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는 이념적 부동산 정책과 시장 혼란이 부른 참사 [윤희숙 전 의원 인터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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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7호 16면

‘나는 임차인입니다’ 윤희숙 전 의원

윤희숙 전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27일 서울 중구 중앙일보 네오스테이션에서 전세사기 피해 보상 방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윤희숙 전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27일 서울 중구 중앙일보 네오스테이션에서 전세사기 피해 보상 방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전세사기가 전국적으로 확산하며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아직 그 끝이 어디일지 조차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피해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내집 마련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전세’란 주거사다리를 딛고 한걸음 한걸음 올라가던 청년과 서민들이 하루 아침에 꿈을 잃고 좌절에 빠졌다. 그 좌절과 절망을 이기지 못한 피해자 3명은 목숨을 끊었다.

이런 사태를 보면서 기억 속에서 소환된 인물이 있다. 2020년 ‘저는 임차인입니다’란 국회 연설을 통해 시장의 교란과 전세 대란이 오리라고 예견했던 윤희숙 전 국민의힘 의원이다. 의원직을 스스로 그만두고 강연·유튜브 등의 활동을 하고 있는 그를 만나 이번 사태에 대한 진단과 해법을 물었다.

안타깝지만 세금으로 사기피해 보상 안 돼

윤 전 의원은 “사기 사건이 발생한 여러 배경 중 우리가 통제할 수 있었던 부문만 보자면 가장 문제였던 점은 이념적으로 부동산 정책을 펼친 것이다”라며 “임대인을 나쁜 사람으로 보는 취지의 법을 만들고, 투기꾼을 잡아야 하니 세금을 많이 매겨서 해결하자는 식의 정책을 냈다”고 말했다. 이어서 “이후 그 과정에서 생긴 문제들을 틀어막으면서 전세대출이 많이 풀렸는데,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데이터에 기반해 대응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저는 임차인’으로 시작되는 연설로 전세 대란을 예상했는데, 임대차 3법을 전세사기의 원인으로 볼 수 있나.
“물론 근본적인 원인은 ‘사기’다. 하지만 임대차 3법 때문에 전세 시장이 완전히 혼돈의 도가니가 됐다. 당시 연설에 나선 것도 부작용이 어마어마하게 예상되는 법을 어떻게 이렇게 졸속으로 처리할 수 있냐고 말하기 위해서였다. 실제로 그 이후 전세 가격이 수직 상승했고 현재 갭 투자의 온상이 된 전세대출이 급격히 늘었다. 세계적인 인플레이션으로 금리가 오르며 매매 가격과 전세 가격이 떨어진 것 역시 중요한 배경이다. 복합적인 원인에 의해 발생한 문제인데 임대차 3법이 그 원인 중 하나인 셈이다. 하지만 당시 임대차 3법을 찬성한 그 누구도 정책 실패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보증금 보상안은 ‘선동’이라고 표현했는데.
“사건의 본질이 ‘사기’라는 점에서 생각해보면, 피해자들이 정말 너무 안타깝지만 사기 피해 금액을 세금으로 다 보장해줄 수는 없다. 지금까지도 그렇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세금으로 보상하자는 주장은 이 사건을 ‘사기’가 아닌 ‘정책 실패’로 바라봐야 가능한 것이다. 그렇다면 정책 실패를 인정하고 사죄해야 하는데 그 누구도 그렇지 않았다. ‘앞으로 모든 사기 피해를 다 국가가 보상할 것인가?’라고 의문을 갖는 국민들을 “이번 사기는 과거에 만든 정책으로 인해 발생한 것이라 보상해주는 것이고, 다른 사기 사건에 대해서는 보상하지 않는다”고 설득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실현할 수 없는 해결방안을 제시하며 금리를 이유로 들고 있으니 진정성이 없을 뿐만 아니라  무책임한 선동이라는 것이다.”
현재로서 가능한 해결방안은.
“특별법에 포함된 ‘우선매수권’ ‘장기매입임대’ 등의 방안이 법적인 틀 속에서 나올 수 있는 최대한에 가까울 것이라고 본다. 문제는 상당한 재정 투입이 불가피한데, 그 금액을 산정할 수 없다는 점이다. 아직 만기가 도래하지 않아 피해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도 있고 밝혀지지 않은 사례도 있을 것이다. 시간을 두고 보면서 상황에 맞게 대책을 세워야 할 필요가 있다. 특별법에서도 ‘다수 피해자’ 조건이 어떤 의미인지 등 정확하게 따지고 구체화할 부분이 있다. 가장 구체적이고, 최선의 방안이라는 확신이 들 때까지 국회가 논의해야 한다.”
28일 오전 국회 앞에서 열린 ‘정부여당의 전세사기 특별법안 철회 촉구 기자회견’에서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 회원이 무릎을 꿇고 피해 구제를 호소하고 있다. [뉴스1]

28일 오전 국회 앞에서 열린 ‘정부여당의 전세사기 특별법안 철회 촉구 기자회견’에서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 회원이 무릎을 꿇고 피해 구제를 호소하고 있다. [뉴스1]

