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커피 찌꺼기로 데크 길 만든 韓기술…사우디 녹색수출 길 '활짝'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5면

한화진 환경부 장관을 만난 칼리드 알 팔리(Khalid Al-Falih) 사우디아라비아 투자부 장관이 한국 기업이 개발한 커피 찌꺼기 목재 샘플을 만져보고 있다. 사진 환경부

한화진 환경부 장관을 만난 칼리드 알 팔리(Khalid Al-Falih) 사우디아라비아 투자부 장관이 한국 기업이 개발한 커피 찌꺼기 목재 샘플을 만져보고 있다. 사진 환경부

사우디아라비아의 '금고지기'로 불리는 칼리드 알팔리 투자부 장관은 지난 14일(현지시간) 수도 리야드에 방문한 한화진 환경부 장관에게 긴급 만찬을 제안했다. 환경부가 현지에서 '한-사우디 녹색기술 설명회'를 개최한 날이었다. 이날 만찬 자리에는 한국의 중소기업에서 만든 '커피 찌꺼기 대체 목재' 샘플이 등장했다. 참석자들은 목재 냄새를 맡아보곤 커피 냄새가 나지 않는다며 신기해했다고 한다.

한 장관은 환경부 직원들과 함께 지난 13일부터 6일간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집트를 방문했다. 국내 녹색기술 기업의 해외 진출을 지원하기 위해서다. 환경부는 현 정부 임기 내 100조원의 녹색산업 수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번에 환경부가 개최한 녹색기술 설명회에는 국내 14개 공기업, 대기업, 중소기업의 기술이 소개됐다. 파하드 알나임 사우디 투자부 차관은 당초 개회사만 하고 행사장을 떠나기로 돼 있었지만, 2시간에 걸쳐 기술 설명을 끝까지 들었다. 이후 한 장관과 함께 기업 부스를 돌아보기도 했다.

커피 찌꺼기를 재활용해 만든 대체 목재(데크) 길. 사진 동하

커피 찌꺼기를 재활용해 만든 대체 목재(데크) 길. 사진 동하

한화진 환경부장관이 14일(현지시간) 오전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열린 ‘한국-사우디아라비아 녹색기술 설명회’에서 파하드 알나임 사우디 투자부 차관과 함께 한국 기업의 녹색기술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 환경부

한화진 환경부장관이 14일(현지시간) 오전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열린 ‘한국-사우디아라비아 녹색기술 설명회’에서 파하드 알나임 사우디 투자부 차관과 함께 한국 기업의 녹색기술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 환경부

이번 설명회를 계기로 양국 기업이 협력 방안을 모색하는 사례도 나왔다. 사우디의 쓰레기 재활용 기업인 AAN의 압둘아지즈 사우드 아부나얀 회장은 30일 “한국 기업과 실제로 협력을 하기로 했다. 해당 기업 초청으로 한국에 와서 공장을 견학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앞서 사우디에서 ‘쓴 맛’을 봤던 국내 대기업들도 달라진 분위기를 체감하고 있다. 남우연 SK에코플랜트 UAE·사우디 지사장은 설명회에 참석한 뒤 “몇 년 전만 해도 콧대가 무척 높았던 사우디 기업의 분위기가 확실히 달라졌다. 우리가 러브콜을 보냈던 사우디 국영 기업 관계자가 행사장에 나타나 진지하게 협력 방안을 논의하자고 하더라”고 말했다. 남 지사장은 “사우디 시장에서 철수를 고민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만난 투자부 장관이 ‘SK 돈 고(Don't go), 돈 고’ 두 번 말하더라”고 전했다.

