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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소설 어둡지만 재미있대요” 해외홍보사 차린 작가 셋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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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한국 문학을 전 세계에 홍보하고, 작가들이 직접 해외 출간 과정에 참여하기 위해 지난해 ‘에이전시 소설’을 세운 (사진 왼쪽부터 순서대로)편혜영, 윤고은, 이홍 작가. [사진 손홍주, 드크레센조 출판사]

한국 문학을 전 세계에 홍보하고, 작가들이 직접 해외 출간 과정에 참여하기 위해 지난해 ‘에이전시 소설’을 세운 (사진 왼쪽부터 순서대로)편혜영, 윤고은, 이홍 작가. [사진 손홍주, 드크레센조 출판사]

“한국 소설은 어둡고 무겁지만, 놀라우리만치 재미있습니다.”

네덜란드의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맨부커상 후보에 올랐던 얍 로벤(Jaap Robben)은 한국 소설에 대해 이같이 평했다. 지난달 28일 네덜란드 라이덴 대학에서 한국 단편소설 낭독회가 열렸다. 편혜영(51), 이홍(45), 윤고은(43) 작가는 현지 독자와 작가, 언론·출판 관계자 등 80여명 앞에서 자신들의 단편소설을 차분히 읽어 내려갔다.

편혜영 작가의 ‘통조림 공장’을 접한 네덜란드 출판사 ‘드 게스(De Geus)’의 편집자는 “어둡고 섬뜩한데 인간의 면면이 발화될 때 강렬한 유머와 아이러니가 있다”며 극찬했다. 이홍 작가의 ‘50번 도로의 룸미러’가 낭독될 때는 얍 로벤 작가가 연신 무섭다는 몸짓을 취해 객석의 웃음을 자아냈고, 윤고은 작가의 ‘부루마불에 평양이 있다면’ 낭독 직후엔 부동산이라는 현실적인 소재에 공감한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이번 낭독회는 지난해 여름 편혜영·이홍·윤고은 세 작가가 의기투합해 꾸린 ‘에이전시 소설’의 사실상 첫 프로젝트였다.  작가들이 직접 에이전시를 차리고, 작품 관리에 나서는 것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흔치 않은 일이다. 낭독회 이후 진행한 서면 및 전화 인터뷰에서 세 작가는 “저서의 해외 출간과 관련해 크고 작은 문제를 함께 상의해왔던 작가들끼리 그 경험을 유의미하게 모아보자는 데 뜻을 맞춰서 에이전시 형태로 만들었다”고 취지를 밝혔다.

‘에이전시 소설’은 번역, 출간, 영상 제작 등 다양한 방식으로 해외에 우리 문학을 알리고 홍보한다. 편혜영 작가는 “작품이 작가의 손을 떠나 해외 독자를 만나기까지, 그 과정과 구조에 대해 적극적으로 알고 싶은 마음이 컸다”면서 “작품의 관리 주체가 되면 해외 출간이라는 긴 여정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영국 대거상(번역추리소설 부문)을 수상한 윤고은 작가는 “기존 출판사나 에이전시에 (해외 출간·홍보 등을) 맡기는 것보다는 에너지가 많이 든다”면서도 “다만, 작가가 직접 참여하면 아무래도 작가의 입장에서 생각하게 되고, 그만큼 소개하는 작품에 작가의 입장이 더 잘 반영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점차 지역과 분야를 확장해 나가는 중이다. 지난달 네덜란드 낭독회로 시작해 이달엔 프랑스의 대학교, 영상 관계자 등을 대상으로 한국 소설을 주제로 한 설명회를 진행했다. 5월에는 스페인의 대학교와 출판사를 대상으로 한국 소설을 홍보할 계획이다.

지난달 28일 네덜란드 라이덴 대학에서 열린 한국 단편소설 낭송회. [사진 라이덴대학]

지난달 28일 네덜란드 라이덴 대학에서 열린 한국 단편소설 낭송회. [사진 라이덴대학]

현재 프랑스 남부에서 출판사 관계자들과의 만남을 이어가고 있는 이홍 작가는 “네덜란드 낭독회 이후 현지 출판사 한 곳이 우리 작품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보이면서, 두 작품을 동시에 계약하는 성과로도 이어졌다”면서 “해외의 출판 분위기를 생생히 체감할 수 있다는 점도 큰 수확이었다”고 말했다.

해외에서 보는 한국 문학의 매력은 뭘까. 네덜란드 낭독회 이후 얍 로벤 작가는 “한국 단편소설이 어둡고 비관적이기는 하지만 동시에 유머러스한 면이 있다”고 총평했고, 마논 업호프 작가 역시 “모르고 지나칠 수 있었던 한국 소설들을 이번 문학 교류를 통해 읽게 돼 의미가 크다”는 감상을 밝혔다.

이홍 작가는 “유럽권, 특히 프랑스의 출판·영화 관계자와 작가들이 한국 단편소설에 대해 ‘매우 아름답다’ ‘신선하다’ 며 큰 관심을 보였다”면서 “장편뿐 아니라 단편소설 또한 적극적으로 소개할 수 있겠다는 기대를 갖게 됐고, 단편소설이 가장 한국적인 문학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윤고은 작가 역시 “한국 단편소설의 완성도는 전 세계에서 톱(top)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에이전시 소설’이 한국 단편소설의 미학을 전 세계에 알리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국내든 해외든 ‘읽고 쓰는 것’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겐 공통의 DNA가 있다”면서 “이러한 공통된 코드 안에서 영상 등 다채로운 방향으로 한국 문학을 즐기는 방법을 엮어 보려고도 고민하는 중”이라고 했다. 이들은 매해 국가를 특정해 국제 문학 교류를 이어가고, 작품과 맞는 편집자·출판사·콘텐트 관계자와의 징검다리 역할을 해 나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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