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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형량보다 세져도 6년형…한푼 없이 3400채 '빌라의 신' 최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해 12월 '주택 1139채를 보유하다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고 사망한 일명 '빌라왕' 김모씨 사건 피해 임차인들이 27일 오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국토교통부 앞에서 피해 상황을 호소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12월 '주택 1139채를 보유하다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고 사망한 일명 '빌라왕' 김모씨 사건 피해 임차인들이 27일 오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국토교통부 앞에서 피해 상황을 호소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연합뉴스

30대 직장인 A씨는 2020년 가을 자취 집을 얻었다. 경기 구리시에 있는 140가구 규모의 신축 오피스텔이었다. 집을 소개한 이들은 “집주인이 전세보증보험에 가입해서 안전한 집”이라고 A씨를 안심시켰다. 풀옵션 조건이 마음에 들었던 A씨는 2억500만원을 주고 2년간 전세계약을 맺었다. 그런데 중개인 등은 전세금을 집주인인 권모씨(50대)가 아닌 건축주에게 보내라고 요구했다. A씨가 의심하자 이들은 “집주인이 계약금으로 10%를 걸어놨고, 잔금을 전세금으로 내는 거니 문제없다”고 설득했다.

A씨가 전세 사기를 의심하게 된 건 계약 만료를 3~4개월 앞둔 지난해 언론 보도를 통해서였다. 집주인 권씨는 자신의 돈은 한 푼도 들이지 않고 임차인이 지불한 보증금으로 해당 주택을 매입하는 ‘무자본 갭투자’로 전국에 3400여채의 집을 소유한 이른바 ‘빌라의 신’ 일당 중 한 명이었다. A씨가 사는 오피스텔의 60가구가 권씨 일당 소유였다. A씨가 “전세계약 연장을 하지 않을 테니 보증금을 돌려달라”고 요구하자 권씨에게선 “집 시세보다 2000만원 올려서 부동산에 내놓으라”는 문자메시지만 돌아왔다. 하지만 권씨가 세금을 체납하면서 부동산이 압류돼 현재까지 거래되지 않고 있다.

빌라의 신 일당, 검찰 구형보다 높은 징역 5~8년

판사 이미지. 중앙포토

판사 이미지. 중앙포토

 결국 권씨 일당은 2020년 4월부터 2021년 2월까지 오피스텔이나 빌라 등의 임대차보증금 액수가 매매대금을 웃도는 이른바 '깡통전세' 임대차 계약을 체결하는 수법으로 총 31명으로부터 70억여원을 편취한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수사 과정에서 권씨의 명의로 된 휴대전화 번호가 적힌 전세 계약이 1000여건 넘게 확인되면서 ‘빌라의 신’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조사 결과 권씨는 1245채, 박씨와 최씨는 900여채, 260여채의 오피스텔 등을 소유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재판 과정에서 “오피스텔 등을 분양받을 당시 임대차 보증금을 반환할 의사나 능력이 있었지만, 부동산 세금이 증가하고 경기도 급격히 악화해 반환하지 못했을 뿐이지 피해자들을 속일 의사는 없었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그러나 검찰은 지난 18일 열린 이들의 결심 공판에서 최씨에게 징역 7년, 권씨 등 2명에게 징역 5년을 구형했다.

수원지법 안산지원 형사2단독 장두봉 부장판사는 25일 권씨를 포함한 일당에게 모두 검찰 구형보다 높은 징역형을 선고했다. 장 부장판사는 권씨에게는 징역 6년형, 최모씨(40대)에게는 징역 8년 형, 박모씨는 징역 5년형을 선고했다.

장 판사는 “피고인은 이 사건 오피스텔을 분양받을 당시부터 피해자들에게 임대차 보증금 등을 반환할 의사나 능력이 없음에도 이들을 기만해 임대차 보증금을 지급하도록 하고, 그러면서 분양대금 지급을 면하는 재산상 이익을 얻은 점이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또 “서민층과 사회 초년생들로 이뤄진 피해자들의 삶의 기반을 흔든 매우 중대한 범행”이라며 “피해자들은 피해 복구가 이뤄지지 않았다며 피고인들에 대한 엄벌을 탄원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피해자들 “더 무거운 형량 선고해야”

 그러나 피해자들은 “법원이 더 무거운 형량을 선고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피해자 B씨는 “권씨 등이 검찰 구형량보다는 높은 형을 선고받았지만, 피해자들도 많고, 최대 징역 15년까지 받을 수 있는 만큼 더 처벌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피해자 C씨는 “계약 당시 국세와 지방세납입 증명서 등을 요청해 받았는데 이들이 ‘납부하겠다는 의사를 표현했다’는 것만으로 관련 기관에서 ‘완납’이라고 서류를 떼줬다”며 “국가를 상대로 소송이라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권씨 일당에 대한 경찰 수사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경기남부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는 이들이 300여명의 전세보증금 600억여원을 빼돌린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경찰은 지난해 10월 권씨 일당 5명을 구속하고 이들을 도운 부동산 중개인 등 137명을 불구속 입건해 검찰에 넘겼다. 경찰 관계자는 “추가 확인된 피해도 단계적으로 검찰에 송치해 이들에게 더 중한 처벌이 내려지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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