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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과연 한국 지킬까…커지는 전쟁 공포, 아태 국가 군비 경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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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호 기자 중앙일보 기자

“우리는 점점 더 불안한 세상에 살고 있다.”

지난 24일 스웨덴 싱크탱크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가 악화되는 세계 안보 상황에 대응해 각국이 군비 지출을 늘리고 있다며 내린 평가다. 최근 들어 가장 불안해진 지역으론 단연 아시아·태평양(아태)이 꼽힌다. 이날 SIPRI가 발표한 ‘2022 세계 군비지출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아태 국가들의 군비 지출은 5750억달러(약 770조원)에 이른다. 10년 전보다 45% 늘어 증가율에서 다른 지역을 압도했다. 전 세계 국방비에서 아태 국가가 차지하는 비중도 2000년 17.5%에서 지난해 26%로 급등했다.

아태 지역의 군비 증가세엔 지난해 2920억달러(추정치)를 기록하며 28년 연속 군비가 증가한 중국의 몫이 크다. 중국의 지난해 군비는 전년보다 4.2%, 10년 전 보다 63% 증가했다.

 지난해 11월 일본 가나가와현 남부 사가미만 일대에서 열린 일본 해상자위대 주관 국제 관함식에서 자위대 소속 호위함 이즈모 등이 운행을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해 11월 일본 가나가와현 남부 사가미만 일대에서 열린 일본 해상자위대 주관 국제 관함식에서 자위대 소속 호위함 이즈모 등이 운행을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하지만 다른 아태 국가들의 군비 증강 움직임도 중국 못지 않다. 일본과 인도는 지난해 각각 전년보다 6%, 5.9%나 늘려 국방비로 썼다. 2027년까지 방위비 규모를 국내총생산(GDP)의 1%에서 2%로 높이겠다고 한 일본은 미국산 토마호크 미사일을 400발 구매하고 자체 장거리미사일 개발에 나섰다. 인도는 지난해 9월 자체 제작한 첫 항공모함 INS 비크란트를 취역했고, 지난 1월엔 일본·베트남과 함께 공동군사훈련을 실시했다.

호주는 지난달 미국과 영국과의 안보협의체 오커스(AUKUS)를 통해 핵추진 잠수함 도입 계획을 발표했다. 이를 위해 2055년까지 최대 2450억 달러(약 318조원)를 쏟아붓는다. 말레이시아는 지난 2월 한국산 초음속 전투기 FA-50 18대를 수입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필리핀은 지난 2월 미국에 자국 내 주요 군사기지 4곳에 대한 접근·사용 권한을 추가로 준 뒤, 이달 11일부터 28일까지 남중국해에서 연례 합동 군사훈련 ‘발리카탄’을 역대 최대 규모로 진행했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아태 국가들은 왜 앞다퉈 군비 증강에 나서는 걸까. 불안하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NYT)는 “전 세계 GDP의 65%를 차지하며 세계 경제의 ‘엔진’으로 부상한 아시아에서 전쟁 공포가 퍼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표면적으로는 이 지역에 커지는 군사적 위협 때문이지만, 근본적으론 세계 3대 군사 강국인 미국·중국·러시아가 각각 불안 요소가 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커지는 中 패권, 실질적 위협

팽창하는 중국은 아태 국가들이 맞이한 실질적 위협이다. 중국은 대만해협 주변에서 군사적 긴장감을 높일 뿐 아니라 남중국해, 인도 접경지대 등에서 인접 국가와의 충돌을 불사하고 있다. 지난해 8월 낸시 펠로시 당시 미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에 반발해 미사일 발사 등 대규모 무력시위를 벌일 당시, 역대 처음으로 일본이 설정한 배타적경제수역(EEZ)에 미사일을 떨어뜨려 거센 반발을 불렀다. 일본과 중국은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를 놓고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다.

