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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먼지 잡는 반백년 버즘나무 '좀비' 됐다…年5억 쏟는 이유 [르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1일 부산 사하구 신평장림산업단지 인도 변에 버즘나무가 늘어서있다. 이 일대엔 부산 가로수 버즘나무 7500그루 가운데 1216그루가 집중돼있다. 김민주 기자

지난 1일 부산 사하구 신평장림산업단지 인도 변에 버즘나무가 늘어서있다. 이 일대엔 부산 가로수 버즘나무 7500그루 가운데 1216그루가 집중돼있다. 김민주 기자

지난 1일 부산 사하구 신평ㆍ장림산업단지. 낙동강 하구와 맞닿은 이 산업단지 인도(폭 2, 3m) 에 심은 가로수는 온통 버즘나무(플라타너스)였다. 이 일대 약 10㎞ 구간에 심은 버즘나무는 모두 1216그루다. 부산 전역에 있는 7500그루 가운데 16.2%가 이곳에 몰려있다. 1970년대 심어 도시와 산업단지가 성장하는 모습을 반백년 동안 지켜본 터줏대감이다.

반백년 터줏대감, 애물단지 ‘좀비나무’ 됐다

하지만 이들 버즘나무는 곧 사라질 전망이다. 사하구가 최근 ‘신평ㆍ장림산업단지 버즘나무 수종갱신(교체) 검토’를 통해 1216그루를 모두 왕벚ㆍ이팝 등 다른 나무로 대체하는 계획을 세우면서다. 이 같은 계획이 검토된 건 세월이 흐르며 버즘나무가 사실상 애물단지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미세먼지 등 공해 저감 기능이 있고 잘 자라는 버즘나무는 부산뿐 아니라 전국에서 가로수로 사랑받았다. 그런데 ‘지나치게 뛰어난’ 생육이 문제가 됐다. 1년이면 가지가 1m가량 자라고, 잎도 넓어 가지치기 작업을 자주 해줘도 전신주나 전선을 휘감기 일쑤다. 이 때문에 가로수를 관리하는 공무원 사이에선 ‘좀비나무’로 불린다. 인근 공장 관계자 등에 따르면 전선 지중화 작업이 되지 않은 신평ㆍ장림산업단지에선 이 같은 문제로 정전이 일어나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실제로 이날 키가 5~6m에 달하는 버즘나무 가지가 전신주와 전선을 둘러싸고 자란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가지치기한 지 얼마 안 돼 보기 흉했지만, 볕이 잘 드는 곳에 있는 나무에선 새순이 빠르게 자라고 있었다. 이곳에서 10년 넘게 살은 모터 수리업체 주인은 “나무에 간판이 가리는 건 물론 비가 많이 오면 넓은 잎사귀가 배수로를 막아 일대가 엉망이 되곤 한다”고 말했다.

지난 1일 부산 신평장림산단에서 가로수인 버즘나무가 높이 자라 전선과 전신주를 감싸고 있다. 김민주 기자

지난 1일 부산 신평장림산단에서 가로수인 버즘나무가 높이 자라 전선과 전신주를 감싸고 있다. 김민주 기자

사하구는 가지치기 작업 등으로 1216그루를 관리하는 데 연간 5억원을 쓰고 있다. 관련 민원도 많다. 사하구 관계자는 “가지와 잎이 활발하게 자라는 4~11월 사이에 특히 민원이 많다. 전선을 감싸 위험하다거나 나뭇가지로 인해 간판이 가린다는 등 내용”이라며 “버즘나무를 모두 교체하는 데 약 20억원이 들 것으로 보인다. 공모 사업을 통해 올해 안에 부산시 예산 등을 확보하면 곧바로 교체 작업을 시작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수령 다 된 고목 ‘우지끈’ 사고 위험도
버즘나무는 주로 1960~1970년대 전국 곳곳에 심었다. 수령(樹齡)이 50~60년으로 더는 자라지 않는 나무가 대부분이다. 2020년 4월 대전에서 갑자기 쓰러지며 자동차를 덮친 버즘나무도 1960년대 심은 가로수였다. 당시 높이 10m에 달하는 버즘나무가 갑자기 넘어져 주변 승용차를 덮쳤다. 인근을 지나던 버스가 급정거하면서 인명사고는 피했다. 이 나무는 내부가 썩어들고 있었지만, 겉으로 보기엔 멀쩡했다. 나무는 기울기 시작한 지 3초 만에 완전히 쓰러진 것으로 조사됐다.

부산 신평장림산업단지에 가로수인 버즘나무가 울창하게 자란 모습. 사하구는 가지치기 등 버즘나무 관리에 연간 5억원을 투입하고 있다. 사진 사하구

부산 신평장림산업단지에 가로수인 버즘나무가 울창하게 자란 모습. 사하구는 가지치기 등 버즘나무 관리에 연간 5억원을 투입하고 있다. 사진 사하구

이 사고를 계기로 버즘나무를 벌목하거나 다른 나무로 교체하는 작업이 진행돼왔다. 올해 초 청주교대가 학교 상징이던 버즘나무 50여 그루를 벌목하기로 결정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이들 나무는 1941년 개교 때 심어 수령이 80년을 넘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무 내부가 썩어들어가며 부러지거나 잎사귀 등이 배수구를 막는 상황이 발생하자 벌목했다. 이 자리에는 왕벚나무를 심을 계획이라고 청주교대는 밝혔다.

부산에서도 버즘나무는 빠른 속도로 줄었다. 부산시에 따르면 현재 가로수 17만5000그루 가운데 버즘나무는 7500그루(4.3%)이며, 가로수로는 5번째로 많은 나무다. 20년 전엔 1만그루에서 꽤 줄었다. 부산시 관계자는 “지난해 7월 버즘나무 전체를 대상으로 질병 감염, 내부 천공 여부 등을 조사했다. 수령이 오래된 나무가 많은 만큼 사고에 대비하기 위해 계속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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