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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삶의 향기

황혼의 캔버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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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황주리 화가

황주리 화가

누군가 내 귀에 대고 “이제 마흔 살이야” 하고 고함을 치는 꿈을 꾸었다. 청천벽력 같은 소리라고 생각하며 눈을 뜨니 참 어이없는 꿈이다. 자신에 대한 굳건한 믿음 같은 걸 가지게 되는 나이 마흔 살, 이제 와 생각하니 어이없는 착각이다. 나는 꿈속에 들은 마흔 살을 아흔 살, 백 살로 고쳐 듣는다. 누군가 꿈속에서 “이제 백 살이야” 하면 깜짝 놀라 깨리라고.

미장원에서 머리를 자르는데, 옆자리에 앉아 파마하시는 할머니가 묻는다. “직장 다니슈?” “저는 화가인데요” 하니 “나도 그림 그린다오. 아주 재미나. 시간 가는 줄 몰라” 하신다. 아닌 게 아니라 요즘은 모든 사람이 그림을 그리거나 그리고 싶어 한다. 2000년대 초엔 누구나 글을 써서 책을 내는 게 유행이었다. 책을 읽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드니 글을 쓰는 유행은 그림을 그리는 유행에 밀렸다. 서구에서는 요즘 그림을 전공하는 학과가 없어지는 추세다. 그 비싼 등록금을 아무나 그릴 수 있는 그림 학과에 투자하는 일이 불합리하게 여겨지는 모양이다.

연예인·일반인도 ‘화가’인 시대
돈을 따라 달리는 경주마 같아
이중섭·고흐 등 가난한 화가들
그림은 그리고 그리는 마라톤

삶의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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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사람들은 나이 들수록 더 열심히 산다. 텔레비전에 나온 93세 할머니 화가는 하루에 서너 시간 그림을 그리신다. 평생 어렵게 살아서 물감을 무척 아껴 쓰신다 한다. 다 쓴 물감을 가위로 잘라서 하나도 남는 부분 없이 다 긁어 쓰신다. 그야말로 그림이란 그 비싼 물감을 종이에 캔버스에 처바르는 일이다. 팔리지도 않는 그림에 그 비싼 물감을 처바르다니, 그런 생각이 갑자기 들어 그림을 그만두었다는 화가 친구들도 여럿 있다.

이중섭·박수근·반 고흐 같은 가난하고 위대했던 화가들을 떠올린다. 그래도 배고팠던 그들에겐 팔리지 않아도 스스로 빛나는 화가의 자부심이라는 게 존재했다. “언젠가 내 그림이 물감값과 생활비보다 더 많은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걸 다른 사람도 알게 될 날이 올 것이다.” 반 고흐의 슬픈 영혼의 편지를 읽으며 숙연해진다.

돈이 최고 가치인 현대사회의 작가는 경마장의 말을 닮았다. 잘 팔리는 프로 작가도 팔 만큼 팔리면 다른 말로 교체되고, 그 유효기간은 점점 짧아진다. 작가가 아니라도 이렇게 많은 보통 사람들이 그림 그리기를 열망하는 현상은 지구 역사상 처음이 아닐까 싶다. 이름을 남기려는 자신만의 동굴벽화들이 늘어나고 있다. 원시인들도 아마 그렇게 바위 위에 흔적을 남겼을 것이다. 유명가수나 배우의 그림이 열풍을 일으키며 팔린다.

60년 화력의 경험으로 한마디 하자면, 그림 그리는 연예인들이 화가라는 두 번째 직업을, 천직을 찾았다며 자랑스러워하는 걸 보면 원래 전공이란 부담스러운 건가 보다. 5년 차 화가는 행복할 것이다. 유명세나 지인의 도움으로 그림은 한동안 팔려나갈 것이고 뿌듯한 보람도 느낄 것이다. 사실 모든 예술은 프로가 아닌 아마추어일 때 행복하다. 하지만 그들도 한 10년 이상 그리다 보면 노래나 연기보다 그림이 절대 녹록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녹록한 대타가 어디 있으랴? 유행은 돌고 돌며 젊은 인기 작가들이 새로 탄생하고 만들어지기도 한다. 한때 온 세상에서 울려 퍼지던 유명가수들 대신 텔레비전 앞에 앉으신 어르신 광팬들을 지닌 듣기 편한 안방 가수들이 계속 탄생하는 것처럼. 아무리 운 좋은 그 누구도 평생 좋은 운을 유지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어제는 프랑스 배우들이 공연하는 뮤지컬 ‘나폴레옹’을 보았다. “내 사전에 불가능이란 없다”, 그 말 한마디로도 영원히 남은 나폴레옹조차 그렇다. 시대가 아무리 변해도 역사는 되풀이되고, 지난 시대를 살다 간 사람들의 삶에서 우리는 무언가 배운다. 승리뿐 아니라 패배조차도 인생의 중요한 내용임을. 그 역시 소설가이며 화가였던 헤르만 헤세의 말이 떠오른다. “어느 시대나 과대평가되는 작가들이 있기 마련이다.” 반대로 과소평가된 작가들도 반드시 있듯이. 세상의 수많은 과소평가 된 작가들을 위하여 작은 희망 하나 남겨 놓는다. “네가 보내 준 돈은 꼭 갚겠다. 안되면 내 영혼을 주겠다.” 나는 오늘도 참을 수 없이 가벼운 세상의 바람에 휘청거리며, 동생 테오에게 보낸 반 고흐의 무거운 영혼의 편지들을 다시 읽는다. “화가란 누구인가”라는 물음에 답하기 위해.

어쩌면 앞으로의 세상은 누구나 영화를 만드는 일이 유행할지 모른다. 그리하여 모든 사람이 예술가가 되는 세상이 올지 모른다. 길어지는 삶의 캔버스에 쉬지 않고 그 내용을 가득 채우는 황혼의 마라톤, 나도 그 대열에 끼어 달린다. 진짜 끝날 때까지는 끝이 아니므로. 그런데도 그림은 그릴수록 어렵다. 아마 우리들의 인생도 그럴 것이다.

황주리 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