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사귀니" 이 말이 단짝 갈라놨다…13세 소년들의 비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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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카스 돈트 감독의 영화 '클로즈'는 서로가 세상의 전부였던 레오와 레미, 두 소년의 우정과 이별에 관한 이야기를 그렸다. [사진 찬란]

루카스 돈트 감독의 영화 '클로즈'는 서로가 세상의 전부였던 레오와 레미, 두 소년의 우정과 이별에 관한 이야기를 그렸다. [사진 찬란]

지난해 칸 국제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받은 영화 ‘클로즈’(3일 개봉)는 차세대 거장으로 주목받는 벨기에 감독 루카스 돈트(31)가 13살 두 소년의 특별한 우정을 그린 작품이다.
10대 트랜스젠더 발레리나의 고군분투를 담은 데뷔작 ‘걸’(2018)로 칸 영화제 황금카메라상(신인감독상)을 받은 그가 이 두 번째 장편에선 학교 친구들의 동성애자 놀림 탓에 멀어지는 단짝 친구 레오(에덴 담브린)와 레미(구스타브 드 와엘)의 비극을 그렸다.
“너희 둘 사귀니?”
레오는 형제처럼 자란 자신과 레미를 이렇게 놀리는 학교 아이들에게 “어릴 적부터 친구”라며 발끈한다. 아이들도 지지 않는다. “친구라기엔 너무 가깝잖아.”
숲에서 둘만의 전쟁놀이를 하고, 다정한 몸짓을 주고받던 두 소년의 우정은, 레오가 주변 시선을 의식하기 시작하며 산산 조각난다.

5월 3일 개봉 영화 '클로즈' #칸 심사위원대상 31세 감독 #루카스 돈트 화상 인터뷰 #"13세 소년들 솔직한 우정 #있는 그대로 그렸죠"

"실제 13살 소년들은 서로 사랑한다고 말하죠"

제목인 영어 단어 ‘클로즈(Close)’는 ‘친밀한’이란 뜻이다. 루카스 돈트 감독은 ‘클로즈’에서 “남성들 간의 친밀감을 성적인 관계로만 바라보는 사회에 ‘그게 아니다. 이 아이들은 순수하게 서로 사랑할 수 있다’는 점을 말하고 싶었다”고 했다. [사진 찬란]

제목인 영어 단어 ‘클로즈(Close)’는 ‘친밀한’이란 뜻이다. 루카스 돈트 감독은 ‘클로즈’에서 “남성들 간의 친밀감을 성적인 관계로만 바라보는 사회에 ‘그게 아니다. 이 아이들은 순수하게 서로 사랑할 수 있다’는 점을 말하고 싶었다”고 했다. [사진 찬란]

올 초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국제장편영화상 후보에 올라 뉴욕에 체류 중이던 돈트 감독을 화상 인터뷰로 만났다.

“지금껏 스크린 속 소년들의 우정은 쿨하고 멋있는 척하는 모습이었지만, 실제 13살 소년들은 사랑한다는 얘기도 하고 서로를 아끼고 돌보죠. 그 나잇대의 우정 그대로를 그리려 했습니다.”

돈트 감독에게 이 영화는 반자전적 작품이기도 하다. 그가 12살 때 학교 장기자랑에서 팝스타 크리스티나 아길레라의 노래에 맞춰 춤췄다가 아이들의 괴롭힘을 당한 뒤 댄서의 꿈을 접은 유년기 경험이 출발점이 됐다. ‘걸’ 발표 후 차기작을 구상하던 시기, 초등학교 동창회에 갔다가 당시 상처가 되살아났단다. “소년은 이래야 해”라며 성별을 구분 짓는 사회적 잣대가 아이들 마음속 무언가를 죽여온 것은 아니냐는 생각과 함께.

