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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롯기’에서 늘 뒷전이었다…이제, 롯데가 흥행 주도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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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 키움-롯데전에서 매진을 이룬 사직구장 풍경. 사진 롯데 자이언츠

지난달 30일 키움-롯데전에서 매진을 이룬 사직구장 풍경. 사진 롯데 자이언츠

2000년대 중후반 프로야구는 황금기였다. 2006·2009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 2회 연속 선전과 2008년 베이징올림픽 우승이라는 씨앗이 KBO리그 흥행으로 열매를 맺었다. 그리고 2007년부터 시작된 SK 와이번스와 두산 베어스의 치열한 라이벌 구도는 질적인 향상까지 불러오면서 프로야구를 살찌웠다. 2002년 한·일월드컵 이후 주춤했던 KBO리그가 다시금 살아나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여기에서 빼놓을 수 없는 구단이 있다. 바로 롯데 자이언츠다. 부산을 연고로 둔 롯데는 2008년 프로야구의 패러다임을 바꿨다. 사상 처음으로 외국인 사령탑인 제리 로이스터를 영입하면서 새 바람을 일으켰다. 로이스터 감독은 이른바 ‘노 피어(No Fear)’로 대표되는 화끈한 공격야구를 앞세워 만년 하위권으로 머물던 롯데를 3위로 이끌었다. 구단 역대 최다인 11연승 신기록도 이때 나왔다. 인적이 줄어들던 사직구장에는 연일 구름관중이 몰려왔고, 경기가 끝날 때까지 응원소리가 그치지 않아 ‘사직노래방’이라는 별명도 생겼다.

이즈음 새로운 신조어까지 탄생했다. 바로 ‘엘롯기’다. 프로야구 전통의 인기 구단인 LG 트윈스와 롯데 그리고 KIA 타이거즈의 이름 앞 글자를 따 만들어진 단어다. 당시 롯데가 주도한 엘롯기 돌풍은 프로야구의 황금기로 직결됐다. 2008년 KBO리그 총관중은 사상 처음으로 500만 명을 돌파했다. 이 가운데 절반 가까운 250만 명의 관중이 롯데(137만 명)와 LG(80만 명), KIA(36만 명)의 홈경기에서 집계됐다.

롯데의 신바람은 영원할 것만 같았다. 그러나 15년 역사의 엘롯기 동맹에서 롯데는 늘 뒷전이었다. KIA가 2009년과 2017년 통합우승을 차지하고, LG가 가을야구 단골손님으로 자리 잡는 사이 롯데는 최근 5년 내리 포스트시즌을 TV로 지켜봐야 했다. 어느덧 엘롯기라는 단어도 놀림거리처럼 색깔이 바뀌었다. 5년 연속(2008~2012년) 관중 동원 1위를 놓치지 않던 사직구장은 과거처럼 썰렁해졌다.

그러나 올 시즌은 이야기가 다르다. 4월 레이스를 1위로 마친 롯데를 중심으로 프로야구가 다시 살아날 조짐이다. 롯데는 4월 한 달간 14승8패를 기록하고 단독선두로 치고 나갔다. 또, 5월 첫 번째 경기였던 2일 광주 KIA전에서도 7-4 승리를 거두고 9연승 돌풍을 이어갔다. 댄 스트레일리와 찰리 반즈 등 외국인투수들이 부진하지만, 나균안과 김진욱, 구승민, 김원중 등이 마운드를 잘 지켜주면서 도약의 발판을 놓았다.

롯데 김원중(오른쪽)이 지난달 30일 사직 키움전에서 2-0 승리를 지킨 뒤 유강남과 기뻐하고 있다. 사진 롯데 자이언츠

롯데 김원중(오른쪽)이 지난달 30일 사직 키움전에서 2-0 승리를 지킨 뒤 유강남과 기뻐하고 있다. 사진 롯데 자이언츠

롯데의 깜짝 활약은 프로야구의 흥행으로 연결되는 분위기다. 일단 관중 증가 페이스가 예사롭지 않다. KBO는 지난달 26일 총관중이 100만 명을 돌파했다고 발표했다. 단 101경기만을 치르고 이뤄낸 성과다. 이는 코로나19 사태 직전과 비교해도 큰 손색이 없다. 2019년에는 90경기, 2018년에는 92경기 만에 100만 관중을 넘어섰다. 10경기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아직은 많은 인파가 부담스러운 이들을 고려하면 회복세가 정상 수준으로 돌아섰다고 판단할 수 있다.

풍경이 가장 많이 달라진 곳은 역시 사직구장이다. 경기를 치를수록 관중이 들어차는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지난달 30일 열린 키움 히어로즈와 홈경기는 2만2990석이 올 시즌 처음으로 매진됐다. 상대가 전국구 인기를 자랑하는 구단은 아니었지만, 연승 행진을 앞세워 부산팬들을 끌어 모았다. 지난해 롯데는 4월 한 달간 12경기 동안 8만6418명의 홈관중을 기록했는데, 올 시즌에는 같은 기간 13경기에서 13만2634명의 홈팬들이 사직구장을 찾았다.

프로야구는 올해 개막을 앞두고 여러 악재가 터졌다. 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선 3회 연속 1라운드 탈락의 고배를 맛봤고, 선수와 단장 등의 비위 행위가 잇달아 드러나 뭇매를 맞았다. 이 과정에서 롯데도 크나큰 지탄을 받았다. 그러나 팬들은 다시 한 번 프로야구를 향해 믿음의 손길을 내밀었다. 롯데발 흥행 돌풍이 적지 않은 의미를 지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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