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개월 만에 7만전자…“재고 바닥 보인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기업 주가가 활짝 웃었다. 미국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 발 훈풍 덕이다. 삼성전자는 1년 2개월 만에 장 중 ‘7만전자’를 밟았고, SK하이닉스도 모처럼 10만원을 훌쩍 넘겨 거래됐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25일 삼성전자 주가는 전날보다 0.44% 오른 6만8800원에 장을 마쳤다. 장 중반 이후 차익 실현 매물로 다소 주춤했지만, 개장 직후 2.19% 오른 7만원을 터치하며 52주 신고가를 찍었다. 삼성전자가 장중 기준 7만원을 넘어선 것은 지난해 3월 31일 이후 1년 2개월여 만이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SK하이닉스도 전날보다 5.94% 오른 10만3500원을 기록했다. SK하이닉스 주가가 10만원을 넘어선 것도 지난해 7월 29일 이후 10여개월 만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가 힘을 받은 건 전날 밤 미국 뉴욕 시장에서 엔비디아가 시장 예상치를 웃도는 실적을 발표한 게 한몫했다. 엔비디아는 24일(현지시간) 올해 1분기(2~4월) 순이익이 1년 전보다 26% 늘어난 20억4300만 달러(2조7000억원)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엔비디아는 인공지능(AI) 칩 등 데이터센터 부문 매출액이 크게 늘었고, 오는 2분기(5~7월) 실적도 110억 달러(14조5700억원) 안팎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에 엔비디아 주가는 시간 외 거래에서 27%가량 급등했다.

AI 매출 증가에 따른 메모리 반도체 업황 개선 기대감은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반도체 업종 주가에 호재가 됐다. 이은택 KB증권 연구원은 “엔비디아가 2분기 매출을 110억 달러로 제시한 것은 기업의 반도체 주문이 늘었다는 의미로, 메모리 반도체 수요도 예상보다 빠르게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며 “메모리 반도체 감산에 따른 가격 상승은 반도체 업종 주가에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증권가는 이르면 올해 3분기 이후부터 반도체 업황 개선으로 관련 기업 실적도 회복 국면에 들어갈 것으로 전망한다. 창고에 쌓인 재고가 1~2분기에 정점을 찍고 줄기 시작할 것으로 예상해서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실제로 삼성전자의 최근 분기보고서에 따르면 이 회사의 올해 1분기 재고자산회전율은 3.5회로 하락 국면이 시작된 2021년 1분기(5.3회) 이후 가장 낮은 수치를 보였다.

재고자산회전율이 바닥을 보일 때는 창고에 쌓인 재고품이 시장에 팔려나가는 속도가 더뎌, 쌓인 재고 물량이 정점에 다다랐을 가능성이 크다. 이 같은 상황에선 영업 실적도 바닥일 수 있다.

‘빅3’ 메모리반도체 기업의 상황이 비슷하다. 유진투자증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삼성전자의 재고자산은 31조9000억원으로 반도체 매출액의 2.3배다. 미국 마이크론의 재고자산도 매출액 대비 2.6배로 추산된다. SK하이닉스의 경우 이 비율이 3.4배로 빅3 기업 중 가장 심각하다.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축적된 재고에 더해 급감한 수요로 반도체 업체의 재고자산 총액은 유례를 찾기 힘들 만큼 높아진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삼성전자의 경우 재고자산이 정점을 찍은 뒤에는 주가가 상승세를 탈 가능성 크다는 분석도 있다. KB증권이 삼성전자의 지난 20년간 재고자산과 주가 흐름을 분석한 결과, 재고가 정점(2008년 4분기, 2015년 3분기, 2019년 1분기)을 찍은 직전 분기부터 주가가 반등한 것으로 나타났다. 재고 정점 이후 9개월 동안 최소 25% 이상의 주가 상승 패턴도 보였다.

김광진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올해 3분기부터 세계 D램 메모리 반도체 시장은 공급 부족 구간으로 진입할 것으로 예상한다”며 “이는 축적된 재고의 소진과 실적 개선으로 연결돼 삼성전자 실적도 올해 2분기를 바닥으로 개선될 전망”이라고 관측했다.

김도년 기자 kim.donyu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