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의 주요 인사들이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4주기를 맞아 봉하마을에 집결했다. 양당이 각각 태영호·김재원 전 최고위원 실언(국민의힘), 돈 봉투 사건과 가상화폐 투자 의혹(더불어민주당) 등 악재에 직면한 상황에서 한 자리에 모인 것이다.
이날 오후 2시 경남 김해 봉하마을 생태문화공원에서 열린 노 전 대통령 14주기 추도식에는 여야 정치권 인사가 대거 출동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과 한덕수 국무총리, 김진표 국회의장, 이진복 대통령실 정무수석이 행사에 참석했고, 이해찬·한명숙·정세균 전 총리와 권양숙 여사, 노 전 대통령 아들 건호 씨도 함께했다. 국민의힘에서는 김기현 대표, 박성민 전략기획부총장, 구자근 대표 비서실장이, 민주당에서는 이재명 대표와 최고위원을 비롯한 의원 100여명이 자리했다.
여당은 노 전 대통령 추모를 통해 국민통합을 강조했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추도식장에 들어서며 “저도 바로 직전 대통령으로부터 엄청난 정치적 박해를 받았던 피해 당사자이지만, 대한민국 정치 선진화를 위해서는 더 이상 전직 대통령에 대한 흑역사가 반복돼선 안 된다”고 말했다. 다만, 김 대표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는 바로 옆자리임에도 입장 때 악수를 제외하고 특별한 대화는 나누지 않았다. 김 대표는 문 전 대통령이 입장할 때는 한 두 마디 나누며 고개를 두 번 숙였다.
추도식 연단에 오른 정치권 인사들도 입을 모아 통합을 말했다. 김진표 국회의장은 “지역주의와 승자독식, 진영정치와 팬덤 정치를 넘어 우리 정치를 능력 있는 민주주의로 바로 세우겠다”고 말했다. 노무현 정부의 마지막 총리였던 한덕수 국무총리도 “(노 전 대통령의) 소통과 통합의 정신을 이어가겠다”고 강조했다. 다만, 한 총리가 추도사를 읽어 내릴 때 일부 추모객은 “헛소리하지 말고 내려와” “무책임한 말이다” 같은 야유를 쏟아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노 전 대통령 계승을 언급하면서도, 여권에 날을 세웠다. 그는 추도식 후 기자들과 만나 “노 전 대통령이 우리 곁을 떠난 지도 벌써 14년이 됐다”며 “민주주의가 다시 퇴행하고, 노 전 대통령이 꿈꿨던 역사의 진보도 잠시 멈추었거나 과거로 일시 후퇴한 것 같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 안타까운 현실 속에 노무현 대통령님에 대한 그리움이 훨씬 큰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추도식 전 있었던 이 대표와 권양숙 여사의 오찬에서도 정부·여당의 대일 외교를 겨냥한듯한 선물이 전해졌다. 권 여사는 이 대표에게 독도가 포함된 한반도와 무궁화가 그려진 접시, 책 『일본 군부의 독도 침탈사』를 선물했다. 한민수 민주당 대변인은 이를 전하며 “독도가 대한민국의 고유 영토란 점을 강조하기 위함으로 받아들였다”고 설명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 이해찬·한명숙·정세균 전 총리, 김진표 국회의장이 식사에 함께했지만 여권 관계자는 아무도 참석하지 않았다.
한편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노 전 대통령 추도식에 방문하기에 앞서 김영삼 전 대통령 생가에 들렀다. 그는 생가를 둘러보며 “금융실명제랑 하나회 척결, 이건 혁명적인 것”이라고 말했다. 방명록에는 “특권과 반칙을 청산하는 과감한 개혁으로 나라를 정상화한 김 전 대통령의 뜻을 승계하겠다”고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