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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기도 확인했는데 실소유주 따로” 부산 43세대 눈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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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입주 두 달도 안 돼 건물이 경매에 넘어간다는 법원 안내장을 받았습니다. 등기상 소유자만 확인하고 계약한 건데 알고 보니 진짜 건물 주인이 따로 있었어요.”

부산에 사는 20대 오피스텔 전세사기 피해자는 24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법적 소유자와 실소유주 모두 책임을 회피해 막막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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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입자는 지난해 8월 부산시 부산진구에 있는 오피스텔(47세대)에 입주했다. 계약기간 2년, 보증금 8500만원 중 90%는 중소기업청년전월세보증금 대출로 마련했다. 그런데 9월 말께 건물 전체가 경매에 넘어간다는 소식을 들었다.

대응책을 고심하며 건물주와 접촉을 시도하던 40여 세대 세입자는 건물의 실소유주가 따로 있다는 기막힌 사실을 알게 됐다. 등기부등본상 소유자는 A씨였다. 계약 때 나선 대리인 또한 A씨 위임장을 보여주며 계약서를 썼다. 하지만 오피스텔 관리인 등을 통해 파악한 결과 건물 실소유주는 B씨며, A씨 채무 문제로 인해 건물이 경매에 내몰렸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A, B씨 사이엔 건물을 사고팔되 등기는 옮기지 않는다는 이면(裏面) 합의가 있었다. 이들이 맺은 ‘부동산 매매에 의한 권리양도양수’ 계약서를 보면 계약이 된 건 2020년 7월이다. 계약서에는 매도자 A씨의 양도소득세 문제로 인해 매수자인 B씨가 당장은 소유권 이전을 하지 않는다는 합의 내용이 담겼다. A씨에게 양도소득세 감면 요건이 발생할 것으로 보이는 2023~2025년 사이 명의를 이전하는 조건이었다. 이 기간 A씨는 건물에 대한 권리행사나 제삼자 매각, 담보대출 등은 하지 않기로 했다. 전세 등 임대업을 위해 A씨가 행정·금융 등 업무에서 B씨에게 협조하며, 임차료를 받을 수 있는 전 용계좌와 도장 등을 B씨에게 양도한다는 조건도 포함됐다.

이 같은 합의에 따라 세입자들은 실소유주 B씨 존재를 알지 못한 채 전세 계약을 했다. 피해자로 파악된 43세대가 돌려받지 못할 전세보증금은 39억원으로 추산된다. B씨는 부산진구에 또 다른 오피스텔(69세대·피해 추정액 50억원)도 소유하고 있다.

세입자 일부는 A, B씨가 계약 단계에서 소유자를 제대로 고지하지 않는 등 세입자들을 속였다며 경찰에 고소장을 냈다. 법무법인 상지 곽경도 대표변호사는 “세입자 처지에선 B씨 정보를 전혀 확인할 수 없어 깜깜이 계약이 이뤄졌다”며 “실소유주가 따로 있는 만큼 A, B씨 책임을 모두 따지는 소송을 진행해야 해 세입자가 법적 대응을 하려면 훨씬 어렵고 시간도 오래 걸릴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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