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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선택’을 선택하는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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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이안나 성형외과 전문의·서점 ‘채그로’ 대표

이안나 성형외과 전문의·서점 ‘채그로’ 대표

시대의 아이콘이나 트렌드를 만드는 베스트셀러는 언제부터일까. 250년 전 유럽,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그 시작일 것 같다. ‘책’이라면 현학적 곰팡내를 연상시키던 시절, 사이다 같은 해방감이었으리라. 책 출간 이후 너도나도 주인공의 노란 조끼와 파란 프록코트를 따라 했다. ‘베르테르 효과’라 불리는 모방 자살들로 금지서적이 되기까지 했다.

괴테의 실제 경험을 모티브로 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베르테르의 아름다운 소녀, 샤롯데에 대한 짝사랑 이야기다. 6명의 어린 동생들을 보살피는 사랑스러운 모습에 영혼이 사로잡힌다. 하지만 그녀에겐 어머니가 돌아가시며 아이들을 부탁한 진실하고 든든한 예비 약혼자가 있다. 베르테르는 이룰 수 없는 사랑을 위해 ‘순교’를 선택한다.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괴테의 여성편력은 엄청났다. 나이 차, 신분, 기혼 여부를 가리지 않는 연애 중독은 작가에게 창작의 원동력이었다. 하지만 샤롯데만은 짝사랑으로 끝냈다. 책을 읽으며 우리 시대 MZ 세대의 사랑이 떠올랐다. 베르테르는 사랑의 성공에 패키지로 따라올 엄마 없는 어린 여섯 동생이 자신 없었던 건 아니었을까. 요즘 MZ 세대가 연애와 결혼을 기피하는 이유가 내가 번 돈을 다른 사람과 함께 쓰는 것이 싫어서라고 한다. 이혼 사유에서 공용 생활비에 대한 다툼이 매우 중요해졌다.

베르테르가 스스로 집행한 사형의 방식은 유치하고 비겁했다. 갖고 싶다고 생떼 부리며 주변인에게 죄책감을 강요하는 아이다. 그저 ‘소유(욕망)로서의 사랑’을 갈구했을 뿐 아무것도 감당하고 싶지 않았다. 좀 더 성숙한 ‘존재로서의 사랑’이 아쉽다.

젊은 날, 열병 같은 사랑보다 생명이 하찮은 날들이 있다. 베르테르의 선택이 비겁했다면, 경제적 부담이 무서워 연애의 시작조차 ‘무선택’하는 우리 젊은 청춘들은 안타깝다. 용기 있게 연애에 뛰어든 젊은 청춘 남녀 영웅들에게 큰 응원을 보낸다.

이안나 성형외과 전문의·서점 ‘채그로’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