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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작품, 향기 맡으며 피아노 연주와 함께 감상한다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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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8호 18면

예술 감상도 크로스오버 시대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옆 공연장’. [사진 세종문화회관]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옆 공연장’. [사진 세종문화회관]

요즘 손님이 예전 같지 않은 영화관에선 스크린에 미술·음악을 띄운다. 지금 메가박스 코엑스·상암월드컵경기장·대전신세계 아트앤사이언스에 가면 그리스신화에 관한 인문학 강의를 들을 수 있다. 미술사학자가 대형 스크린 가득히 명화와 음악 연주 영상까지 띄워주며 입체적으로 지적 욕구를 채워준다. 세계적으로 명망 있는 예술작품을 영화관에서 감상할 수 있는 메가박스 ‘클래식 소사이어티’ 프로그램 중 하나인 ‘시네 도슨트’다. 왠만한 영화보다 관객이 많다. 지난해 총 15개 프로그램 좌석판매율이 평균 88.8%, 10회차 이후에는 98%를 기록했을 정도다.

영화관서 인문학 강의·명화 감상

서울시향 ‘퇴근길 토크 콘서트’ [사진 서울시향]

서울시향 ‘퇴근길 토크 콘서트’ [사진 서울시향]

2019년 시작됐지만 코로나 시국에 중단됐다가 지난해 하반기 재개됐는데, 올해는 시즌제를 도입해 4가지 주제를 심도 있게 파고든다. ‘2023 시네 도슨트’로 활약중인 안현배 미술사학자는 “인문학과 예술에 관한 관심은 경제발전에 비례해 생기는 자연스러운 일인데, 거리를 좁히는 과정과 이해와 공감을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면서 “극장에서의 작품 감상은 접근성과 집중도를 높이고, 이해를 돕는 사람도 있으니 입문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음악을 들으려면 꼭 잘 차려입고 콘서트홀에 가야 하고, 그림을 보려면 미술관에서 줄을 서야 하는 시대는 지났다. 어느새 예술은 우리 일상 속으로 훅 들어왔다. 2010년대 생소한 용어로 시작된 ‘렉처 콘서트’가 트렌드로 자리 잡으면서 다양한 방식으로 예술을 친근하게 소개하는 장이 늘고 있다.

지난달 24일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에서도 독특한 이벤트가 열렸다. 세종문화회관이 운영하는 세종예술아카데미가 처음 선보인 세종픽(PICK) ‘미술관 옆 공연장’이다. 장르는 강연인데, 구성이 특별하다. 미술계 스타 도슨트 정우철, 조향사 노인호,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 민시후다. 세 사람이 각자 강연을 하는 게 아니라, 화가 반 고흐를 주인공 삼아 콜라보 무대를 꾸몄다. 특수제작된 액자형 스크린에 정우철 도슨트가 고흐의 작품들을 띄우며 고흐의 삶과 예술에 대해 ‘일타강사’처럼 흥미롭게 풀어내면, 노인호 조향사는 주요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조향한 향기로 관객을 샤워시키고, 민시후 작곡가의 서정적인 피아노 연주가 이어졌다.

어둡고 슬퍼 보이던 고흐의 초창기 작품 ‘감자 먹는 사람들’을 숲속에 온 듯 흙과 나무향기 속에서 슈만의 ‘트로이메라이’ 연주와 함께 감상하니 왠지 모를 온기가 느껴졌다. 아를르 시절 대표작 중 하나인 ‘열다섯 송이 해바라기’는 또 어떤가. 친구 고갱을 손꼽아 기다리며 그렸다는 이야기, 여름햇살이 연상되는 풀향기와 민시후의 자작곡 ‘Daydream’ 연주와 함께 들여다보니 고흐의 설렘이 시공을 초월해 전해져 왔다.

