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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생색낸 '김남국 방지법'…"통과해봐야 쓸모 없으니 합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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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국 더불어민주당 의원. 뉴시스

김남국 더불어민주당 의원. 뉴시스

여야가 일명 ‘김남국 방지법’ 처리에 속도를 내고 있다. 김남국 의원이 코인(가상자산) 사태를 일으키자 재발 방지를 위한 후속 조치에 착수한 것이지만 실제 입법화 되더라도 실효성에 대해선 회의론 제기되고 있다.

지난 22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위원회에서 공직자윤리법 개정안은 국회의원을 포함한 고위공직자의 재산신고 공개 대상에 가상자산을 포함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같은 날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한 국회법 개정안엔 국회 윤리심사자문위원회에 등록해야 하는 국회의원 당선인의 재산에 가상자산을 명시하도록 했다.

다른 쟁점 법안을 놓고는 끝장 대치를 이어오던 여야는 김남국 방지법엔 모처럼 손발이 맞아 일사천리로 법안 심사를 진행 중이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와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두 법안의 25일 본회의 처리도 합의했다. 예정대로 진행될 경우 공직자 재산에 가상자산을 포함하는 법안은 2018년 처음 국회에 제출된 지 5년 만에 본회의 문턱을 넘게 된다.

2018년 정동영 국민의당 의원 등이 발의한 공직자윤리법 일부개정법률안에 대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이 쓴 검토보고서 중 일부. 사진 의안정보시스템 캡처

2018년 정동영 국민의당 의원 등이 발의한 공직자윤리법 일부개정법률안에 대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이 쓴 검토보고서 중 일부. 사진 의안정보시스템 캡처

문제는 5년 전 법안 통과가 안 될 때 지적됐던 사유가 여전히 해소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국회에선 국민의당 정동영 의원, 더불어민주당 노웅래·기동민 의원 등이 잇달아 공직자 등록 대상 재산 범위에 가상자산을 포함하자는 법안을 발의해 논의가 활발했다. 하지만 당시 가상자산의 개념은 물론 관련 정책과 규제 법안 등도 없던 터라 법안은 모두 불발됐다. 당시 정동영 의원 법안 검토보고서엔 “암호화폐(가상자산) 관련 법 체계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며 “(법 체계 확립 전) 공직자윤리법에서 암호화폐를 먼저 규정하게 되면 그 정의와 관련 규정 미비로 가액 산정 방식 등을 정하기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적혀있다.

이후 2020년 3월 국회에서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법’(특금법)이 개정되면서 가상자산 관련 규제가 일부 제도화됐다. 하지만 획기적인 전환점에 이르진 못했다. 특금법 개정의 애초 목적이 도박·마약 등에 연루된 불법자금의 범위에 기존에 없던 가상자산을 포함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가상자산 투자자를 보호하거나 불공정 행위를 막기 위한 내용은 없었던 까닭에 여전히 주식 등 일반적인 자산과 비교하면 제도화가 한참 뒤처졌다.

결국 김남국 방지법이 실제 시행되더라도 국회의원의 코인 자산이 법의 사각지대에 놓일 가능성이 상당하다. 국내 거래소를 이용할 경우 특금법에 따라 이상 거래를 감지할 수 있지만, 해외 거래소에서 거래하거나 개인끼리 거래할 경우 사실상 추적 및 규제가 불가능하다. 지난 22일 행안위 소위에서 공직자윤리법을 통과시킨 민주당 소속 김교흥 소위원장 역시 “거래소가 해외에 있거나 개인과 개인 간의 거래는 밝히기가 어렵다. 한계가 있을 거 같다”고 말했다.

전재수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법안심사제1소위원회 위원장이 2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치개혁특별위원회 법안심사제1소위원회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이날 소위에서는 국회의원 당선인의 재산에 가상자산도 명시하도록 하는 내용의 국회법 개정안을 여야 만장일치로 의결했다. 뉴스1

전재수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법안심사제1소위원회 위원장이 2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치개혁특별위원회 법안심사제1소위원회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이날 소위에서는 국회의원 당선인의 재산에 가상자산도 명시하도록 하는 내용의 국회법 개정안을 여야 만장일치로 의결했다. 뉴스1

결과적으로 가상자산 관련 법 체계가 제대로 정비되지 않는 이상 요란한 빈 수레 수준의 규제가 될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유상범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23일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가상자산 등록은) 성실 신고를 전제로 하는 이야기냐’는 진행자 물음에 “예, 전수조사도 마찬가지”라며 “원칙적으로 국회의원들의 양심을 믿어줘야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남국 사태 직후 민주당이 주장하던 ‘국회의원 전수 조사’ 카드 수준과 다를 바 없을 수 있다는 얘기다.

김승주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5년 전과 달라진 게 없는데 국회가 급한 불을 끄겠다고 혼란을 야기할 법안을 그냥 추진했다”며 “통과돼봐야 국회의원 아무도 안 지키는 유명무실한 법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권 관계자는 “통과돼봐야 실효성 없다는 걸 아니깐 여야가 모처럼 합심한 것 아니겠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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