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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양성희의 시시각각

저출생 시대의 노키즈존(No Kids Zone)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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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양성희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양성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양성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얼마 전 온라인을 뜨겁게 달군 ‘노시니어존(No Senior Zone)’ 카페. 출입문의 ‘60세 이상 어르신 출입제한’ 고지 옆에 ‘안내견은 환영합니다’ 스티커가 대비를 이뤘다. 스스로  카페 단골이라고 밝힌 이는, 홀로 카페를 하는 여사장을 ‘마담’이라 부르며 희롱하는 나이 든 고객들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대리 해명했다. 사장이 고객을 안 받겠다니 오죽하면 그랬을까 싶지만, 어디 ‘무매너’가 나이 문제인가. 아동차별 논란이 있는 ‘노키즈존(No Kids Zone)’이 물꼬를 트고 ‘노시니어존’이 나왔으니 다음은 뭘까. 시중에는 ‘노중딩(혹은 교복)존’ ‘노프로페서(교수)존’ 등이 등장했다. 이에 앞서 ‘49세 이상(은) 정중히 거절’한다는 식당, ‘40대 이상 커플 사절’을 내건 캠핑장도 있었다.

영업 자유 있지만 인권차별 요소 #아이와 함께 하기 눈치 보여서야 #노인 출입금지 카페까지 등장해

아동의 출입을 제한하는 노키즈존이 전국에 500곳이 넘는다. 서울의 식당에 붙은 노키즈존 문구. [중앙포토]

아동의 출입을 제한하는 노키즈존이 전국에 500곳이 넘는다. 서울의 식당에 붙은 노키즈존 문구. [중앙포토]

조만간 60세 이상 어르신에 합류할 입장에서 쓰자면 굳이 노시니어존이 아니더라도 일상에서 이미 나이를 충분히 의식하며 산다. 젊은이들이 넘쳐나는 핫한 카페에 들어갈 땐 뭐라는 사람도 없는데 위축된다. 그뿐일까. 디지털 문해력이 떨어지는 노인층은 사용도 접근도 힘든 무인가게, 무인주문대 등 시니어를 배제하는 공간은 점점 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최근, 10년 전쯤 등장해 500곳 넘게 늘어난 우리나라 노키즈존에 주목했다. 해외에서도 비행기 좌석 배정이나 도서관 이용에서 아동에게 제한을 두는 문제가 종종 논란이 되지만, 한국처럼 심각한 저출생 국가에서 카페ㆍ식당 같은 일상적 노키즈존은 출산과 육아를 점점 더 선택하기 어려운 옵션으로 만든다고 지적했다.

‘노ㅇㅇ존’의 핵심은 특정 고객의 입장을 제한하는 게 영업의 자유인가, 아니면 어디서든 배제되지 않을 인권과 차별의 문제인가이다. 노키즈존에 앞서 키즈 카페나 미성년자 출입금지 유흥업소 등 고객 제한 공간이 있지만, 이는 고객 맞춤형 전용공간이나 특정 연령대 보호 목적의 출입제한으로 성격이 다르다. 2021년 갤럽 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71%가 노키즈존에 찬성했다. 아직은 노키즈존에 대해 업주의 자유고, ‘안 가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노키즈존 반대'(17%)보다 훨씬 많았다. 최근 제주도에서는 도의회 차원에서 도내 ‘노키즈존 지정 금지 조례’ 제정을 추진하다 보류했다. 더 많은 사회적 공감대가 필요하다고 봤다. 제주도는 관광객만큼 고객 민원이 많고 노키즈존이 국내에서 제일 많은 지역이다.

사실 누구나 공감하는 바지만 노키즈존에서 진짜 문제인 것은 아동이 아니라, 아동을 적절히 통제하거나 매너를 훈육하지 않는 무개념 부모다. 다른 고객을 배려해달라는 업장 측의 요청에 툭하면 인터넷으로 달려가 난리 치는 ‘젊은 진상’ 부모를 막을 수 없으니 아동을 막는다. 앞서 노시니어존 카페처럼 특정한 문제 고객을 막지 않고 그 연령대 다수 고객을 원천 봉쇄한다. 불량 고객을 거른다지만 항상 배제되는 것은 아동ㆍ노인 등 사회적 약자들이다. 과일반화에, 나이 차별이 발생한다. 주취자의 고성방가가 꼴사납지만 지금껏 ‘노어른존’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자영업자의 고충은 고충대로 이해하지만, 노키즈존이 영업의 자유를 넘어 인권과 차별 이슈가 되는 이유다. 2017년 국가인권위원회는 노키즈존을 차별행위라고 판단했다.

 최근 한국을 찾은 인구학자 데이비드 콜먼 옥스퍼드대 명예교수는 “결혼ㆍ과한 노동ㆍ교육열 등 ‘한국다운 것’이 변해야 저출생 문제가 풀린다”는 진단과 함께 “경제적 지원만으로는 부족하고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키즈존도 한국적 ‘육아 문화’의 하나일 것이다. 장거리 버스 뒷자리 아이가 계속 칭얼대면 짜증 나고 ‘나쁜 자리 운’을 푸념할 수는 있지만, ‘맘충’(젊은 엄마 비하 표현)을 탓하며 ‘노키즈 버스’를 요청할 수는 없는 일이다. 엄마가 아이와 버스 타는 것, 식당 가는 것조차 눈치 보인다면 저출생 개선은 요원한 얘기일 것이다. 나도 과거에는 아이였고, 떼쓰는 아이 때문에 곤혹스러운 엄마였다. 그리고 나의 미래는 어르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