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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그널 보내는 美…정찰풍선에 날아간 '미·중 대화' 돌아올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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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 블링컨(왼쪽) 미국 국무부 장관이 지난달 28일 콜로라도 덴버 시내 한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미주 도시 정상회의’에 참석해 한 시장과 대화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토니 블링컨(왼쪽) 미국 국무부 장관이 지난달 28일 콜로라도 덴버 시내 한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미주 도시 정상회의’에 참석해 한 시장과 대화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부 장관이 중국 방문 재추진 의사를 밝히면서 지난 2월 정찰풍선 사태 여파로 전격 취소된 미ㆍ중 간 고위급 대화 채널의 재가동 여부에 관심이 모아진다.

블링컨 장관은 3일(현지시간) 미 워싱턴포스트(WP)와의 대담에서 ‘올해 방중 일정을 다시 잡을 수 있을 것으로 보느냐’는 물음에 “그렇다”고 답한 뒤 “저는 모든 단계와 정부 전반에 걸쳐 정기적인 소통 라인을 재구축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우리는 중국과의 경쟁이 충돌로 이어지지 않도록 노력하는 데 큰 관심을 갖고 있다. 전 세계는 우리가 이 관계를 책임감 있게 관리해야 한다는 분명한 요구를 보내고 있다”며 “그것은 참여와 소통에서 시작되고 갈등으로 치닫지 않도록 노력하는 데서 시작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를 위해 최소한 관계의 밑바탕은 마련해야 하며 그 위에 가드레일을 둬야 한다. 이는 관여를 통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블링컨 장관은 당초 지난 2월 5~6일 중국을 방문할 예정이었지만, 중국 정찰풍선의 미 영토 침범에 양국 갈등이 격화하면서 방중 전날 전격 취소했었다.

미국이 지난 2월 4일(현지시간) 스텔스 전투기 등을 동원해 자국 영토에 진입한 중국의 정찰풍선을 격추했다. 사진은 미국 해군연구소가 트위터를 통해 공개한 격추 당시 모습. 사진 미국 해군연구소 트위터 캡처

미국이 지난 2월 4일(현지시간) 스텔스 전투기 등을 동원해 자국 영토에 진입한 중국의 정찰풍선을 격추했다. 사진은 미국 해군연구소가 트위터를 통해 공개한 격추 당시 모습. 사진 미국 해군연구소 트위터 캡처

하지만 미국의 대화 의지 시그널은 최근 다양한 경로로 발신되고 있다. 미 국무부 베단트 파텔 수석부대변인은 이날 언론 브리핑에서 ‘미국은 중국과 대화할 준비가 돼 있느냐’는 기자의 물음에 “우리는 여건이 허락하는대로 (취소된) 방중 일정이 다시 잡히기를 바란다”고 답했다. 이어 “미ㆍ중 양국 관계에는 기후위기 문제 해결, 대만 해협을 오가는 엄청난 규모의 무역량과 같은 경제 문제 등 전 세계에 매우 중요한 여러 이슈가 있다”고 말했다.

파텔 부대변인의 이런 답변은 전날 니컬러스 번스 주중 미국 대사가 “중국과 대화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발언한 것에 대한 부연 설명 과정에서 나왔다. 번스 대사는 2일 미 싱크탱크 스팀슨센터 주관 행사에서 지난 2월 취소된 블링컨 장관의 중국 방문과 관련해 “우리는 대화를 주저한 적이 없다”면서 “중국이 이 문제에 대해 우리와 절충점을 찾길 바란다”고 말했다. “지금 그 시점을 예측하기 어렵지만 우리는 이런 관계가 얼어붙는 것을 지지한 적이 없다”고도 했다.

반도체를 비롯한 첨단기술 분야뿐 아니라 대만 해협과 남태평양 지역 안보 등 여러 현안을 놓고 중국과의 갈등이 고조되고 있는 미국이지만, 소통과 대화를 희망하는 듯한 분위기는 최근 한ㆍ미 정상회담 때도 일부 감지된 바 있다. 미 백악관 고위 당국자는 한ㆍ미 정상회담이 열린 지난달 26일 ‘중국이 워싱턴선언에 반발하지 않겠느냐’는 취재진 물음에 “이런 단계를 밟을 때마다 미리 중국에 알리고 있다”고 했다. 한ㆍ미 간 ‘핵협의그룹(NCG)’을 창설하고 미국 전략핵잠수함의 한반도 기항에 합의하는 내용의 워싱턴선언이 중국을 자극할 수 있다는 일각의 우려에 대한 답변이었다. 한국 대통령실도 같은 날 “미국이 워싱턴선언 발표 하루 이틀 전 중국에 대략 사전 설명했다. 중국으로선 우려하거나 문제의식을 가질 필요 없다는 취지로 사전 브리핑한 것으로 안다”고 확인했다.

마오닝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지난달 27일 외교부 정례 브리핑에서 전날 열린 한ㆍ미 정상회담과 관련된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 캡처

마오닝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지난달 27일 외교부 정례 브리핑에서 전날 열린 한ㆍ미 정상회담과 관련된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 캡처

미국의 이같은 유화적 제스처에도 실제 미ㆍ중 고위급 대화가 재개되기까지는 갈 길이 멀다는 관측이 많다. 우선 중국의 반응이 아직 냉랭하다. 중국은 한ㆍ미 정상의 공동성명이 나오자 “잘못되고 위험한 길로 나가지 말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워싱턴선언을 두고는 “미국이 한반도 문제를 확대하고 긴장을 조성했다”며 날을 세웠다. 전략핵잠수함 등 미국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 가능성이 높아진 상황을 자국에 대한 위협으로 보는 인식이 반영된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달 15일에는 중국이 블링컨 장관의 중국 방문 재추진을 거부하고 있다는 보도가 파이낸셜타임스(FT)에서 나오기도 했다. FT는 미ㆍ중 간 협상 상황에 정통한 4명의 익명 인사들을 인용해 “중국 측은 미 바이든 행정부가 정찰풍선 조사 결과에 입각해 취할 조치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블링컨 장관의 방중 일정을 다시 잡을 준비가 돼 있지 않다는 입장을 미 측에 밝혔다”고 전했다.

다만 미국이 중국과의 경쟁을 불가피하다고 보면서도 충돌로 이어지는 상황을 원하지 않고 중국 역시 미국과 ‘관리된 경쟁 관계’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고위급 대화 채널이 재가동될 가능성은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최진백 국립외교원 중국연구센터 교수는 “블링컨 장관이 정찰풍선 사태로 국내 여론이 악화하면서 무산된 중국 방문을 다시 희망하고 있음을 공개적으로 거론하고 있고 중국은 ‘위드 코로나’ 전환 이후 기대만큼 나아지고 있지 않은 경제를 호전하기 위한 대중(對中) 투자 등을 감안해서라도 대화 필요성을 내심 인식하고 있을 것”이라며 “시기를 못박기는 어렵지만 여건이 된다면 블링컨의 방중과 대화 재개 가능성은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미 교통부는 미ㆍ중 양국을 오가는 중국 항공사의 주간 운항 편수를 현행 8편에서 12편으로 늘리는 것을 허용할 방침이라고 로이터통신이 3일 보도했다. 중국 정부가 미국 항공사의 주 12편 왕복을 허용하고 있는 것과 맞춘 것으로 풀이된다. 미 정부의 이번 조치에 대해 FT는 “미국과 중국이 최근 요동친 관계를 정상화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 중인 가운데 나온 작은 양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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