7년 남은 빈 살만의 ‘비전 2030’…급한 사우디 

네옴시티 '더라인'. 폭 200m 높이 500m의 유리로 된 초대형 장벽을 170㎞ 길이로 지어 그 안에 다중레이어로 된 커뮤니티를 만든다는 계획이다. 사진 네옴컴퍼니

네옴시티 '더라인'. 폭 200m 높이 500m의 유리로 된 초대형 장벽을 170㎞ 길이로 지어 그 안에 다중레이어로 된 커뮤니티를 만든다는 계획이다. 사진 네옴컴퍼니

사우디는 빈 살만 왕세자의 ‘비전 2030’ 시한이 7년 앞으로 다가오며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비전 2030은 석유 시대 종말에 대비해 사우디에 네옴시티 등 대규모 친환경, 첨단 도시를 만든다는 구상이다. 사우디 정부는 1970년대부터 신뢰를 쌓아온 삼성, 현대, 두산 등 한국 건설 대기업들과는 대규모 프로젝트를 시작했지만, 친환경 녹색 기술에 대해서는 투자 갈피를 잡기 어려운 상태였다고 한다. 박준용 주사우디 한국 대사는 “건설 외에도 사우디에서 그린 테크, 바이올로지 등 다른 분야 수요가 급증하던 차에 환경부가 적시에 설명회를 열었다”며 “장관이 정부가 선별한 기술 기업과 함께 오는 게 사우디 정부, 기업들과 관계를 맺기에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사우디 정부도 이번 설명회에서 자국의 목표를 발표했다. 특히 해수 담수화, 폐수 처리, 누수 없는 물 공급 시스템 등 물 관련 기술 수요가 늘고 있다고 밝혔다. 사우디는 현재 각각 59%, 41% 비율인 담수, 지하수 공급 비율을 2030년까지 90%, 10%로 조정하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스마트 수질 관리 로봇 기술로 설명회에 온 스타트업 에코피스의 채인원 대표는 “현지에서 만난 다른 한국 기업과 함께 더 경쟁력 있는 물 사업 패키지를 만들어 사우디 수자원 관리 기업들에게 제안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14일 사우디아라비아 수도 리야드에서 열린 '한-사우디 녹색기술 설명회' 참석자들이 기업들의 기술 발표를 듣고 있다. 사진 환경부

14일 사우디아라비아 수도 리야드에서 열린 '한-사우디 녹색기술 설명회' 참석자들이 기업들의 기술 발표를 듣고 있다. 사진 환경부

환경부는 이번 설명회에서 친환경 기술 수요를 확인한 만큼 앞으로 사우디에서 물, 재생에너지, 지원순환 등에 관한 한국 기업 설명회를 열 계획이다. 한 장관은 “국가 대 국가로 만나면 민간 기업이 알기 어려운 기술 수요 정보를 얻을 수 있다”며 “환경부가 정보를 얻고 관련 기술을 보유한 국내 기업의 활로를 적극적으로 열어주겠다”고 말했다.

다만 사우디 기업의 의사 결정 과정이 느린데다가, ‘사우다이제이션'(Saudization·현지인 채용, 기술 현지화)’ 요구도 한국이 감수해야 할 리스크다. 사우디의 한 기업 관계자는 “굉장히 흥미로운 설명회였고 관심 있는 회사가 있다”면서도 “기술을 판매하려는 의지는 보였지만, 삼성이나 LG처럼 사우디에 공장을 세우고 현지화를 할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에서는 내 기준에 미치지 못했다”고 말했다.

김두식 코트라 리야드 무역관장은 “사우디 시장은 냉정하다. 중국과 유럽도 사우디와 접촉하고 있고, 특히 중국은 저렴한 단가로 태양광 대규모 수주에 성공하기도 했다. 사우디는 모두의 제안서를 받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열매를 맺기까지는 한국 기업에 인내의 시간과 경험 축적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우디 주재 대사관의 역할이 커지는 가운데 주사우디 대사관에서는 경제 관련 인력 충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 대사는 “건설 외에 녹색, 의료, 바이오 등의 수요가 늘고 있다”며 “대사관 경제부 직원들의 업무가 과중해 본국에 인력 충원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