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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세컷칼럼

'이승만 기념관' 자리, 용산공원 어떨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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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정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을 지낸 독립운동가 이승만(1875~1965) 전 대통령을 기리는 '(가칭) 이승만 대통령 기념관' 건립 논의에 속도가 붙고 있다. 박민식 국가보훈처장이 지난달 26일 이 전 대통령 탄생 148주년 기념식에서 "진영을 떠나 업적을 재조명할 때"라고 선언했고, 보훈처가 '국가유공자법'을 근거로 기념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고 공식 발표했다. 국회에 따르면 보훈처는 기념관 신축을 위해 내년부터 3년간 설계비와 건축비로 약 460억원을 책정할 것이라는 소식이다.

 반면 기념관을 놓고 벌써 뒷다리 잡기 움직임도 감지된다. 좌파 진영 일각에서 이 전 대통령 기념관 건립을 왜 행정안전부가 아니라 보훈처가 주관하는지, 왜 건립 비용이 460억원이나 되는지 등을 놓고 어깃장을 놓고 있다. 소위 진보 진영이 주도한 전직 대통령들의 기념관에 국민 세금이 얼마나 들어갔는지 역으로 따지자는 얘기가 아니다. 반대를 위한 반대는 소모적이고 국론분열만 초래하기 때문이다.

 이 전 대통령을 아직도 친일파라는 협소한 잣대로 매도하는 것은 시대착오다. 독도를 지키기 위해 동해에 이승만 라인을 전격적으로 선포할 만큼 항일 독립운동에 몰두한 이 전 대통령이었다. 또 반공포로 석방, 북진통일론 등 미국을 상대로 '벼랑 끝 전술'을 구사해 국익을 극대화한 그는 용미(用美)주의자였다. 친미 비판은 과도한 '이승만 죽이기'에 가까울 뿐이다.

 기념관 건립 소식을 누구보다 반기는 원로가 있다. 서강대 총장과 KBS 이사장을 역임한 손병두(82) 대한민국역사와미래 상임고문이다. 경복고를 졸업한 그는 1960년 4·19혁명 당시 서울대 상대 1학년생으로서 선배들과 함께 경무대(현 청와대) 근처까지 행진하며 "부정선거 반대"를 외쳤다.

 그는 당시 경험 때문에 오랫동안 '이승만=독재자'라고 이해했었지만, 4·19혁명 50주년이던 2010년 칠순 무렵에 생각이 달라졌다고 한다. 이 전 대통령이 20대 청년 시절 독립협회 활동 와중에 고종 황제의 미움을 사면서 종신형을 선고받고 한성감옥에서 집필한 『독립정신』을 읽은 것이 계기였다. 그때부터 그는 오늘의 풍요로운 대한민국이 가능하도록 만든 위대한 지도자로 이 전 대통령을 재인식하게 됐다.

 손 고문은 지난해 '이승만 VR 기념관'도 만들었다. 젊은 세대가 이 전 대통령을 재평가할 공간을 마련해줘야겠다는 취지에서다. 지난달 이영일 전 국회의원 등 4·19혁명 세대 원로 50여 명이 처음으로 국립서울현충원 이승만 대통령 묘소를 참배하고 역사적 화해를 선언하는 데도 큰 역할을 했다.

독립운동가·건국대통령 재평가
국가보훈처, 3년 내 신축 추진
외국군 주둔지, 자주·독립 상징

 손 고문은 이 전 대통령의 업적으로 ①항일 독립운동 헌신 ②한반도 최초의 자유민주주의 공화국 건국 ③유엔의 '정부 승인' 이끈 외교력 ④의무교육제 도입 ⑤남녀평등 투표권 부여 ⑥토지개혁 결단 ⑦한·미 동맹(상호방위조약) 체결 ⑧한·미 원자력협정 체결 ⑨시장경제시스템 도입 등을 꼽았다.

 이처럼 많은 공적을 남긴 이 전 대통령을 기리는 기념관 하나 없는 현실을 생각하면 대한민국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민망하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정부가 주도하되 민간의 자발적 기부를 포함해 제대로 된 '이승만 기념관'을 지어야 한다.

 주의할 것도 있다. '박정희 대통령 기념관' 건립 과정에서 빚어진 시행착오를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 이번에 정부가 건립추진위원회를 별도로 구성해 국민 공감대와 여론을 수렴하기로 했다니 바람직한 방향이다. 추진위원장에 호남 출신으로 대법관·감사원장을 역임한 김황식 전 총리가 내정됐다고 한다. 100명 정도로 구성될 추진위에 신망 있는 각계 인사가 참여해야 할 것이다.

 기념관 자리는 보훈처와 서울시가 협의 중이다. 다양한 제안이 쏟아지고 있다고 한다. 이 전 대통령의 사저 이화장과 그가 다닌 배재학당은 보존이 필요한 유적이다. '이건희 미술관'이 들어설 송현동 부지도 거론된다. 여러 아이디어 중에 용산공원에 눈길이 간다. 역사적으로 몽골군·왜군·청군·일본군이 주둔했고, 주한미군이 빠져나간 용산공원은 자주·독립 회복의 상징성이 큰 공간이라서다.

 미국은 백악관 남쪽에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을 기념해 '워싱턴 기념탑'을 세우고 제퍼슨 기념관과 링컨 기념관을 그 옆에 배치했다. 이를 모델로 이승만 기념관을 용산 대통령 집무실 인근에 세우면 어떨까. 매입 비용이 절약되고 남산-대통령실-이승만기념관-현충원으로 이어지는 '국가보훈 축'이 형성된다. 이 전 대통령은 ‘공팔과이'(功八過二)’라는 평가를 받는다. 기념관에는 공적과 함께 과오도 나란히 전시해 역사의 균형 감각을 살렸으면 한다.

글 = 장세정 논설위원 그림 = 안은주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