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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의 기억] 앉아서 젖 먹일 틈도 없는 농번기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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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8호 31면

농번기, 전북 고창, 1974년, ⓒ김녕만

농번기, 전북 고창, 1974년, ⓒ김녕만

‘오월’이라고 부르면 가슴이 먼저 온화하고 따스해진다.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이 있어서 그런지 모르겠다. 그런데 70년대 농촌의 오월은 하다못해 아궁이 앞 부지깽이도 뛴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농부의 하루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고 고달팠다. 그해 오월에도 모내기가 한창인 고향의 들녘을 누비다가 이 장면과 조우했다.

방금 모를 심다가 논두렁으로 나온 엄마의 손톱 끝에는 흙물이 배어있었다. 거칠어진 손이지만 젖을 먹는 아기를 편하게 해주려고 정성스레 머리를 받쳐주고 있는 엄마. 엄마라고 부르기엔 나이가 들어 보이고 고운 티를 찾아보기 어렵지만, 아기에게 젖을 먹이는 엄마의 표정과 동생을 업은 단발머리 누나, 업힌 채 달게 젖을 빠는 아기, 이 삼각 구도가 그 자체로 거룩하고 아름답게 보였다.

아마 누나는 칭얼대는 동생을 최대한 달래보려고 애를 썼을 것이다. 일찍 철이 든 누나는 동생이 졸라대도 최대한 시간을 늦추어 엄마의 일터를 찾아왔으리라. 종일 동생을 돌보느라 녹초가 되었지만, 엄마가 자신보다 몇 곱절이나 더 힘이 들고 지쳐있음을 알기 때문에 불평 한마디 없이 묵묵히 서 있을 뿐이다. 그리고 잠시라도 편안히 앉아 젖 먹일 새도 없는 엄마 뒤로는 여전히 분주한 일꾼들의 모습이 보인다.

농번기에는 큰 누나가 엄마를 대신했다. 젖먹이 동생은 어스름 저녁에야 들에서 돌아오는 엄마를 기다리다 누나의 등에 업혀 잠이 들었고 때로는 누나의 등에 오줌을 싸기도 했다. 사실 누나도 엄마 앞에서 어리광을 부리고 싶은, 아직은 어린 나이였는데 말이다. 산다는 게 이처럼 고단한 일인가. 이때를 회상하면 무언가 뜨거운 것이 목울대로 올라와 꿀꺽 삼키곤 한다. 그러나 한편으론 고단한 시절을 함께 겪었기 때문에 가족 간에 정이 더 애틋하고 단단했던 것이 아닐까. 어쩌면 지금도 막내를 업어 키운 누나는 엄마가 돌아가시고 없는 이 세상에서 여전히 동생들 안부를 염려하며 엄마를 대신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김녕만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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