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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희롱 아이 혼내면 교사 고소…“학원 강사만도 못해” 한숨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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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0호 09면

무너진 교권, 지금 우리 학교는

“이제는 아이들이 무서울 지경입니다.”

용인의 한 고등학교에서 12년째 교직 생활을 하는 박정민(여·가명·41) 교사는 몇 년 전부터 아이들과 대면하고 따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두렵다고 말했다. 박 교사는 “선생님이라는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수업이나 꼭 필요한 상담 말고는 아이들과 접촉을 최대한 피하려는 편”이라며 “선생님에 대한 존경이나 신뢰는 무너진지 오래”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박 교사가 처음부터 아이들과의 접촉을 피해왔던 것은 아니다. 6년 전까지만해도 박 교사는 열정 넘치는 젊은 선생님이었다. 일에 치이고 동료나 선배 교사들과의 갈등에 힘들어도 아이들에 대한 애정만큼은 남달랐다. 박 교사는 “내가 누군가의 인생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고, 가장 중요한 시기에 학생들의 이정표를 심어줄 수 있다는 점에서 교사는 참 매력적인 직업”이라며 “아이들이 조금 엇나가고 삐뚫어져도 얼마든지 다시 돌아올 것이라 믿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박 교사의 이런 마음은 아이들의 도를 넘는 성희롱과 무시 속에서 빛을 잃었다. 2017년 시행한 익명의 교원평가에서 아이들은 박 교사의 신체 부위에 대한 희롱과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는 내용을 기재했다. 박 교사는 “한두명의 일탈이 아니라 5~6명 정도 됐다는게 충격적이었다”며 “한동안은 학교 측에 말할 생각도 못했다”고 전했다. 해당 발언들이 공론화 되는 것이 두려웠던 박 교사는 이를 스스로 해결하려 아이들과 일일이 따로 상담했다. 그러나 나아지는 것은 없었다. 수업시간 내내 아이들의 조롱은 심해졌고, 박 교사의 신체부위를 그린 익명의 쪽지를 교탁 위에 놓아두기도 했다. 박 교사는 “심각하게 화를 내거나 단호하게 제지해도 킥킥대는 아이들이 있다”며 “아이들을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이 없어 무력감을 느꼈다”고 전했다.

교권침해 건수 2269건, 1년 새 2배 늘어

이는 비단 박 교사만의 사례는 아니다. 교사는 한때 인기직업으로 꼽혔다. 외환위기,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직업 안정성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면서 불과 10여년 전까지만해도 교대의 입학 커트라인은 수직상승했다. 저렴한 학비, 안정적인 연금도 강점이었다. 하지만 2010년들어 부족한 경제적 여건에 교권추락으로 인한 근무환경 악화로 교원들의 사기는 지속적으로 떨어지고 있다. 교대·사범대도 함께 추락하기 시작했다.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가장 큰 문제는 학생인권을 강조하면서 문제 학생을 제지할 방법이 사실상 사라졌다는 점이다. 간단한 훈육이나 학생에 대한 퇴실 조치도 인권침해나 아동 학대로 몰리는 경우가 생기니 교사들은 아예 훈육을 포기해 버린다. 김지현(여·가명·29) 교사 또한 얼마전 자신의 물건을 숨기는 학생들의 짖궂은 장난에 기분이 상했지만 이렇다 할 말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는 “어려서부터 교사를 꿈꿔 왔고, 교대에 진학했을 때는 세상을 다 가진 듯 뿌듯했지만 현실은 학원 강사만도 못하다”며 “학생들의 존중과 배려를 찾아보기는 어렵고 서류 업무만 하는 회사원이 된 느낌”이라고 전했다. 지난 14일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가 스승의날을 기념해 최근 전국 유·초·중·고·대학 교원 6751명을 조사한 결과 학교 현장에서 교권은 잘 보호되고 있느냐는 질문에 ‘그렇지 않다’는 답변이 69.7%로 나타났다. 2021년 50.6%, 2022년 55.8%와 비교할 때 갈수록 부정응답이 많아지는 추세다. 반면 ‘그렇다’는 응답은 2021년 18.9%, 2022년 16.2%로 갈수록 낮아지더니 급기야 올해 조사에서는 한자리수(9.2%)까지 추락했다.

최근 전북 군산에선 중학생이 교사의 얼굴을 수차례 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했고 지난해 충남에선 한 중학생이 수업 중 교단에 드러누워 여교사를 촬영하는 일까지 있었다. 교육부에 따르면 학생에 의한 교권침해 심의 건수는 2020년 1197건에서 2021년 2269건으로 2배 가까이 증가했다. 지난해에는 3000건이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20년차 김정후(가명·50) 교사는 “과거에 비해 아이들이 선생님의 말을 잘 듣지 않는 경우가 파다하다”며 “‘교사 주제에’라는 생각을 가진 학생들이 많다는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김 교사는 “사실상 아이들을 통제할 수단이 부모에게 전화해 애원하는 일 밖에 없다”며 “주변에서 교대나 사범대를 지망한다고 하면 솔직히 말리고 싶다”고 했다.

수원의 한 고등학교에 다니는 2학년생 이진호(가명)군은 “선생님들이 지나가면서 한마디만 해도 불만을 갖는 학우들이 많다”며 “소리를 지르거나 물건을 던지는 등 ‘저건 좀 아닌데’ 하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고 전했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교사에게 아이들을 통제할 수 있는 수단도 방법도 없다는 것이다. 혹여나 아이들에게 훈계라는 명목으로 소리를 지르거나 수행 평가를 나쁘게 준다고 협박하면 학무보를 통해 고소장이 날아오는 경우도 적지 않다.

