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첫 6개월과 다른 행보…이재용, 지구 한바퀴 반 돌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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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달24일 중국 텐진에 위치한 삼성전기 사업장을 방문해 MLCC 생산 공장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 삼성전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달24일 중국 텐진에 위치한 삼성전기 사업장을 방문해 MLCC 생산 공장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 삼성전자

6만2249㎞-. 지난해 10월 말 회장으로 취임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그 후 6개월간 이렇게 긴 거리를 이동했다. 공개된 일정만 계산한 것이다. 지구 1.5바퀴 거리로 하루 341㎞ 꼴이다.

지난 27일로 이 회장이 취임 6개월을 맞았다. 이 회장의 첫 6개월 행보는 ‘G(글로벌)’, ‘S(스킨십)’, ‘R(리스크)’이라는 세 가지 알파벳 키워드로 요약된다.

먼저 6차례의 해외 출장 중 7개국을 방문해 글로벌 경영 보폭을 확대했다. 국내 사업장도 꾸준히 찾으면서 임직원과 스킨십을 늘려갔다. 예컨대 수요일에 대전 사업장에 갔다가 목·금요일에는 재판 출석을 위해 서울 서초동에, 그 다음 주 화요일에는 천안·아산 사업장을 가는 식이다. 이어서 한 주는 대통령 경제사절단으로 일본을 찾고, 그 다음 주에는 중국 포럼 행사장으로 날아간다.

국내·외 광폭 행보로 네트워크 ‘복원’

이 회장은 별도의 취임식이나 취임사 없이, 취임 이튿날 삼성전자 광주사업장과 협력사를 찾는 것으로 대외 일정을 소화했다. 지난 2월에는 대전 삼성화재·삼성청년소프트웨어아카데미(SSAFY) 대전캠퍼스(1일), 충남 아산 삼성디스플레이(7일), 충남 천안·온양 반도체 패키지 사업장(17일), 수원 삼성전자 VD사업장(21일), 수원 삼성SDI(27일) 등 총 7개의 사업장을 방문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이 회장이 이렇게 사업장 방문이 잦은 데는 현장 점검에 더해 직원들과 스킨십을 늘린다는 의미도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직원들은 그동안 이 회장을 직접 마주하기보다는 언론에 비치는 모습을 봐 왔다. 오랜 시간 축적된 이미지를 갖고 있던 고(故) 이건희 선대회장과 비교했을 때 ‘우리 회장’이라는 인식이 크지 않았던 것 같다”며 “(이 회장이) 직원들을 직접 만나면서 결속력 강화가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회장의 현장 일정은 사업지원 태스크포스(TF) 등 수뇌부에서 추천하거나 본인이 직접 선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장 간담회서 “유튜브 구독 많이 한다” 화제

이 회장은 사업장을 찾으면 늘 현장 직원과 간담회 자리를 마련해 직접 소통하는 시간을 가졌다. 사업장별로 테마에 맞게 간담회 참석 직원이 정해진다. 예를 들어 MZ세대 직원, 소프트웨어 개발자, 기부를 많이 한 직원들 등 다양하다. “외국어 공부를 더 안 한 게 후회스럽다” “유튜브 구독도 많이 한다” 같은 발언이 나온 것도 모두 임직원 간담회서다.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5일(현지시간) 워싱턴DC 상공회의소에서 열린 한미 비즈니스라운드테이블에서 누바르 아페얀 모더나 이사회 의장,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대화하고 있다. 사진 대통령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5일(현지시간) 워싱턴DC 상공회의소에서 열린 한미 비즈니스라운드테이블에서 누바르 아페얀 모더나 이사회 의장,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대화하고 있다. 사진 대통령실

여권에 잉크 마를 날이 없을 만큼 해외 출장도 잦다. 지난해 12월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원전 출장을 시작으로 베트남·싱가포르·스위스·일본·중국·미국 등 지금까지 7개국을 다녀왔다. 이 중 4개국은 윤석열 대통령 경제사절단으로 동행한 일정이다. 중동은 현지 사업장 방문 때 1번, 대통령 사절단으로 또 1번 총 2번 방문했다. 국내에서도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빌 게이츠 빌게이츠앤멜린다재단 회장,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 등과 회동하면서 글로벌 인적 네트워크를 복원하고 있다.

‘이건희 첫 6개월’과 대조적 움직임  

이 회장의 이 같은 행보는 이건희 선대회장 취임 첫 6개월과 대조적이다. 이 선대회장은 1987년 12월 1일 이병철 창업회장의 타계 직후 회장에 취임했다. 당시 언론 보도를 종합하면 이후 6개월간 이 선대회장 행보에 관한 기사는 손에 꼽힌다. 이듬해 1월 일본 출장, 3월 미국 출장과 서울 잠실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삼성그룹 창립 50주년 행사 참석, 5월 경제기획원(현 기획재정부) 주최 대외경제담당관연수회 강연 정도다.

대신 눈에 띄는 움직임이 있었다. 취임 후 6개월이 채 안 된 1988년 5월 21일 삼성전자와 삼성반도체통신 합병이 발표됐다. 당시 언론은 “1990년대 중반까지 삼성을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키우겠다는 (이 선대회장의) 의지의 하나다. 합병으로 국내 최대 제조업체로 부상했다”고 보도했다.

고 이건희 삼성그룹 선대회장이 1987년 12월 1일 취임식에서 사기를 흔들고 있다. 사진 삼성전자

고 이건희 삼성그룹 선대회장이 1987년 12월 1일 취임식에서 사기를 흔들고 있다. 사진 삼성전자

이에 비하면 이 회장 앞에는 위기 관리가 숙제로 놓여 있다. 무엇보다 14년 만에 처음으로 지난 1분기 반도체 사업에서 4조6000억원대 영업적자를 기록하는 등 ‘반도체 한파’를 넘어서야 한다. 삼성은 이달 초 메모리 반도체 감산을 발표한 상태다. 하지만 글로벌 경기 침체 여파로 수요 회복이 더딜 것으로 전망된다.

여기에다 자국 주도로 공급망 재편을 시도하는 미국과 이에 반발하는 중국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것도 부담 거리다. 삼성전자는 중국 시안 공장의 전체 낸드플래시의 40%를 생산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이번 방미 때 미국 반도체과학법과 관련한 독소조항 논란에 대해 원론적인 합의에 그친 것도 삼성으로선 아쉬운 대목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 2월 17일 삼성전자 천안캠퍼스 패키지 라인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 삼성전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 2월 17일 삼성전자 천안캠퍼스 패키지 라인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 삼성전자

반도체 한파 넘어서야…‘뉴삼성’ 비전 제시도 

사법 리스크도 여전하다. 거의 매주 고정적으로 있는 재판 일정이 있다. 이 회장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부당합병 혐의 관련 재판을 받고 있다. 취임 후 지금까지 총 21번의 재판이 있었는데, 해외 일정이나 윤석열 대통령과 함께하는 일정 외에는 매번 서울 서초구에 있는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출석한다. 한때는 목·금 일주일에 두 번씩 있던 재판이 최근 한 달에 한두 번꼴로 열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중장기적인 ‘뉴삼성’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보통 기업의 운명을 좌우하는 데는 오너경영인의 역할이 70~80%를 차지한다”며 “경기 불황과 반도체 위기라는 어려운 상황에서 이 회장이 보다 분명한 미래 비전 메시지를 제시하고 구성원과 공유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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