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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톤 ‘서브2’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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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송지훈 기자 중앙일보 스포츠부 차장
송지훈 스포츠부 차장

송지훈 스포츠부 차장

마라톤은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며 성장한 스포츠다. ‘건강한 신체, 건강한 정신’을 표방한 고대 올림픽 정신을 구현한 종목으로, 1896년 근대올림픽 출발부터 함께해왔다. 페르시아군에 승리한 소식을 전하려 마라톤 평원을 쉬지 않고 달린 그리스군 전령의 투혼에서 유래했다는 스토리가 덧입혀지며 ‘올림픽의 꽃’으로 자리 잡았다.

현재의 공인거리(42.195㎞)를 처음 적용한 건 1908년 런던올림픽부터다. 당시 2시간55분대에서 출발한 최고 기록은 110여 년이 흐르는 동안 2시간 1분대까지 단축됐다. 흔히 ‘마의 벽’이라 표현하는 인간의 한계 또한 같은 기간 동안 점점 앞당겨졌다.

20세기 초반만 해도 ‘인간의 신체 능력으로 마라톤에서 달성 가능한 최고 기록은 2시간30분’이라는 생각이 과학 지식처럼 통용됐다. 1936년 베를린올림픽에서 한국인 손기정이 2시간29분12초2로 기존 통념을 허문 이후 마의 벽은 2시간10분으로, 다시 2시간으로 조금씩 당겨졌다. 현재 세계기록은 지난해 9월 베를린마라톤에서 엘리우드 킵초게(케냐)가 기록한 2시간1분9초다.

‘서브2’(sub 2·마라톤 풀코스를 2시간 이내로 주파하는 것)는 마라톤을 넘어 지구촌의 스포츠계 공통의 도전 과제다. 이를 위해 선수들뿐만 아니라 의·과학자, 스포츠용품 업체들이 최적의 주법과 체력 관리법, 식품 및 의약품, 장비(마라톤화) 등을 찾아내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하고 있다.

지난 2019년엔 ‘서브2’를 실현하기 위한 특별한 실험도 있었다. 킵초게 주위에 7인 1조의 페이스메이커를 배치해 바람의 저항을 최소화하고 레이저 포인터로 2시간 주파에 해당하는 속도를 표시했더니 1시간59분40초라는 경이적인 결과가 나왔다. 인위적 설정 탓에 공인 기록으로 인정받진 못했지만 인간이 신체 능력만으로 2시간 장벽을 허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찾게 됐다.

지난 24일 또 하나의 낭보가 날아왔다. 런던마라톤에 참가한 켈빈 키프텀(케냐)이 2시간1분25초로 우승하며 역대 2위의 기록으로 ‘서브2’의 문턱에 다가섰다. 고독한 도전을 이어가던 킵초게에게 훌륭한 라이벌이 등장한 셈이다. 이 세상의 모든 기록은 깨지기 위해 존재한다. 인류가 그려온 꿈의 수치가 눈앞으로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