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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여든의 열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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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윤성민 기자 중앙일보 기자
윤성민 정치에디터

윤성민 정치에디터

일본 영화감독 구로사와 아키라는 1990년 미국 아카데미로부터 평생공로상을 수상했을 때 이런 소감을 남겼다. “내가 영화의 본질을 아직 이해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지금부터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영화를 만들면서 본질을 이해해보겠다.”

‘지금부터’라니. 당시 그의 나이 여든이었다. 노감독은 자신이 가장 빛났던 때를 곱씹는 것으로 여생을 채우는 대신 여전히 앞으로 나아가려고 하고 있었다. 그해 공개된 ‘꿈’은 새로운 영화적 가능성을 탐색해보려는 패기와 저무는 것의 처연한 아름다움이 함께 담긴 영화였다.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은 최근 ‘데드라인’과 인터뷰에서 당시 기억을 언급했다. 구로사와가 “나는 이제야 영화의 가능성을 보기 시작했는데 너무 늦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스코세이지는 “지금에서야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다”고 했다. 그의 나이 여든하나. 그는 ‘여전히 다음 작품을 찍을 열정이 남아 있나’라는 질문에 “그렇다. 8주 동안 쉬면서 동시에 영화를 만들 수 있으면 좋겠다”라며 “(영화로)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시간이 없다”고 말했다. 그가 이제야 이해한 여든 구로사와의 ‘늦었다’는 마음은 체념이 아니라 갈급이었다. 스코세이지의 새 영화 ‘킬러스 오브 더 플라워 문’은 지난 20일(현지시간) 프랑스 칸영화제에서 9분간 기립박수를 받았다고 한다.

구로사와에게 평생공로상을 건넨 시상자 스티븐 스필버그·조지 루카스 감독도 곧 여든이다. 그래도 여전히 현역이다. 최근 둘은 영화 ‘인디아나 존스: 운명의 다이얼’을 제작했다. 마지막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다. 주인공은 해리슨 포드. 시리즈 첫 주연을 맡았을 때가 서른아홉이었는데 여든하나가 됐다. “총도 아홉 번이나 맞았어. 그러면서도 난 평생 이걸 찾아 헤맸어.” 예고편 대사다. 산수(傘壽)를 넘어서도 자신의 열정을 불러일으킬 영화를 찾았던 포드 그 자신의 마음이기도 했다.

지난 19일 칸영화제 기자회견에서 포드는 “나이가 드는 건 정말 행복한 일이다. 여전히 일하고 있지 않은가”라고 했다. 몸은 시간 앞에 무너지겠지만 마음도 그러리란 법 있나. 열정은 나이가 적다는 이유로 독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여든이 넘어도 ‘영광의 시대’는 바로 지금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