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교실서 양말 신어라" 훈계했다고...아동학대 신고에 떠는 교사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스승의날을 하루 앞둔 14일 오전 서울 서초구 양재꽃시장을 찾은 시민들이 스승께 전달할 꽃을 구매하고 있다. /뉴스1

스승의날을 하루 앞둔 14일 오전 서울 서초구 양재꽃시장을 찾은 시민들이 스승께 전달할 꽃을 구매하고 있다. /뉴스1

A교사는 영어 시간에 숙제를 안 한 학생을 혼냈다가 되레 항의를 받았다. 학생은 “내가 못 하겠다는데 왜 그러느냐. 학생 그렇게 가르치라고 배웠냐”며 반발했다. 교사는 흥분한 학생을 교실 밖으로 데려가 진정시키고 보호자에게 전화를 걸어 하교를 제안했다. 하지만 보호자는 교사가 수업을 시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교육청에 민원을 넣었다.

광주의 한 초등학교 B교사는 여학생에게 성희롱성 욕설을 한 남학생들에게 “성폭력은 무서운 범죄”라고 타일렀다. 그러자 남학생 보호자들이 아들을 잠재적인 성범죄자로 취급했다며 담임교사 교체와 공개 사과문을 요구했다. 학생인권조례 위반이라며 교육청에 신고하기도 했다.

23일 국회에서 열린 ‘교육활동 보호 강화를 위한 국회 공개토론회’에서 공개된 교권 침해 사례들이다. 교육부에 따르면 각 학교에서 심의한 교권 침해 건수는 2019년 2509건에서 2022년 3035건으로 늘었다. 교육계에서는 교사를 보호할 수 있는 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보복성 아동학대 신고 잇따라…훈계만 해도 민원제기

지난해 10월 서울 서대문구 전교조에서 열린 아동학대 사안 처리과정 실태조사 결과 발표 기자회견에서 김민석 전교조 교권상담국장(왼쪽부터), 전희영 전교조 위원장, 손균자 전교조 서울지부 사무처장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10월 서울 서대문구 전교조에서 열린 아동학대 사안 처리과정 실태조사 결과 발표 기자회견에서 김민석 전교조 교권상담국장(왼쪽부터), 전희영 전교조 위원장, 손균자 전교조 서울지부 사무처장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최근 가장 문제가 된 건 보복성 아동학대(아동복지법 위반) 신고다. 아동의 복지 보장을 위해 제정된 아동복지법은 교사들에게 일명 ‘저승사자법’으로 통한다. 신고를 당하는 것만으로도 담임 교체, 직위해제 등의 처분이 내려지기 때문이다. 한국교총이 지난 1월 전국 유·초·중등 교원 5520명 대상으로 설문을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77%가 “교육활동, 생활지도 중 아동학대 가해자로 신고 당할까 불안하다”고 답했다.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손덕제 교총 부회장은 “‘숙제 베껴내지 말라’ ‘교실에선 양말을 신어야 한다’ 등 말로 훈계만 해도 민원이 발생하고, 싸움을 말리려 제지하면 아동학대로 신고를 당한다”고 말했다. 원주현 교사노동조합연맹 실장은 “아동학대로 신고된 교원 중 경찰 종결·불기소 처분을 받는 경우가 53.9%로 전체 아동학대 무혐의 비율(14.9%)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다. 그만큼 무분별한 신고가 이뤄지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시험이나 학교폭력 사건 처리 과정에서도 괴롭힘을 당하는 교사가 많다. 이날 교사노조가 공개한 사례 중에는 낮은 점수를 받은 학생 보호자가 ‘특목고에 못 가게 됐다’며 학기 내내 민원을 넣은 사례, 알파벳을 모르는 4학년 학생에게 별도 지도를 해주려 했다가 학부모가 반발하고 신고하겠다고 협박한 사례 등이 있었다.

교권 침해를 하는 주체는 학생이 가장 많다. 교육부에 따르면 학생이 가해자로 지목된 사건이 전체 교권 침해 사건의 93.3%(2833건)에 달한다. 하지만 교사들은 학생보다 학부모의 민원이 더 고통스럽다고 호소한다. 교총은 술에 취한 학부모가 새벽 1시에 수시로 전화하며 ‘죽이겠다’며 협박한 사례, 정신 질환이 의심되는 학부모에게 모욕적 단어가 섞인 문자를 받았던 사례 등을 공개했다.

“교직 탈출은 지능 순”…제도 보완 필요해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교권 침해는 교원 사기 저하, 이탈로 이어지고 있다. 교사노조가 지난달 조합원 1만1377명을 설문조사 했더니 2950명(25.9%)이 “거의 매일 이직 및 사직을 고려한다”고 답했다. 종종(33.5%), 가끔(27.6%)이라고 답한 응답자까지 합하면 10명 중 9명 꼴로 사직을 고민한다는 결과다.

실제로 중간 연차(근속 15년~25년) 퇴직교사 수는 2017년 888명에서 2019년 979명, 2021년 1088명으로 늘고 있다. 원주현 교사노조 실장은 “요새 교사들 사이에서는 ‘교직 탈출은 지능 순’이라는 말이 자조적으로 돈다. 젊은 교사들이 스터디 그룹을 만들어 이직을 준비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교사의 아동학대 면책 법안을 규탄하는 학부모·시민단체가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초·중등교육법 일부개정 법률안' 발의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단체는 국민의힘이 발의한 법안이 자칫 아동학대를 조장할 수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뉴스1

교사의 아동학대 면책 법안을 규탄하는 학부모·시민단체가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초·중등교육법 일부개정 법률안' 발의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단체는 국민의힘이 발의한 법안이 자칫 아동학대를 조장할 수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뉴스1

전문가들은 관련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한다. 김성기 협성대 교수는 “정당한 생활지도 과정에서 발생한 아동의 피해에 대해서는 면책조항을 적용할 수 있도록 해 교원들의 두려움을 없애야 한다”고 말했다. 황준성 한국교육개발원 본부장은 “교원의 생활지도 권한을 담은 초중등교육법에 수업배제(교실 밖 이동 등), 반성문 작성 등 생활지도의 구체적 유형과 조치 방식을 담아야 한다”고 말했다.

민원과 고소로부터 교사를 보호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성기 교수는 “교육청이 교원을 상대로 한 민원이나 형사 고소·고발 건이 아동학대에 해당하는지 먼저 심사해 행정력 낭비를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황준성 본부장은 “교원 개인에게 고의나 중과실이 없다면 소송의 당사자가 되지 않도록 지자체나 교육청이 나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