예술 접근하는 통로 다양해져

메가박스 ‘시네 도슨트’. [사진 메가박스]

메가박스 ‘시네 도슨트’. [사진 메가박스]

세 사람은 이 무대를 ‘감각주의 콘서트’라고 소개하며 “예술은 어려운 게 아니라 쉼표”라는 철학을 전했는데, 관객을 은근히 긴장시키는 강연·공연과는 달랐다. 어린이부터 어르신까지 가득 채운 객석에선 향기에 취해 감탄사가 터져나왔고, 강사들의 입담에 호응도 뜨거웠다. 마지막 곡으로 돈 맥클린의 ‘빈센트’가 연주될 땐 자유롭게 촬영을 하며 고흐의 향취를 듬뿍 담아갔다.

친구 사이라는 세 사람의 ‘감각주의 콘서트’는 재작년 크리스마스에 우연히 시작됐다. 노인호 조향사는 “개인 강연도 하지만, 각자 뚜렷한 세 분야를 뭉쳐보자는 이야기가 나와 조그맣게 시작했는데 반응이 좋다. 그간 르느와르·모네 편을 20회 정도 했고, 세종예술아카데미를 위해 고흐 편을 제작했다”고 소개했다. 정우철 도슨트는 “도슨트 입장에선 미술 강연에 향기와 음악이라는 감각을 더하니 관객들이 감성적으로 빠져드는 것 같다”고 했고, 민시후 작곡가는 “애초에 감성적으로 접근하는 음악을 하는 피아니스트로서는 연주에 스토리가 더해지는 만큼 관객이 더 공감을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미술과 음악을 향기로 블렌딩해 시너지를 낸 셈이다. 세종예술아카데미를 운영하는 안호상 세종문화회관 사장은 “렉처 콘서트는 예술에 접근하는 통로를 다양하게 만들기 위한 기획”이라며 “예컨대 음악을 이해하려면 음악적 재능이 있어야만 한다는 편견을 갖고 있던 사람들이 미술이나 건축 등 관심분야를 통해 얼마든지 음악에 접근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찾게 됐다. 장르의 경계가 희미해지니 삶 속으로 예술이 자연스럽게 끌려 들어오는 현상도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렉처 콘서트는 교회까지 포섭했다. 지난달 27일에는 서울시향의 ‘퇴근길 토크 콘서트’가 대한성공회 주교좌성당에서 열렸다. 대표적인 인상주의 음악가 드뷔시와 라벨의 곡들을 ‘인상주의: 빛과 바람의 순간, 색채의 마법을 담다’라는 제목으로 연주했다. 피아니스트 조은아 경희대 교수와 양정무 한예종 미술이론과 교수가 인상주의 회화를 보여주며 주거니받거니 ‘인상주의’에 얽힌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놨다. 누구나 좋아하는 드뷔시의 ‘달빛’과 같은 인상주의 음악이 모네의 ‘해돋이’로부터 시작됐고, ‘본질은 없고 인상만 있다’는 초기 인상주의 회화에 대한 비평처럼, 인상주의 음악도 클래식의 본질로 취급되는 선율과 구조보다 오묘한 분위기나 느낌, 음향과 음색에 집중했다는 것이다.

이야기를 듣고 나니 베토벤 같은 고전주의보다 왠지 모호하게 느껴졌던 인상주의 음악의 감상포인트가 분명해졌고, 몰입도가 달라졌다. 여운은 공연 후에도 이어졌다. 관객들은 서울시문화재이자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로 선정된 바 있는 주교좌성당의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를 촬영하며 정동길 밤산책을 즐겼다.

서울시향은 2017년부터 연간 2~3차례 성공회성당에 터를 잡고 스포츠·문학·동물까지 특정 주제를 통해 음악에 접근해 왔다. 올해는 수요가 부쩍 증가해 ‘퇴근길 토크 콘서트’ 회차를 2배로 늘리고 장소도 연동교회·남대문교회·정동제일교회 등으로 확대하고 있다. 손은경 서울시향 대표는 “콘서트홀을 방문하기 어려운 시민들의 문화접근성 확대를 위해 역사적·상징적 의미가 있는 장소를 발굴해 클래식을 쉽게 전달하려는 의도”라면서 “신규 기획한 미술관·박물관 음악회를 통해서도 저변을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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