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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안혜리의 시선

'코인' 김남국 감싼 김어준, 전매특허 음모론 대신 새 지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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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안혜리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김남국 의원은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하자마자 지난 15일 김어준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피해자 코스프레를 했다. 김어준은 ″진보는 보수가 쳐놓은 도덕 프레임에 갇혀 있다″며 탈도덕을 주장하고 있다. [유튜브 캡처]

김남국 의원은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하자마자 지난 15일 김어준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피해자 코스프레를 했다. 김어준은 ″진보는 보수가 쳐놓은 도덕 프레임에 갇혀 있다″며 탈도덕을 주장하고 있다. [유튜브 캡처]

코인 게이트로 당내에서조차 코너에 몰리자 더불어민주당의 대표적 친명계 조직인 7인회 소속 김남국 의원은 당초 당 진상조사위에 약속한 본인의 코인 거래 자료 제출도 거부한 채 지난 14일 전격적으로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했다. 당을 뛰쳐나간 그가 가장 먼저 찾은 곳은 민주당의 막후 실세이자 브레인이라는 '정치 무당'(※강준만 전북대 명예교수 표현) 김어준의 유튜브였다. 문재인 정부 시절 막대한 서울시민 세금이 들어가는 지역 공영방송을 사유화하다시피 하는 친정부 편파방송을 일삼다 정권 교체 6개월여만인 지난해 말 마지못해 tbs(교통방송)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하차한 후 옮겨간 동명의 그 유튜브 채널 말이다.

"진보=도덕은 보수의 프레임" #김남국 의혹을 '도덕성 굴레' 규정 #독점해온 정의 무너지자 궤변만

이달 초 김 의원의 석연찮은 코인 투자와 관련한 첫 언론 보도 후 하루에도 수없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 각종 의혹은 그가 입 열 때마다 말을 바꾸며 앞뒤 안 맞는 해명을 반복하면서 자초한 측면이 있다. 친 민주당 성향의 언론마저 비판 대열에 가세한 이유다. 이처럼 우군이 잘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김 의원은 그 어떤 헛소리도 의심 없이 품어주며 지지자들 상대로 맘껏 피해자 코스프레를 할 수 있는 곳은 김어준 유튜브뿐이라고 판단한 모양이다.

그렇게 탈당 다음날 출연한 유튜브 방송을 뒤늦게 들어보니 과연 예상했던 시나리오 그대로였다. 코인과 관련한 해명은 해명이라 부르기에도 민망할 만큼 본질에서 벗어난 조악한 일방적 주장으로 가득한데 자기들끼리만 더할 나위 없이 비장하다. 단순한 도덕성 논란을 넘어 범법 혐의까지 받는 김 의원이 구국의 열사라도 된 듯이 "내년 총선은 우리 역사와 대한민국의 국운을 결정하는 선거"라고 운을 떼니, 김어준은 "이게(코인 의혹) 끝이 아니고 시작일 거라는 생각은 안 했느냐"고 판을 키운다. 주거니 받거니 김 의원은 "이런 폭발적인 이슈를 총선 전에 터뜨릴 수도 있었을 텐데 굳이 1년 전에 터뜨렸다는 건 (윤석열 정부가) 다른 무엇인가를 가지고 있는 게 아닌가"라며 이성이 마비된 지지자들의 눈을 가리는 음모론을 끌어들인다. 하지만 코인 논란 초기 김 의원이 이미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기획설'로 물을 타보려 시도했지만 여론은 그의 바람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움직였던 것처럼 이번 음모론 역시 전혀 먹혀들지 않고 있다.

그래서일까. 김어준은 코인 국면을 계기로 그의 전매 특허인 음모론 대신 탈(脫) 도덕을 밀고 있다. 그리고 김어준의 주장이 마치 '지령'이라도 된 듯, 민주당 의원이며, 종교계가 일사불란하게 이 논리를 퍼 나르고 있다. 탈 도덕이 별 게 아니다. 단순하고 좀 과장되게 표현하자면 이젠 착한 척 위선 떨지 않고 대놓고 나쁜 짓 하겠다는 얘기다.

김어준은 지난 10일 방송에서 김 의원의 코인 논란에 대해 이야기하다 "진보가 도덕적이어야 한다는 건 잘못된 생각"이라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이 부분만 편집한 영상도 며칠 뒤 따로 올렸다. 재밌는 건 자신들이 그간 보수를 비판하는 강력한 도구로 써온 도덕적 우위를 거꾸로 '보수가 진보를 억누르는 프레임'으로 규정한다는 점이다. 그는 "오랜 세월 보수가 우리 사회를 지배하면서 진보를 도덕성이라는 굴레에 가두는 데 성공했다"며 "이걸(도덕성)로 때리면 위축돼서 스스로 반성하는데 잘못된 생각"이라고 했다. "김남국의 60억 (논란이) 가능한 토대도 진보가 도덕성을 자기 본류로 삼고 있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지난 14일 밤 김남국 사태가 촉발한 민주당 쇄신 의원총회에서 부동산 투기 의혹으로 출당된 후 슬그머니 복당한 양이원영 의원이 "진보라고 꼭 도덕성을 내세울 필요가 있느냐"고 말한 것이나, 17일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소속 지성용 신부가 페이스북에 "욕망 없는 자, 김남국에 돌을 던져라, 진보는 돈 벌면 안 되는가”라고 본말이 전도된 주장을 한 건 개개인의 돌출발언이라기보다 이런 맥락에서 봐야 한다. 돈을 번 게 문제가 아니라 의문투성이인 자금 출처나 투자 방식 등을 명쾌하게 해명하지 못하는 게 핵심인데도 김어준 논법 그대로 돈을 벌면 도덕적 비난을 받는다는 식으로 교묘하게 비튼 것이다.

민주당을 위시한 이른바 자칭 진보 세력은 문재인 정부 시절 앞에선 혼자 정의로운 척 도덕적인 척을 하며 뒤로는 끼리끼리 사사로운 이익을 챙기다 위선과 내로남불이라는 혹독한 비판에 직면했다. 지난 수십 년간 자신들이 독점해온 도덕과 정의는 그렇게 스스로 무너졌다. 정상적 사고를 하는 지성인이라면 부끄럽게 여겨 쇄신을 할 법도 한데 김어준을 위시한 좌파 무리는 역시나 정반대 해법을 내놓았다. 그렇게 일반의 상식과는 점점 멀어져간다.

안혜리 논설위원

안혜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