스

30일 제주 해비치 호텔에서 열린 확산방지구상(PSI) 고위급회의 공동성명엔 암호화폐 탈취에 대응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사진은 윤석열 대통령의 PSI 고위급 회의 영상 메시지. 연합뉴스

이와 관련 지난 30일 PSI 고위급 회의에선 공동성명엔 역대 최초로 북한의 암호화폐 해킹을 막기 위한 국제 공조 필요성이 명시됐다. “PSI가 암호화폐를 동반한 확산 금융, 무형기술이전, 확산 행위자의 국제법 우회 기법 발달 등 새로운 확산 관행에 대응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정부 관계자는 “북한이 암호화폐 탈취에 대규모 인력을 투입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제재망이 느슨하고 돈벌이가 된다는 인식 때문인 만큼, 이런 인식 자체를 끊어내는 고강도의 감시 체계가 필요하다”며 “위성 발사를 비롯한 도발 행위는 스스로를 벼랑 끝으로 내몰게 한다는 점을 북한이 스스로 인식할 수 있도록 지속적이고 일관된 정책을 추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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