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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 청보리밭 드나든 이유?…장어에 복분자, 오감만족 이 곳

중앙일보

입력

고창 청보리밭

봄바람과 함께 가볍게 일렁이는 청보리밭 초록물결. 최기웅 기자

봄바람과 함께 가볍게 일렁이는 청보리밭 초록물결. 최기웅 기자

“모든 봄의 숲에는 각기 다른 녹색들이 존재한다.” 판타지 문학의 걸작 『반지의 제왕』을 쓴 작가 J.R.R. 톨킨의 말이다. 연둣빛 새순이 돋아나는 봄날의 풍경을 마주하면 이 말의 아름다움을 실감할 수 있다. 컬러 인문학자들이 모든 색을 통틀어 가장 온화한 색으로 꼽는 초록은 고요함과 평화로움의 색이자 안전함·성장·생명을 상징한다. 형형색색의 꽃들이 만개한 장면에서 배경으로 펼쳐진 초록이 없다면 그 화려함을 제대로 느낄 수 있을까.

여름엔 해바라기, 가을엔 메밀꽃잔치

해마다 4월에서 5월로 이어지는 요즘, 전북 고창군 공음면 학원농장에 가면 온통 초록빛으로 가득한 청보리밭의 싱그러운 풍경을 만끽할 수 있다.

고창은 예부터 보리농사가 잘 되었던 고장으로 유명하다. 고창군의 옛 지명인 모양현의 ‘모’는 보리를, ‘양’은 넓은 들을 뜻한다. 즉 모양현, 고창은 보릿고을이다. 10월에 파종한 보리는 이듬해 4월 중순에 이삭이 나오고 보리알이 맺히기 시작한다. 5월 중순까지가 보리알이 최대로 커지는 기간으로 이때를 보리의 청춘기라는 뜻으로 ‘청보리’라 부른다. 이 시기를 지나면 보리는 누렇게 익기 시작한다.

2004년 제1회 청보리밭축제를 시작한 학원농장은 전 국무총리 진의종씨와 그의 모친 이학 여사가 1960년대 초반 고창군 서남부 미개발 야산 10만평을 개발하면서 시작됐다. 농장이름인 ‘학원’은 이 지역의 옛 지명인 ‘한새골’에서 유래했다. ‘한새’는 이 지역에 많이 서식하는 백로·왜가리 등을 이르는 말로 이학 여사의 이름자 ‘학’과 들을 뜻하는 ‘원’을 합쳐서 ‘학의 들’이라는 뜻의 학원농장이 됐다. 1992년 아들 진영호씨가 귀농해서 관광농원을 인가받았고 이후 매년 봄에는 청보리밭축제, 여름에는 해바라기꽃잔치, 가을에는 메밀꽃잔치를 열고 있다.

올해도 7일까지 제20회 고창 청보리밭축제가 열리고 있는데 가장 인기 있는 스폿은 드라마 ‘도깨비’의 촬영 장소였던 나무 움막이다. 공간 이동이 자유로운 도깨비(공유)가 서울에 있는 집 현관문을 열 때마다 수시로 드나들던 바로 그곳이다. 잘 생긴 배우 공유를 떠올리며 한껏 미소 짓는 아내와 이 모습을 멋진 사진으로 담기 위해 노력하는 남편, 오랜만에 친구들과 소풍 나온 중년 여성들의 천진난만한 모습이 행복해 보인다.

학원농장 부지 약 15만평에 펼쳐진 청보리밭 사이를 천천히 산책하는 데는 약 30분 정도가 소요되는데 운 좋게 바람이라도 불어 주면 청보리가 살랑살랑 움직이며 일으키는 초록빛 파도의 장관을 감상할 수 있다. 초록물결 속에 알알이 박힌 사람들이 꽃처럼 보이는 순간이기도 하다.

200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고창 고인돌 유적지. 최기웅 기자

200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고창 고인돌 유적지. 최기웅 기자

고창군은 2000년 문화유산 ‘고창·화순·강화 고인돌 유적’ 등재 이후 2021년 자연유산인 ‘한국의 갯벌’이 등재됨에 따라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자연유산을 모두 보유한 지자체가 됐다. 고창군 전 지역이 유네스코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돼 있기도 하다. 유네스코가 보전의 가치가 있는 지역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국제적으로 인정한 육상 및 연안 생태계 지역을 말한다. 덕분에 청보리밭을 나와 힐링 여행을 할 만한 장소가 차고 넘친다.

