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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 핀 병사 어눌해져"…폰 허용한 해부터 軍마약 확 늘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 지난해 12월 군사경찰에 마약 관련 제보가 접수됐다. 육군 한 수도권 부대에서 담배를 피우면 말이 어눌해지는 증세를 보이는 병사가 있다는 내용이었다. 수사 결과 당시 상병이던 해당 병사는 외박을 다녀오면서 들여온 액상 대마를 전자담배에 넣어 피운 것으로 드러났다.

# 지난 4월 중순 경기 연천 한 부대에 군 수사관들이 들이닥쳤다. 일부 병사가 동료들에게 마약을 권유한다는 제보를 받고 불시 수색에 나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생활관 천장과 관물대에서 대마초가 발견됐고 6명이 이를 나눠 피운 사실이 드러났다. 이중 주범 2명은 택배에 대마초를 영양제로 위장해 숨겨 들여온 것으로 전해졌다.

케타민, 대마초 등 마약류.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 관계 없음) 연합뉴스

케타민, 대마초 등 마약류.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 관계 없음) 연합뉴스

군 내 마약 범죄가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영내 반입 수법은 교묘해지는 데 반해 단속 등 대책이 이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올 하반기부터 군 간부와 병사에 대해 마약 검사를 실시하겠다는 방안을 최근 내놓는 등 군 당국도 뒤늦게 발등에 불이 떨어진 모양새다.

마약 경로 접근 용이해져…군 마약 범죄 꾸준한 증가세

군 당국에 따르면 군 내 마약 관련 사건은 2020년 9건, 2021년 20건, 2022년 30건 등 꾸준히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군 안팎에선 병사 휴대전화 전면 사용 허용을 기점으로 사태의 심각성이 이미 예고됐다는 시각이 상당하다.

육군 한 부대에서 일과를 마친 병사들이 휴대전화를 사용하고 있다.(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 관계 없음) 연합뉴스

육군 한 부대에서 일과를 마친 병사들이 휴대전화를 사용하고 있다.(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 관계 없음) 연합뉴스

실제 2017년 4건에 그쳤던 군 마약 범죄는 2018년 13건, 2019년 24건으로 늘었다. 병사 휴대전화 사용은 2018년 일부 부대에서 시범적으로 운영됐다가 2019년 4월부터 모든 부대로 확대 운영되기 시작됐다. 군 관계자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한 마약 구매 경로에 접근하기 쉬워진 점이 한몫한 것으로 보인다”며 “반입 시도 자체가 늘어날 수밖에 없는 만큼 발각되지 않은 사례가 얼마나 될지 예상이 어렵다”고 말했다.

당장 뾰족한 수 없는데, 교묘해지는 반입 수법

이 때문에 대부분 적발은 여전히 내부 고발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지난 4월 수도권 한 육군 부대에서도 하사가 마약을 하는 것 같다는 제보가 들어와 수사가 진행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하사가 이 같은 내용을 주변에 털어놓고 다닌다는 신고가 군 수사단에 접수돼 입건과 압수수색 등이 이뤄졌다고 한다.

군 당국은 현실적으로 내부 고발과 영내 택배 물품에 대해 더욱 철저한 검사를 실시하는 것 외엔 당장 뾰족한 수가 없다는 입장이다. 국방부 부대관리 훈령은 "사고 우려가 있다고 판단 시 소포, 등기, 택배 등 우편물은 수취인 동의하에 소속 부대장 또는 부대장이 지정한 자 입회하에 수취인이 직접 개봉, 확인 후 수령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 같은 근거를 들어 현재 영내로 반입되는 모든 택배는 검사 후 본인 수령이 이뤄지고 있다.

문제는 위장 수법이 교묘해지면서 단속 사각지대도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야전 부대 한 관계자는 “마약류를 사탕이나 젤리로 가공하거나 캡슐 형태 영양제에 섞어 반입하는 경우 적발이 쉽지 않다”며 “쏟아지는 택배 물품 속에서 육안 검사로 일일이 마약을 구분해내는 데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부대 관리자에 대한 마약류 식별 사례 교육을 늘리겠다는 군 당국의 대응책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장병 전수조사 칼 빼든 軍, 병사들에게도 가능할까

이런 상황에서 군 당국이 내놓은 대책은 전수조사다. 23일 발표된 '군 마약류 관리 개선방안’에 따르면 간부의 경우 임관 예정자 및 장기 복무 지원자 전체를 대상으로 이르면 8월부터 마약류 검사가 실시된다. 복무 중인 간부는 1년에 한 차례 마약류 관련 검사를 포함한 신체검사를 받게 된다. 군 당국은 간부에 대해선 대통령령인 신체검사 규정만 바꾸면 돼 이 같은 전수조사가 빠른 시일 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입영대상자들이 신체검사를 받고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 관계 없음) 뉴스1

입영대상자들이 신체검사를 받고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 관계 없음) 뉴스1

반면 병사를 대상으로 하는 전수조사는 시행까지 넘어야 할 산이 적지 않다. 군 당국은 병사에 대해선 입영 신체검사 때 마약류 검사를 함께 진행하고, 전역 전 1회 이상 받아야 하는 건강검진의 소변 검사 항목에 마약류 검사를 추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군 복무를 선택하지 못하는 징병제 국가에서 병사 전체에 대해 의무적인 마약류 검사는 기본권 침해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군 당국은 “병역법 개정을 통해 법적 근거를 마련하겠다”는 방침이지만 관련 개정안이 국회 문턱을 넘을 수 있을지조차 불투명하다.

군 당국자는 “군 내 마약 범죄 상당수가 병사들에 의해 벌어지는 만큼 병역법 개정이 시급하다”며 “병사 전원에 대한 마약 검사가 어려워질 경우 어떤 식으로 감시 수위를 높일지 대안도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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