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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브 보러 상경"…가수도 안 온다, 축제때도 서러운 지방대

중앙일보

입력

20일 연세대 노천극장에서 열린 '아카라카'에서 걸그룹 아이브(IVE)가 공연하고 있다. 사진 아이브 인스타그램

20일 연세대 노천극장에서 열린 '아카라카'에서 걸그룹 아이브(IVE)가 공연하고 있다. 사진 아이브 인스타그램

연세대 축제 ‘아카라카’가 열린 노천극장, 인기 걸그룹 아이브가 연세대 '과잠'(학과 점퍼)을 입고 등장하자 학생들의 함성이 터져나왔다. 아이브가 4곡을 부르는 내내 학생들은 노래를 부르고 춤을 따라 추기도 했다. 아이브는 인기곡의 노래 가사 일부를 연세대에 맞춰 개사해 더 큰 호응을 얻었다.

지난 20일 열린 연세대 축제는 케이팝 콘서트를 방불케 했다. 아이브, 르세라핌, 에스파 등 인기 걸그룹이 총출동하면서 1만7000원짜리 티켓을 20만원에 파는 암표 거래가 성행할 정도였다. 연세대 학생 박지환(25)씨는 “학생들이 다 아는 가수가 오면 ‘떼창’도 나오고 분위기가 좋아진다. 인기 연예인이 올수록 학교에 대한 자부심도 커진다”고 말했다.

코로나19를 벗어난 올해 5월 대학가는 축제가 한창이다. 대학들은 축제에 인기 연예인 섭외에 사활을 걸고 있다. 온라인에는 각 대학 축제 출연진 라인업 표가 돌아다닌다. 건국대 학생 김다은(22)씨는 “요즘 대학 축제에선 인기 걸그룹 출연 여부가 흥행 요소”라며 “근처 세종대에 아이브가 온다고 해서 갔더니 오후 2시부터 입장할 수 없을 정도로 열기가 엄청났다”고 했다.

“웃돈 줘도 지방은 안 간다”

17일 서울 광진구 세종대학교에서 열린 2023학년도 세종대학교 대동제 '해피세종데이'에서 학생들이 공연관람을 위해 학교 밖까지 길게 줄지어 서 있다. 뉴스1

17일 서울 광진구 세종대학교에서 열린 2023학년도 세종대학교 대동제 '해피세종데이'에서 학생들이 공연관람을 위해 학교 밖까지 길게 줄지어 서 있다. 뉴스1

하지만 지방대 축제에서는 인기 아이돌을 찾아보기 어렵다. 이번 달 아이브는 성균관대·세종대·연세대, 르세라핌은 단국대·연세대·중앙대, 에스파는 연세대·한양대(ERICA)에서 공연했거나 할 예정이다. 모두 서울·수도권 대학이다. 비수도권 대학도 많게는 연예인을 10명씩 섭외하지만, 학생들 사이에선 “내가 좋아하는 연예인이 없다”는 불만이 나온다. 한 지역 국립대 학생은 “아이브나 르세라핌을 보려고 자기 학교 축제를 포기하고 서울로 올라가는 학생들도 있다”고 말했다.

지방대도 인기 연예인 섭외에 열심인 건 마찬가지다. 대학가에 따르면 연예인 섭외를 위해 수억원대 예산을 책정하기도 한다. 인기 연예인의 경우 출연료가 많게는 5000만원을 넘는데, 비수도권은 여기에 500~1000만원이 추가된다고 알려져있다. 한 지역 사립대 관계자에 따르면 아이돌 없이 래퍼와 발라드 가수 등 6명 공연을 준비하는 데에 1억2000만원이 들었다고 한다.

특히 올해는 그동안 중단된 행사와 축제가 한꺼번에 몰리면서 섭외가 더 어려워졌다. 특히 대학 축제가 몰린 5월에는 출연진들이 같은 비용이라도 수도권 대학을 선호한다. 섭외 대행 업체 관계자는 “연예기획사들이 대전 아래로는 가기 어렵다고 한다. 서울에선 저녁 공연을 세 번 할 수 있는데 지방에 내려가면 한 번밖에 못하지 않느냐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같은 가수여도 서울에서 500만원이라면 지방에선 1500만원 이상을 줘야 계산이 맞다”고 했다.

때문에 축제 성수기인 5월을 피해 3월이나 가을로 축제 기간을 옮기는 지역 대학도 적지 않다. 한 영남권 사립대 관계자는 “3월 개강 직후 축제를 했더니 날씨는 조금 추웠지만 훨씬 적은 비용으로도 더 유명한 연예인을 부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재정 어려운데…“섭외력이 곧 경쟁력”

17일 서울 광진구 건국대학교 서울캠퍼스에서 열린 2023 건국대학교 축제 '녹색지대'에서 학생들이 축제를 즐기고 있다. 뉴스1

17일 서울 광진구 건국대학교 서울캠퍼스에서 열린 2023 건국대학교 축제 '녹색지대'에서 학생들이 축제를 즐기고 있다. 뉴스1

신입생 미충원, 등록금 동결로 재정난을 겪는 지역 대학들로선 연예인 출연료가 상당한 부담이다. 그런데도 계속 인기 연예인을 섭외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학교 홍보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연예인을 만날 기회가 더 적은 지방에서는 대학 축제 라인업이 지역 주민과 고등학생에게도 활발히 공유된다는 것이다.

한 지역 사립대 관계자는 “지방에선 학생들이 대중문화를 즐길 기회가 거의 없다. 서울보다 더 비싼 비용을 내서라도 연예인을 섭외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20대 대학생 김모씨는 “누구를 섭외하는지가 학교와 학생회의 영향력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학교에 대한 소속감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라고 말했다.

‘축제 라인업 경쟁’이 학내 갈등으로 번지기도 했다. 최근 한 지역 사립대에선 학생들이 총학생회에 “학생회비 횡령이 의심된다”고 반발했다. 인근의 다른 대학에 비해 섭외한 연예인의 인지도가 너무 낮다는 이유였다. 총학생회 측은 “다른 대학보다 학생 수가 적고 학생회비 납부율이 낮아 예산이 3배 이상 차이가 났다”며 “주어진 예산에서 최선을 다했다”고 해명해야 했다.

지역에선 대학 축제를 지자체와 연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원도연 원광대 디지털콘텐츠공학과 교수는 “축제 기간에는 학생들뿐만 아니라 주민들도 활기를 찾는다. 대학 축제를 단순히 놀고 마시는 게 아니라 하나의 문화 행사로 보고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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