“부모에게 전화해 애원하는 일 밖에 없어”

‘정당한 생활지도’와 ‘아동학대’의 경계가 모호한 시점에서 ‘아동학대 신고’는 교사를 압박하는 수단 중 가장 많이 활용되는 무기다. 학교폭력으로 신고를 당한 학생의 행동을 인정하는 의견서를 작성한 교원에게 ‘아동학대’로 신고한 보복성 신고 사례도 있다. 송기창 숙명여대 명예교수는 “교사가 학생을 지도 하다가 학부모로부터 소송을 당하면 모든 것은 개인의 몫”이라며 “변호사 선임부터 수업을 하며 법원에 출석하는 것도 혼자 감당해야하니 누가 아이들에게 싫은 소리를 하려 하겠나”고 반문했다.

교사들의 직업 만족도는 급감할 수 밖에 없다. 교총의 통계에 따르면 교직 생활에 만족한다는 답변은 23.6%에 그쳤다. 관련 조사가 시작된 2006년(67.8%) 이후 역대 최저 수준이다. 교직 만족도는 2016년에는 70.2%에 달했지만 2019년 52.4%로 하락했고, 2020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 후 교사들이 방역업무를 떠맡게 되면서 32.1%로 급감했다. 이후 소폭 올랐으나 이번에 처음으로 20%대까지 떨어졌다. 교직생활 중 가장 큰 어려움에 대해서는 ‘문제행동, 부적응 학생 등 생활지도’(30.4%)를 가장 많이 들었다. 이어 ‘학부모 민원 및 관계 유지’(25.2%), ‘교육과 무관하고 과중한 행정업무, 잡무’(18.2%) 순이었다.

전문가들은 무너진 교권을 바로 새우고 아이들의 올바른 지도를 위해서는 교사의 학생 생활지도 권한을 법제화 해야한다고 조언한다. 이범 교육평론가는 “우리나라는 전체적인 교육의 통일성이 상당히 크기 때문에 학칙을 넘어서 법률 수준의 규율이 필요하다고 본다”며 “교사가 정당한 목적으로 교육적 활동 및 지도를 할 때는 책임을 면할 수 있다는 등의 규정이 명확하게 생겨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대다수의 교원들은 무너진 교권, 무너진 교실을 회복하는 방안으로 강력한 ‘교권 보호 입법’과 ‘고의중과실 없는 생활지도 면책권 부여’를 요구하고 있다.

교총의 통계를 보면 정당한 교육활동·생활지도는 민·형사상 면책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데 96.2%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또한 무분별한 아동학대 신고로부터 교원을 보호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방안에 대해 ‘고의 중과실 없는 교육활동, 생활지도에 법적 면책권 부여’(42.6%)를 가장 많이 꼽았다. 정제영 이화여대 교육학과 교수는 “선진국 사례를 보면 교사·학생 간의 관계에 있어서 서로 지켜야 할 부분들에 대해서는 계약의 형태로 서로 침해하지 않기로 약속한다”며 “학교에서 학생들이 지켜야 할 예의와 질서 규범들에 대해 새롭게 정립해야 할 시기”라고 말했다.

학생들이 선생님에게 존경심과 신뢰감을 갖도록 교사 집단의 변화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배상훈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는 “체벌이나 학생지도의 법제화가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보진 않는다”며 “종로학원, 대성학원 등 학원들의 표준화된 평가가 교사의 평가에 우선하고, 배치표가 교사의 말보다 신뢰받는 상황이 문제”라고 말했다. 배 교수는 “교사들은 학생들을 꼼꼼하고 객관적으로 살피고 평가하여 학부모와 학생의 신뢰를 얻어야한다”며 “그래야 정부나 대학에서도 이를 믿고 학생들을 선발할 수 있게 되고, 이런 과정을 거쳐야 교사에게도 실질적인 권한이 생길 것”이라고 덧붙였다.

학생들, 학교·교사 만족도 높아졌지만 교우 관계는 나빠져

지난 15일 경남 창원시 마산여고 학생들이 스승의 날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5일 경남 창원시 마산여고 학생들이 스승의 날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근 10년간 학생들의 학교와 교사에 대한 만족도는 높아졌지만 교우 관계에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교육청 산하 교육연구정보원 교육정책연구소가 지난 16일 내놓은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학교 환경에 대한 학생들의 전반적인 만족도는 높아졌다. 서울시교육청 교육연구정보원은 2010년부터 2021년까지 서울 초중고 학생 1만6287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2021년 서울 학생의 전반적인 학교 만족도는 2010년 대비 0.42점(3.543.96) 증가했고, 학습능력 만족도는 0.66점(3.303.96), 학교 시설 및 환경에 대한 만족도는 0.68점(3.203.88) 상승했다고 밝혔다. 학생들이 느끼는 교사에 대한 만족도는 3.62점에서 4.17점으로 올랐다. 중학생들이 느낀 교사 만족도가 가장 크게 증가(0.74점)했으며, 뒤이어 인문계고(0.69점), 직업계고(0.61점), 초등학교(0.16점) 순으로 모두 증가했다.

다만 교우관계 점수가 소폭 하락했다. 초중고 전체적으로 4.25점이었던 교우관계 점수는 2021년 4.18점으로 낮아졌다. 교우관계는 믿고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가 있는지, 휴식시간 등에 친구와 함께 지내는지 정도를 5점 만점으로 질문했다. 특히, 초등학생이 4.41점에서 4.16점으로 가장 크게 하락해 교우관계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학생 교우관계도 4.31점에서 4.22점으로 하락했다. 서울시교육청은 “코로나19를 거치며 교우관계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이 늘어난 것은 전국적인 현상”이라며 “초등학생의 교우관계 개선을 위한 대책이 시급하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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