지난해 8월 중국 동부전구사령부가 대만 포위 무력 시위를 벌인 가운데 대만 해역을 향해 발사된 둥펑-15 탄도미사일. 사진 중국 CCTV 군사채널 캡처

지난해 8월 중국 동부전구사령부가 대만 포위 무력 시위를 벌인 가운데 대만 해역을 향해 발사된 둥펑-15 탄도미사일. 사진 중국 CCTV 군사채널 캡처

남중국해 영유권을 두고 동남아시아 국가들과 중국의 분쟁도 고조되고 있다. 지난 2월 중국군 함정이 군용 물자 보급 작전을 진행하던 필리핀 선박에 레이저를 쏴 선원들이 일시적으로 시력을 잃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싱가포르와 인도네시아는 중국의 위협에 맞서 잠수함을 추가로 구매해 해군력을 강화했다.

중국과 약 3500㎞의 국경을 맞대고 있는 인도 역시 지난 2020년 국경지대에서 중국군과 인도군이 충돌해 인도군 20명이 숨진 이후 다연장로켓포와 브라모스 초음속 순항미사일, 경전투 헬기 등을 국경지대에 배치해 놓고 있다. NYT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대만을 통제해 ‘하나의 중국’ 원칙을 달성하고, 남중국해 접근을 제한하는 등 역내 ‘규칙 제정자’ 자리에서 미국을 밀어내겠다는 목표를 분명히 했다”며 “이에 대한 대응으로 이웃 국가들이 ‘하드파워’로 눈을 돌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美, 과연 우릴 지킬까

지난 3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 포인트 로마 해군기지에서 버지니아급 핵 추진 잠수함인 미주리함을 배경으로 오커스(AUKUS) 정상회담 결과를 설명하는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리시 수낵 영국 총리(왼쪽부터). AP=연합뉴스

지난 3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 포인트 로마 해군기지에서 버지니아급 핵 추진 잠수함인 미주리함을 배경으로 오커스(AUKUS) 정상회담 결과를 설명하는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리시 수낵 영국 총리(왼쪽부터). AP=연합뉴스

그간 역내 안보 질서를 관리해준 ‘세계 경찰’ 미국이 미덥지 않게 된 영향도 크다. 미국이 지난해 2월부터 러시아의 침공을 받은 우크라이나에 천문학적인 지원을 쏟아부은 탓에 다른 지역에 힘을 쏟을 정치적·군사적 여력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행여나 분쟁에 휘둘릴 경우 미국에 손 벌리기가 여의치 않을 수 있다. 실제로 호주는 지난 24일 공개한 국방전략보고서(DSR)에서 “중국은 인도·태평양의 글로벌 규칙 기반 질서를 위협하고 미국은 더 이상 이 지역의 독보적 리더가 아니다”라고 진단하며 4년 동안 190억호주달러(약 17조원)를 들여 자체 장거리 미사일 타격 능력을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인접국인 인도네시아도 지난해 2월 프랑스와 라팔 전투기 42대 구매 계약을 체결한데 이어 브라모스 미사일 2억 달러(약 2622억원)어치를 구매할 계획도 세워놓고 있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러시아 무기에 뒤통수 맞아

인도와 동남아시아의 주요 무기 공급국이던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공급 물량을 맞춰주지 못하는 것도 변수가 되고 있다. 인도 공군은 지난달 러시아로부터 구매한 전투기 수호이(SU)-30, 미그-29와 방공미사일 S-400 등을 제대로 공급받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인도 싱크탱크 옵서버리서치재단의 하쉬 판트 부이사장은 “우크라이나 전쟁은 인도가 러시아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무기 다변화 노력을 기울이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도 “러시아제 무기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보여준 형편없는 성능은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러시아산 무기를 꺼리게 하고 한국 등 새로운 국가로 눈을 돌리게 만들었다”고 전했다.

지난달 우크라이나 루한스크주에 파괴된 러시아군 탱크가 버려져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달 우크라이나 루한스크주에 파괴된 러시아군 탱크가 버려져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아태 지역에서 벌어지는 군비 경쟁은 본질적으로 안보 자립 차원이지만 이 같은 군비 증강만으론 위기 억제에 한계가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피터 레이튼 호주 그리피스대 연구원은 “10년 내 아시아 지역에서 주요 강대국 간 전쟁 발생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며 “미국·아시아 국가들과 중국 간의 경제 상호의존을 강화해 군사적 충돌을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