빌라왕 사건은 이미 지난해 발생했는데, 정부와 국회 모두 손 놓고 있다가 3번째 희생자가 나오니까 늑장 대응에 나섰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크다.
“동의한다. 2021년 7월 제주도에서 한 임대인이 사망하며 범죄 유형이 처음 드러났을 때 발본색원한다는 자세로 이 문제에 집중했다면 지금처럼 급하게 대책을 마련하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사람이 죽기 전까지 동력을 찾지 못하는 게 현재 공직사회의 문제다. 지난해 강서구 빌라왕이 사망한 후 발의된 법안들도 계류 중이다가 최근에서야 논의되고 있다. 수사당국, 공직사회, 국회 모두에게 다 책임이 있다. 우리 사회가 성찰할 부분이다.”
근본적으로 전세사기를 막을 방안이 있을까.
“가장 중요한 건 부동산 정책을 이념이 아닌 데이터를 기반으로 설계하는 것이다. 제도적으로도 그동안 특정 주거 유형에 혜택이 너무 과하게 몰려 있었는지 점검해야 한다. 공인중개사, 감정평가사,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 관련된 사람들을 어떻게 통제할 것인지, 대출 문제는 어떻게 정비할 것인지도 고민해야 한다. 임차인이 임대인의 소유 상황과 조세 상황을 편하게 확인할 수 있도록 하는 장치도 필요하다.”
전세가 세계적으로 유례 없이 거의 한국에만 있는 시스템인데 결국 소멸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전세가 아직 우리 사회에서 유용한 제도인가.
“전세 제도는 월세-전세-매매로 이어지는 우리나라의 주거 사다리 중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사건으로 인해 굉장한 충격을 받겠지만, 되도록 잘 수습해 월세에서 매매로 넘어가는 단계에서 전세를 잘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미 혜택을 보고 있는 인구가 수백만인데다 직장이나 학교 때문에 전세로 살고 싶어 하는 수요는 계속 있기 때문이다. 소멸하려는 힘이 시장에서 작동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되도록 천천히 소멸되는게 바람직하다고 본다.”

영호남 정치인들, 총선 1년 앞두고 번개같이 특별법 협치

‘포퓰리즘 파이터’라는 별명을 가진 윤 전 의원은 최근 여야가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 기준을 현행 500억원에서 1000억원으로 완화하는 국가재정법 개정안에 합의한 점도 비판했다.

기준액이 20년 넘게 유지돼 상향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있는데.
“우리가 그 정도의 재정적인 여력이 있나. 지금이 돈을 여유 있게 써도 된다는 신호를 보낼 때인가. 금액 보다도 기준을 완화하는 신호를 보내는 것 자체가 문제다. 고령화가 심화되며 앞으로 젊은 세대가 져야 하는 공공 부담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돈을 아껴 쓰고 효율적으로 쓰겠다는 신호를 보내야 할 상황에 세금을 펑펑 쓰는 모습을 보이면 젊은 세대가 얼마나 화가 나고 희망을 잃겠나. 더구나 총선을 1년 앞둔 시점이 아닌가. 표심을 얻으려는 게 너무 노골적이다.”
대구·광주 신공항 문제로도 설전이 오가고 있다.
“공항은 건설비, 관리 운영비 모두 다 중앙 정부가 100% 부담한다. 관리 운영비라도 지자체에서 분담한다면 규모라도 고민을 할텐데 정부가 다 부담하니 지역에서는 고민할 필요가 없다. 군산 공항 1㎞ 옆에 지은 새만금 공항이나 대표적인 실패 케이스로 꼽히는 울진, 양양, 무안 공항에 누가 공감을 하겠나. 미래가 힘들어질 게 뻔히 보이는 상황에서 건설적인 걱정을 하는 게 아니라 ‘교통 시설이 생기면 지역이 발전한다’는 과거 사고방식으로 평소 얼굴도 잘 안보는 영호남 정치인들이 번개같이 협치해 견제받지 않고, 검토하지 않아도 되는 특별법을 만드는 게 얼마나 이기적인가.”
지역균형발전을 위해 중앙정부가 부담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그 말도 맞는 말이다. 우리나라는 지금 수도권에 모든 자원이 집중돼있다. 서울 경기에 2000만명이 산다. 부가가치가 대부분 여기에서 창출된다. 이런 구조가 오래 지속되면서 지방 소멸의 문제가 나온 것이고, 지방 소멸을 막기 위해 지역 도시의 활성화는 중요하다. 냉정하게 얘기하자면 부의 재분배가 지역 차원에서 일어나야 하는 것이다. 수도권 시민이 낸 세금이 다른 지역에 쓰여야 한다는 의미인데, 그렇다면 국민에게 돈을 효율적으로 필요한 곳에 잘 쓰고 있다는 믿음을 줘야 세금 재분배가 설득이 되고 공감을 하고, 사회적 합의가 이뤄질 수 있지 않겠나.”
총선이 1년 남았는데.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있을 뿐만 아니라 고민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아직 생각을 안하고 있다.”

정치의 본질을 ‘국민들을 위해 장기적으로 중요하고 필요한 결정을 이끌어내는 것’이라고 정의한 윤 전 의원은 마지막으로 이와 같이 말했다.

“사기 사건 피해자들에게 세금으로 보증금을 복구시켜주겠다고 희망고문하는 좌파포퓰리즘도 저열하지만, 재정건전성을 표방한 보수정부가 이들과 손잡고 지역토목공사에 세금을 퍼붓는다면 보수당 역시 우파표퓰리즘에 불과하다는 역사적 평가에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세금을 제대로 검토하지 않고 철지난 공항·철도사업에 쏟아 붓는다면 임대차법을 밀어붙여 젊은이들을 절망으로 몰아넣은 전 정부와 다를 것이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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