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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세난 퍼지는데 '패닉셀' 없다?...서울 급매물 사라진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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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서울 종로구의 한 부동산 중개업소 앞에 전세 매물 등 부동산 매물 정보가 게시되어 있다. 직방에 따르면 올해 4월 전세가격지수가 2년 전(2021년 4월) 대비 11.8% 떨어졌다. 연합뉴스

서울 종로구의 한 부동산 중개업소 앞에 전세 매물 등 부동산 매물 정보가 게시되어 있다. 직방에 따르면 올해 4월 전세가격지수가 2년 전(2021년 4월) 대비 11.8% 떨어졌다. 연합뉴스

최근 서울 아파트 매매시장에 ‘역(逆)전세난’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2년 전 전세계약 때보다 전셋값이 하락해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전세보증금을 돌려주기 어려워진 상황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역전세난은 집값을 끌어내리는 요인이다. 하지만 최근 서울 아파트 시장은 대단지를 중심으로 거래가 늘고 가격이 상승하고 있다.

28일 중앙일보가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을 분석한 결과 올해 하반기(7~12월)에 전세 계약 만료가 예상되는 서울 아파트의 41.4%가 2년 전 계약 시점보다 가격이 내려간 것으로 조사됐다. 2021년 하반기는 새 임대차법(계약갱신청구권·전월세상한제) 시행 여파로 전셋값이 사상 최고 수준을 기록한 시점이다.

당시 서울 아파트 전세 계약 건수는 6만5719건인데, 이 중 올해 동일면적의 전세 거래가 한 건 이상 이뤄져 시세 파악이 가능한 계약은 5만8137건이다. 역전세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2년 전 전셋값이 올해 전세 거래 최고가보다 같거나 높은 계약을 조사해보니 2만4071건(41.4%)으로 나타났다. 월평균 4000건이 넘는다. 이 계산에서 올해 새 전세 계약이 없어 시세를 측정하기 어려운 7587건은 빠져 있는데, 이를 고려하면 역전세에 놓인 서울 아파트 전세 계약이 2만7000건을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조사 결과 집주인이 시세 하락으로 세입자에게 돌려줘야 할 보증금 차액의 합은 서울에서만 2조6000억원을 넘을 것으로 보인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역전세난은 매매 가격의 하락 요인으로 작용한다. 갭투자(전세를 끼고 집 매수)를 한 임대인이 역전세로 인한 전세 보증금 차액을 마련하지 못하면 사실상 집을 처분하는 수밖에 없다.

급하게 집을 매도하려는 집주인이 늘어날수록 경쟁적으로 가격을 내리는 ‘패닉셀(투매)’이 나타날 수 있다. 임대인과 임차인간 보증금 반환 소송이 늘고, 경매 물건이 증가하는 것도 집값 하락 가능성을 키운다.

한국은행은 지난 25일 낸 경제전망보고서에서 “역전세에 따른 보증금 상환 부담은 매물 증가로 이어져 매매가격에 대한 하방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부동산리서치법인 ‘광수네 복덕방’의 이광수 대표도 “전셋값이 하락하면 매도 물량이 증가할 수 있고, 이런 상황은 올해 하반기부터 빈번해질 가능성이 크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최근 서울 아파트 시장은 이런 우려와 정반대로 움직인다. 부동산 거래플랫폼 직방 기준 지난달 전국 아파트 전세가격지수가 2년 전보다 11.8% 하락하는 등 전셋값 급락으로 인한 역전세난에 놓인 집주인이 늘고 있지만, 최근 서울 아파트 매매 시장에서는 오히려 시세보다 가격을 낮춘 급매물이 사라지는 분위기다.

전세 수요가 많은 서울 대단지 위주로 거래량이 증가하면서 상승 거래 비중이 높아지고, 급매물로 볼 수 있는 최저 매도호가도 오르고 있다. 직방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아파트 거래에서 직전 거래가보다 높은 가격에 계약된 상승 거래의 비중은 46.1%로 하락 거래 비중( 39.5%)보다 높아졌다. 서울 아파트 거래에서 상승 거래가 하락 거래를 앞지른 것은 지난해 4월(상승 47.4%, 하락 37.6%) 이후 1년 만이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최저 호가도 오름세다. 4932가구 규모의 강동구 고덕동 고덕그라시움 전용 84㎡의 지난 1월(2일 기준) 최저 호가는 12억5000만원이었는데, 이달 27일에는 15억원으로 20%(2억5000만원)가 뛰었다. 송파구 잠실동 리센츠(5563가구) 전용 84㎡ 역시 최저 호가가 지난 1월 18억5000만원에서 이달 21억5000만원으로 16.2%(3억원) 상승했다.

이런 이유로 일부 전문가들은 하반기 역전세난이 심각지 않을 것으로 전망한다. 일시적 혼란이 발생할 수는 있지만, 전체 시장에 영향을 주지는 않을 것이란 분석이다. 부동산 정보제공업체 부동산R114의 조사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5월까지 수도권 전세 감액 갱신계약과 신규계약이 각각 1건 이상 체결된 7271건의 사례 중 4172건(57%)은 신규계약 보증금(최고가 기준)이 갱신 보증금보다 낮은 사례로 나타났다.

윤지해 부동산R114 리서치팀장은 “이사비, 중개보수, 대출이자 등 전셋집 이동에 드는 비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에 좀 더 높은 가격을 지불하고라도 갱신계약을 체결하는 사례가 많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경우 임대인이 계약 종료 시 반환해야 할 보증금 액수가 줄어든다. 최근에는 모자란 보증금 일부의 이자를 계산해 임대인에 임차인에게 월세 형태로 지급하는 역월세도 등장했다.

최근 서울 아파트 전세 매물이 크게 줄고 전셋값이 소폭 반등한 것도 이런 전망을 뒷받침한다. 아실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전세 매물은 올해 초보다 30.9%(5만4666→3만7801건) 줄었다.

거래량이 증가하고 가격이 상승하면서 역전세난에 처한 집주인이 큰 손해를 보지 않고 아파트를 매도한 사례도 나온다. 박합수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는 “올해 하반기를 지나고 내년이 되면 오히려 서울 아파트 입주 물량이 크게 줄어들어 전셋값이 다시 상승할 여지도 있다”고 말했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다만 2020~2021년 무자본 갭투자가 성행했던 빌라, 오피스텔 등 비아파트와 아파트 갭투자가 많았던 경기 남부, 인천 등에서는 역전세난으로 인한 보증금 미반환 문제가 심화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규정 한국투자증권 자산승계연구소 소장은 “입주물량이 몰리는 시기나 지역의 경우 전셋값이 하락해 역전세로 인한 임대인의 부담이 커질 수 있다”면서도 “아파트보다는 갭투자가 몰린 비아파트에 이런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임차인에게 소득공제 혜택을 한시적으로 제공하고,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규제에서 보증금 반환 목적의 대출을 제외하는 등의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박진백 국토연구원 연구위원은 “계약 갱신이 원활하게 이뤄져야 보증금 미반환 문제도 어느 정도 해소될 수 있다”며 “정부가 갱신계약을 체결하는 임차인에게 한시적으로 임대 보증금에 대한 세제 혜택을 주는 방법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윤지해 팀장은 “여유 현금이 없는 집주인은 보증금 반환을 위해 대출이라도 받아야 하는데, 소득 기준으로 대출을 제한하는 DSR 규제 때문에 대출받기가 어렵다”며 “임대인의 신용을 최대한 활용해 문제를 해결하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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