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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뉴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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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이경희 기자 중앙일보 P디렉터
이경희 이노베이션랩장

이경희 이노베이션랩장

미국에서 낙태는 첨예한 이슈다. 지난해 미 연방대법원이 낙태금지법은 위헌이 아니라는 판단을 내렸다. 이후 공화당이 강한 주에서 낙태금지 강화법안을 밀어붙이고 있다. 병원 밖의 낙태 시술로 숨지는 산모는 전체 산모 사망의 약 4.7~13.2%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어떤 언론사가 ‘낙태가 산모 죽인다- 산모 사망 최대 13.2%가 낙태 탓’이라고 부풀리는 기사를 썼다고 하자. 사람들은 그 뉴스를 참이라고 생각할까, 거짓이라고 생각할까.

미국 보스턴대 등의 연구진들은 이런 식으로 과학적 사실과 왜곡된 기사를 함께 제시한 뒤 언론사 출처를 임의로 달아 피험자들이 이를 어떻게 판단하는지 조사했다. 똑같은 뉴스를 두고도 본인과 정치적 관점이 다른 매체라고 표기했을 때 거짓으로 판단할 가능성이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진짜 가짜를 판단하는 데에도 개인의 편견이나 정치적 성향이 개입한다는 의미다.

가짜뉴스(fake news)가 전 세계적 문제가 된 건 2016년 미국 대선 때부터다. 진짜 언론사 뉴스처럼 꾸민 후보 비방 정보물이 SNS 등에서 대량 유통되면서 대선판을 뒤흔들었다. 대선전에서 승리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에 비판적인 언론을 가짜뉴스라고 공격했다. 가짜뉴스의 프레임을 기성 언론에 씌운 것이다.

국제연합(UN) 등 4개 국제기구는 2017년 “가짜뉴스라는 모호한 개념에 근거한 규제는 표현의 자유 제한에 대한 국제적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선언했다. 2018년 유럽위원회도 ‘허위정보에 대한 다차원적 접근’이라는 보고서에서 ‘가짜뉴스’ 대신 ‘허위정보(disinformation)’라는 용어를 쓰도록 권고했다. 이미지·동영상 등 허위정보의 유형은 다양하다. 유럽위원회는 가짜뉴스라는 용어는 거짓 정보가 뉴스에 국한된 것으로 오인하게 할 소지가 있고, 여러 정치인이 자신에 불리한 보도를 가짜뉴스라 공격하며 언론 자유를 위축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에 최근 가짜뉴스 피해신고 상담센터가 설치됐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4·19 기념식에서 “가짜뉴스가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고 언급한 지 하루 만에 문화체육관광부가 내놓은 ‘가짜뉴스 퇴치 총력전’의 일환이다. 가짜뉴스 정의부터 다시 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