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30일 오후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에 대한 면직안을 재가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이날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한 위원장은 중대한 범법 혐의로 방송의 공정성과 중립성을 훼손해 방통위원장으로서 자질과 도덕성에 문제를 드러냈다”며 “한덕수 국무총리 면직 결재를 거쳐 윤 대통령이 오늘 최종 면직 처분을 재가했다”고 말했다.
정부는 한 위원장이 2020년 TV조선의 종합편성채널 재승인 심사 당시 점수 조작에 관여한 혐의로 기소된 것을 ‘방송통신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방통위법)에 따라 면직할 수 있는 사유라고 보고 면직 절차를 진행해 왔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인사혁신처는 지난주 한 위원장에 대한 청문 조서와 의견서를 대통령실로 송부했으며, 이를 종합적으로 검토한 윤 대통령이 면직 처분을 결정했다. 한 위원장의 당초 임기는 7월 말까지다.
대통령실은 한 위원장의 면직안을 재가하며 입장문을 통해 TV조선 재승인 심사 조작 의혹과 관련해 기소된 한 위원장의 검찰 공소장과 청문 자료에 근거해 법령 위반 혐의를 조목조목 제시했다.
대통령실은 “한 위원장은 방통위 실무자로부터 TV조선 재승인 심사 결과상 문제없다는 보고를 받자 '미치겠네, 시끄러워지겠네, 욕을 좀 먹겠네’라며 점수 집계 결과를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의사를 표명하는 등 방송통신위원장으로서의 공정성을 저버렸다”며 “방통위 담당 국·과장과 심사위원장을 지휘 및 감독하는 책임자로서 그 의무를 전혀 이행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대통령실은 이어 한 위원장이 “'TV조선 재승인 심사위원회의 일부 심사위원에게 부탁하여 TV조선 평가 점수를 사후에 재수정함으로써 일부 항목을 과락으로 만들었다'는 사실을 보고받고, 방통위 전체회의에서 그 조작 사실을 모르는 위원을 속여 TV조선에 대해 ‘조건부 재승인’ 결정이 내려지도록 하는 등 위계로써 공무집행을 방해했다”며 이는 형법 제137조 위반이라 지적했다.
또한 평소 TV조선의 재승인을 취소해야 한다고 주장해오던 민언련 소속 인사를 TV조선 재승인 심사위원에 포함하도록 한 위원장이 직접 지시했고, 그 과정에서 다른 방통위원들과의 협의 절차를 거치지 않는 것은 직권 남용(형법 제123조 위반)에 해당한다고 대통령실은 설명했다.
한 위원장이 방통위 기준을 무시하고 TV조선 재승인 유효기간을 3년으로 단축한 것 역시 직권남용이며, TV조선 사후조작 관련 언론 취재에 대응해 방통위가 관여하지 않았다는 허위 보도자료를 작성해 배포하게 한 것은 허위 공문서 작성으로 형법 제227조 위반이라고 대통령실은 밝혔다.
대통령실은 이를 통해 한 위원장이“지휘·감독 책임과 의무를 위배해 3명이 구속 기소되는 초유의 사태를 발생시켰고, 본인이 직접 중대 범죄를 저질러 형사 소추되는 등 방통위원장으로서 정상적인 직무 수행이 불가능한 상황에 이르러 면직한 것”이라고 이번 결정의 배경을 밝혔다.
하지만 한 위원장은 즉각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는 부분에 대해 다퉈나가겠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면직 재가 처분에 대해서도 행정처분 취소 소송이나 집행정지 신청 등을 검토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도 가세했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윤석열 정부가 법률로 신분을 보장받는 방통위원장을 찍어내기 위해서 집요하고 야비한 방법을 총동원했다”고 했다. 민주당 언론자유특별위원회도 성명을 내고 “한 위원장에 대한 부당한 면직은 언론장악의 디딤돌이 아니라 윤석열 정권의 언론장악 시도 흑역사로 기록될 것”이라고 했다.
차기 방통위원장으로는 윤 대통령 취임 직후부터 대외협력특보를 맡아온 이동관 전 청와대 홍보수석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내부에서 적임자로 이 전 수석의 이름이 많이 거론되고 있다”고 전했다. 다른 참모는 “이 전 수석 외 복수의 후보군을 검증하려 한다”며 “새 방통위원장이 8월부터 바로 임기를 시작할 수 있어야 하기에 다음 달 중에는 인선을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윤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 상춘재에서 종교 지도자 9명과 오찬 간담회를 가졌다. 간담회에는 조계종 총무원장 진우 스님, 천태종 총무원장 덕수 스님, 한국교회총연합회 대표회장 이영훈 목사, 명성교회 김삼환 원로목사, 천주교 정순택 서울대교구장, 원불교 나상호 교정원장, 최종수 성균관장, 천도교 박상종 교령, 한국민족종교협의회 김령하 회장 등이 참석했다.
윤 대통령은 비공개로 진행된 오찬 간담회에서 글로벌 외교와 교육개혁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고 김은혜 홍보수석이 서면 브리핑에서 전했다. 윤 대통령은 “전 세계에 걸쳐 오지에까지 우리 국민이 안 계신 곳이 없다. 촘촘한 외교망으로 뒷받침하겠다“며 “이로써 나라를 지키고 대북관계도 잘 풀어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종교 지도자들도 한·미·일 협력 등 넓어진 외교 지평으로 자유 민주주의가 더욱 결실을 맺기를 바란다고 말했다고 대통령실은 전했다.
이어 윤 대통령은 교육개혁도 언급했는데, 특히 아이들 보육을 국가가 확실하게 책임지겠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에 종교 지도자들은 정부에 애로사항의 해소와 제도적 뒷받침을 요청하면서 “부모가 없는 아이들과 한부모 가정, 다문화 가정 아이들이 잘 성장할 수 있도록 종교계가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오찬은 예정보다 한 시간을 더 넘긴 2시간반가량 진행됐으며, 윤 대통령은 오찬 간담회 이후 종교 지도자들을 청와대 상춘재 앞뜰을 지나 본관까지 안내하며 일일이 배웅했다고 대통령실은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