청정자연의 생태문화를 즐기려면 운곡람사르 습지, 고인돌 유적지, 고창 갯벌, 동림저수지, 병바위와 주변의 두암초당을 추천한다. 담백한 품격의 역사문화를 즐기고 싶다면 천오백년 고찰 선운사, 고창읍성, 천년도량 문수사, 전봉준 생가터, 신재효 고택, 무장현 관아와 읍성, 미당시문학관 등이 있다. 웰니스힐링 체험문화를 위해선 책마을해리, 상하농원, 고창읍성 한옥체험마을 등이 제격이다.

풍천장어의 ‘풍천’ 지금은 없는 지역

선운산 자락에 위치한 천오백년 고찰 선운사. 대웅전 앞에 있는 아름드리 나무가 시원한 초록 그늘을 만든다. 최기웅 기자

선운산 자락에 위치한 천오백년 고찰 선운사. 대웅전 앞에 있는 아름드리 나무가 시원한 초록 그늘을 만든다. 최기웅 기자

고창은 오감 만족, 먹을거리가 풍부한 곳이기도 하다. 대표적으로는 보양식 ‘풍천장어’를 꼽을 수 있다. 장어하면 풍천장어(風川長魚)라고들 하는데, 사실 현재의 행정구분상 풍천은 없는 지역이다. 그래서 고창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도 ‘풍천장어’의 풍천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여러 가지 설이 존재한다. 고창군에 흐르는 주진천(인천강)과 서해가 만나는 심원면 부근을 풍천이라 하고, 이곳에서 잡히는 장어를 풍천장어라 부른다는 설이 있다. 주진천에는 하루 두 번 정도 바닷물이 들어오는데 자연산 장어가 바닷물과 함께 바람을 몰고 들어온다고 해서 ‘강의 하구와 바닷물이 만나는 지점’을 일컫는 일반명사로 풍천을 쓴다는 설이다. 2016년 풍수학자와 지리 전문가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풍천의 고유지명화를 위한 연구용역 발표회’에선 ‘풍천’이 고창군의 고유지명이라고 발표하기도 했다. 선운산 도솔암 계곡에서 시작해 선운사 앞을 지나 주진천과 합류하는 선운산 수계를 지칭하는 고유지명이 풍천이라는 설이다.

이는 모두 민물에서 자란 뱀장어가 새끼를 낳기 위해 다시 바다로 가기 때문에 생긴 설이다. 먼 바다에서 태어난 새끼 장어들은 수천㎞ 바다를 거슬러 매년 3월부터 5월 사이 우리나라 강 하구로 돌아온다. 장어는 인공 산란과 부화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본격적인 농사철을 앞둔 이때 고창군 사람들은 치어인 실뱀장어를 잡아 1년 동안 기르는데 이게 바로 풍천장어다. 손가락보다 가는 실뱀장어가 수천㎞ 바다를 열심히 거슬러 올라오는 힘찬 몸짓 때문에 장어는 스태미나에 좋은 음식으로 알려져 있고, 특히 가장 많이 움직이는 장어 꼬리를 귀하게 여긴다.

갯벌의 고장답게 봄에 고창을 방문했다면 제철 식재료인 바지락도 맛볼 만하다. 운전자를 제외한다면 고창에서 맛보는 밥상에서 복분자주도 잊지 마시길.

석정풍천장어

고창 풍천장어. 최기웅 기자

고창 풍천장어. 최기웅 기자

고창 장어탕. 최기웅 기자

고창 장어탕. 최기웅 기자

고창읍 석정1로에 위치한 식당이다. 넓은 홀에선 숯불구이로, 프라이빗한 룸에선 전기구이로 장어를 굽는다. 깻잎 장아찌에 장어 한 점을 올리고, 특제 소스를 듬뿍 바른 생강채와 부추를 얹어 먹으면 쫄깃한 풍천장어의 진미를 맛볼 수 있다. 구수한 장어탕 역시 매력적인 보양식이다.

본가

고창 바지락탕. 최기웅 기자

고창 바지락탕. 최기웅 기자

백합·바지락 전문 식당이다. 백합한상(1인 3만5000원)을 주문하면 백합전골을 비롯해 백합무침·백함찜·백합죽까지 한상 차려진다. 바지락 전골(1인 1만5000원)은 시원한 국물이 일품인데 면 사리와 공깃밥을 함께 주문하면 바지락 칼국수와 고소한 바지락 죽을 함께 먹을 수 있어 일타쌍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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