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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세 그대로 파리까지…태권도 경량급 ‘작은 거인’ 배준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세계태권도선수권 남자 58kg급 정상에 오른 배준서가 태극기를 들고 환호하고 있다. 사진 세계태권도연맹

세계태권도선수권 남자 58kg급 정상에 오른 배준서가 태극기를 들고 환호하고 있다. 사진 세계태권도연맹

“파리올림픽에 가기 위한, 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경기였습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임했는데 좋은 결과가 나왔네요. 단 하나의 목표인 올림픽 금메달을 향해 더 열심히 달리겠습니다.”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 남자 58㎏급 정상에 오른 직후 배준서(22·강화군청)는 가장 먼저 ‘파리올림픽’을 이야기했다. 작은 승리에 도취되지 않고 최종 목표인 올림픽 금메달을 향해 흔들림 없이 나아가겠다는 각오를 담은 한 마디였다.

배준서는 31일 아제르바이잔 바쿠 크리스털홀에서 열린 이 대회 남자 58㎏급 결승에서 러시아 출신의 게오르기 구르트시에프(개인중립자격선수)를 라운드 점수 2-0으로 누르고 우승했다. 이번 대회 한국 선수단이 거머쥔 첫 번째 금메달. 선수 자신에게는 지난 2019년 영국 맨체스터대회 우승(54㎏급) 이후 4년 만에 다시 목에 건 두 번째 세계선수권 금메달이다.

금메달을 들어보이는 배준서. 사진 세계태권도연맹

금메달을 들어보이는 배준서. 사진 세계태권도연맹

승부처는 8강전이었다. 도쿄올림픽 은메달리스트이자 이 체급 세계랭킹 1위 무함마드 칼릴 젠두비(튀니지)와 맞닥뜨렸다. 접전 끝에 1라운드를 7-7 동점으로 마쳤지만 난이도 높은 타격 횟수가 부족해 우세패를 당하며 탈락 위기에 내몰렸다. 하지만 2라운드에서 특유의 연속 공격을 앞세워 9-0으로 승리하며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여세를 몰아 3라운드에서도 접전 끝에 11-8로 이겨 역전승을 일궈냈다.

결승은 압도적이었다. 1라운드에 먼저 한 점을 내준 뒤 곧장 반격해 10-2로 뒤집었다. 2라운드에서도 15-5로 여유 있게 마무리했다. 배준서는 “젠두비와 맞붙은 8강이 최대 고비였다. 힘이 좋은 상대의 초반 공세에 당황했지만, 고비를 잘 넘겨 역전할 수 있었다”며 밝게 웃었다.

결승에서 러시아 출신의 구르트시에프(왼쪽)에게 발차기를 시도하는 배준서. 사진 세계태권도연맹

결승에서 러시아 출신의 구르트시에프(왼쪽)에게 발차기를 시도하는 배준서. 사진 세계태권도연맹

남자 58㎏급은 국내무대부터 강자들의 전쟁터다. 이 체급 최강자이자 도쿄올림픽 동메달리스트 장준(한국가스공사)이 건재하다. 한 체급 아래인 54㎏급 1인자 박태준(경희대)도 올림픽 무대에서는 58㎏급에서 경쟁한다.

배준서의 별명은 ‘작은 거인’이다. 신장 1m82㎝인 라이벌 장준을 비롯해 상위 랭커 대부분이 1m80㎝ 이상인 이 체급에서 1m72㎝의 작은 키로 경쟁한다. 대신 플레이스타일이 맵다. 민첩한 움직임으로 상대와의 거리를 좁힌 뒤 압도적인 체력을 앞세워 쉴 새 없이 발차기를 연사한다. 해외 선수들 사이에서 ‘코리안 좀비’라 불리는 이유다.

배준서는 “경쟁자들에 비해 체격적인 약점이 도드라지다보니 나만의 무기가 필요했다”면서 “어릴 때부터 틈 날 때마다 산을 뛰며 근력과 체력을 키웠다. 접근전에선 누굴 만나도 자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3월에 열린 국가대표 선발전에서도 장준과 두 차례 만나 모두 승리하며 자신감을 높였다.

현역 은퇴 이후 태권도대표팀 코치로 세계선수권대회에 참여한 이대훈. 연합뉴스

현역 은퇴 이후 태권도대표팀 코치로 세계선수권대회에 참여한 이대훈. 연합뉴스

배준서를 58㎏급 정상에 올려놓은 인물은 ‘미스터 태권도’ 이대훈이다. 은퇴 후 이번 대회 대표팀 코치로 합류한 그는 현역 시절 남다른 친분을 쌓은 후배 배준서를 집중 조련해 압도적 기량의 태권 전사로 키워냈다. 공격적인 경기 운영으로 흐름을 주도하는 노하우를 전수해 배준서의 경기력 향상을 이끌었다. 세계태권도연맹(WT) 공인 올림픽 랭킹 8위인 배준서는 이번 대회 우승으로 4위권까지 순위를 끌어올려 명실상부한 강자로 거듭났다.

한편 이번 대회 기간 중 WT 선수위원으로 출마한 이 코치는 추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에도 도전해 본격적으로 스포츠 행정가의 길을 걸을 계획이다. 이 코치는 “선수위원의 역할은 스포츠의 힘과 의미를 제대로 전달하는 데 있다. 선수의 목표를 대변할 수 있는 사람이 이 업무를 맡아야 한다”면서 “선수 시절엔 나 스스로 변화하고 도전하면 결과가 나오는 구조였다. 스포츠 행정가는 다르다. 다양한 분야에서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역량을 키워가겠다”고 다짐했다.

이 코치에 앞서 선수 IOC 위원직에 도전장을 낸 스포츠 스타로는 ‘사격 레전드’ 진종오 강원청소년동계올림픽 공동위원장과 여자배구 간판 김연경(흥국생명) 등이 있다.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 기간 중 세계태권도연맹 선수위원으로 출마한 이대훈은 추후 유승민 대한탁구협회장의 후임 자리를 놓고 국제올림픽위원회 선수위원에도 도전장을 낼 계획이다. 김성태 프리랜서 기자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 기간 중 세계태권도연맹 선수위원으로 출마한 이대훈은 추후 유승민 대한탁구협회장의 후임 자리를 놓고 국제올림픽위원회 선수위원에도 도전장을 낼 계획이다. 김성태 프리랜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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