"女 팝스타 춤췄다가 집단 괴롭힘…'갑옷'에 숨었죠"

“성인이 돼서야 청소년기가 우리 삶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치는지 깨닫는다”는 그는 “‘클로즈’ 촬영 전 종이에 ‘남성성’이라고 적었다. 여성성에 관한 영화 ‘걸’과 짝을 이루는 영화”라고 말했다.
이어 "소년들을 인터뷰한 심리학책『딥 시크릿』을 보니, 13살 땐 서로 열렬하고 ‘사랑한다’는 단어를 쓰던 소년들이 17~18세엔 더 이상 그런 단어로 관계를 묘사하지 않고 거리감을 두더라. 사회적 통념과 문화가 그렇게 만든다"고 덧붙였다.

자신 또한 어릴 적 그런 경험이 있었다는 그는 "돌아가고픈 시절이 얼마나 짧은지 느낄 수 있도록 영화의 첫 14분은 일부러 에덴동산처럼 촬영했다"며 "사회의 기대에 부응하다 보면 순수, 순진함을 잃는다. 집단에 소속되고 스스로 보호하기 위해 내가 아닌 모습의 ‘갑옷’을 입는다"고 말했다. 무엇이 진짜 ‘나’이고, 무엇이 ‘갑옷’인지 구분해서 진짜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게 감독의 연출 의도다.

무용학교·모델 출신 10대 배우들 호평

영화 속 두 소년의 행복감과 상실감이 고스란히 관객에 전달된다. 캐릭터에 녹아든 배우들의 연기 덕분이다. 레오 역의 에덴 담브린은 무용학교 출신으로, 돈트 감독이 우연히 기차에서 친구들과 이야기하는 그를 보고 표현력에 반해 오디션을 제안했다. 구스타브 드 와엘은 프랑스 TV쇼로 얼굴을 알린 모델 겸 배우다.
돈트 감독은 “처음부터 눈과 표정으로 내면 감정을 잘 전달할 배우를 찾았다”면서 “배우들에게 시나리오는 딱 한 번만 읽고 덮게 한 후 좋아하는 영화 등 자연스레 질문을 주고받으며 캐릭터에 대한 답을 스스로 구하게 했다”고 말했다.

영화 '클로즈'에서 레오 역을 맡은 배우 에덴 담브린. 이번 영화가 연기 데뷔작이다. [사진 찬란]

영화 '클로즈'에서 레오 역을 맡은 배우 에덴 담브린. 이번 영화가 연기 데뷔작이다. [사진 찬란]

'클로즈'의 레미 역을 맡은 구스타브 드 와엘은 프랑스 TV쇼로 얼굴을 알린 모델 출신 배우다. [사진 찬란]

'클로즈'의 레미 역을 맡은 구스타브 드 와엘은 프랑스 TV쇼로 얼굴을 알린 모델 출신 배우다. [사진 찬란]

벨기에 시골에서 자란 돈트 감독은 "내 이야기를 나눌 상대가 없었다"면서 "영화와 책이 유일한 돌파구였다. 나 자신과 대화를 나누며 극장 밖으로 나설 땐 스스로와 세상에 대해 많은 걸 깨달을 수 있었다"고 돌이켰다.

"이창동 '버닝' 최고…잠재력 풍부한 한국 작품 도전하고파" 

그는 기회만 되면 한국 콘텐트 제작에 참여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지난해 칸 영화제에서 ‘헤어질 결심’의 박찬욱 감독과 만난 경험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는 그는 이창동 감독의 ‘버닝’(2018)을 “지난 10년 동안 가장 감명 깊게 본 영화”로 꼽기도 했다.
“한국 콘텐트의 오랜 팬으로서 한국 콘텐트는 잠재력이 풍부하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문화를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기꺼이 도전하고 싶습니다.”

루카스 돈트 감독의 영화 '클로즈'는 서로가 세상의 전부였던 레오와 레미, 두 소년의 우정과 이별에 관한 이야기이다. [사진 찬란]

루카스 돈트 감독의 영화 '클로즈'는 서로가 세상의 전부였던 레오와 레미, 두 소년의 우정과 이별에 관한 이야기이다. [사진 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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