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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사고 내고, 농지법 위반해 의사 못할 판…"이게 말이 되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윤석열 대통령이 간호법 제정안에 대한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한 16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앞에서 보건복지의료연대 소속 의료단체 대표들이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간호법 제정안에 대한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한 16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앞에서 보건복지의료연대 소속 의료단체 대표들이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의사 면허 취소 요건을 대폭 강화한 법률이 시행을 앞둔 가운데 건축법·도로교통법 등의 비(非) 의료 범죄를 저지른 의사가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대한의사협회는 “의료행위와 무관한 범죄 때문에 자칫 의사 면허가 줄줄이 취소되는 일이 벌어지게 됐다”며 반발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16일 간호법 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했지만, 의료법 개정안(의사 면허 취소법)은 그리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이 법률은 곧 공포돼 6개월 유예 기간을 거쳐 시행된다. 지금은 허위진단서 작성, 진료비 허위 청구 등의 형법 위반, 의료법·응급의료법·약사법·에이즈예방법 등의 의료 관련 법률을 위반한 의사의 면허를 취소한다. 앞으로 업무상과실을 제외한 모든 범죄로 확대되고 면허취소 기간도 2~5년 늘어난다.

의사의 범죄 실태는 어떨까. 더불어민주당 신현영 의원은 대검찰청의 자료를 토대로 의사·한의사·치과의사의 모든 범죄(형사 입건 기준, 2021년) 현황을 분석해 17일 공개했다. 범죄를 저지른 의사는 4336명으로 4년 전보다 30% 줄었다. 의사 범죄율은 2.26%로 19세 이상 일반 국민(2.94%)보다 낮다.

신현영 의원은 “의료인 면허 취소 기준을 강화하는 법이 시행을 앞두고 있지만 모든 범죄로 할지, 강력범죄나 성범죄로 제한할지 기준을 두고 의견이 팽팽하다”며 “국민이 기대하는 의료인 면허 관리의 적정선에 대한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신 의원은 “의료행위가 형벌로 처벌받는 경향이 있어 이런 게 필수의료 붕괴와 관련이 없는지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의협은 살인이나 명백한 섬범죄 등의 중범죄(2021년 176명)가 면허 취소 대상에 포함된 데 대해서는 동의한다. 성 매수나 알선, 성 착취물 위반 등의 아동청소년성보호법 위반도 마찬가지다. 신 의원 자료에 따르면 의사의 살인·성폭력 등의 강력 범죄는 증가하는 추세다.

지난 1일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회관 앞에서 이필수 대한의사협회장이 간호법 의료인면허 취소법 저지를 위한 단식 투쟁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일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회관 앞에서 이필수 대한의사협회장이 간호법 의료인면허 취소법 저지를 위한 단식 투쟁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경태 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 부대변인은 “명백한 중범죄자의 면허를 취소하는 건 인정한다”며 “하지만 의사 면허와 무관하거나 중범죄로 선을 긋기 힘든 것까지 취소하는 건 과하다”고 말했다. 김 부대변인은 “분당 신도시 다리 붕괴 때문에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으로 신상진 성남시장(의사)의 의사 면허가 취소된다면 말이 되느냐”고 말했다.

의협은 교통사고나 폭행 등이 취소 대상 범죄에 포함된 점에도 이의제기한다. 신현영 의원 분석 자료에 따르면 교통사고처리특례법·도로교통법(무면허운전·음주운전 등) 위반 의사가 488명이다. 건축법·농지법·주택법·산지관리법, 근로기준법·고용보험법·관세법·보조금관리법·부동산실명법·식품위생법·예비군법·저작권법·주민등록법·조세범처벌법·폐기물관리법 등을 위반한 의사도 적지 않다.

의협 비대위는 17일 성명에서 “의료인 면허취소법은 입법 과정에서 법률 전문가뿐만 아니라 다수의 국회의원이 위헌 소지가 있는 부실 법안임을 인지한 것으로 알고 있다. 대통령 재의요구권(거부권)의 대상이 될 만한 악법인데도 당정 협의 과정에서 누락된 것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밝혔다. 비대위는 “앞으로 의료인 면허취소법의 위헌 소지를 없애고, 국민 정서에도 부합하는 수준으로 재개정안이 마련되어 국회에 상정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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