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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결혼 어떡하죠" 전세금 날린 20대, 중개사 없이 직거래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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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2월과 6월 경남 창원의 한 빌라형 원룸에 사는 전세사기 피해자 김모(20대)씨가 집주인에게 보낸 문자메시지. [사진 전세사기 피해자 김모씨]

지난해 2월과 6월 경남 창원의 한 빌라형 원룸에 사는 전세사기 피해자 김모(20대)씨가 집주인에게 보낸 문자메시지. [사진 전세사기 피해자 김모씨]

20대 사회초년생 울린 전세 사기


“제 인생 첫 전세계약이었는데…결혼할 여자친구 부모님께도 말씀 못 드리고 너무 막막합니다.”

경남 창원에 사는 전세 사기 피해자 김모(20대)씨가 24일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한 말이다. 김씨는 사회초년생이다. 대전에 살다가 창원에 IT계열 직장에 취업하면서 창원 마산합포구 한 빌라형 원룸(다가구주택·11가구)에 입주했다. 2021년 2월 일이었다.

당시 그는 42㎡(약 13평) 크기 원룸을 계약 기간은 2년, 전세보증금 8000만원에 계약했다. 이 중 7000만원(90%)은 중소기업청년전월세보증금 대출로 마련했고, 나머지 1000만원은 부모 손을 빌렸다. 전세보증금은 향후 결혼할 때 목돈으로 쓰려 했다. 김씨는 수년간 교제한 연인이 있는 수도권 지역으로 이직할 계획이었다.

공인중개사 없이 직거래 '화근' 

24일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한 빌라형 원룸. 세입자 6명은 전세사기 피해로 건물주 등을 경찰에 고소했다. 안대훈 기자

24일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한 빌라형 원룸. 세입자 6명은 전세사기 피해로 건물주 등을 경찰에 고소했다. 안대훈 기자

그런데 김씨 계획이 틀어지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3월부터였다. 건물 전체가 경매에 넘어갔단 소식을 접하면서다. 부동산등기부등본에서 확인된 금융권 근저당 등 채권 금액만 8억5000만원이었다. 하지만 전세권 설정이나 임차인 설정을 하지 않은 미지급된 전·월세 보증금이 더 있단 소문도 돌았다. 게다가 해당 건물은 세금 체납으로 김씨가 계약한 지 8개월 뒤인 그해 10월 창원시가 압류까지 걸어 놓은 상황이었다.

계약 당시 공인중개사 중개 없이 건물주 남편 A씨와 직거래한 김씨는 이런 사정을 확인하지 못했다고 한다. “우리 건물은 전세금 떼일 염려가 전혀 없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A씨 말만 믿었다. 이 빌라형 원룸 건물은 지난 3월 최저가 11억9000여만원으로 1회 경매에서가 진행됐지만 유찰됐다. 다음달부터 최저가액이 8억8000여만원(2회), 7억1000여만원(3회), 5억6000여만원(4회) 순으로 경매가 진행될 예정이지만, 부동산 경기 침체로 경매 낙찰률은 계속 떨어지는 상황이다.

김씨는 “4억원이 넘는 금융권 근저당에 먼저 배당되고 이후 선순위 채권자들에게 돈이 갈텐데, 저는 가장 뒷순위여서 사실상 돈을 못 돌려받을 것 같다”며 “신용불량자가 될까 겁나고 미래 계획이 모두 틀어졌다”고 울상을 지었다.

선순위 채권자 전세보증금 지급했다더니…  

지난해 2월 경남 창원의 한 빌라형 원룸에 사는 전세사기 피해자 서모(40대)씨가 집주인에게 보낸 문자메시지. [사진 전세사기 피해자 서모씨]

지난해 2월 경남 창원의 한 빌라형 원룸에 사는 전세사기 피해자 서모(40대)씨가 집주인에게 보낸 문자메시지. [사진 전세사기 피해자 서모씨]

공인중개사 중개로 해당 빌라형 원룸에 입주했다가 피해를 본 이들도 있었다. 김씨보다 1년 앞서 2020년 2월 빌라형 원룸(2년 전세 계약·전세보증금은 6000만원)을 계약한 서모(40대)씨다. 서씨는 건물주 남편 A씨와 계약할 때 공인중개사를 거쳤다. 해당 건물에 금융권 근저당이 4억2000만원 잡혀 있었지만, 건물가(당시 10억원) 대비 50% 아래였다. 다만, 각 6000~8000만원 가량 전세권을 설정한 선순위 채권자가 여럿 있어 우려되긴 했다고 서씨는 기억했다.

서씨는 “(A씨가) 전세권 설정한 사람들은 이미 보증금을 지급했고, 등기 신고만 안 된 것이라고 말했다”며 “옆에 있던 공인중개사도 A씨 말에 보조를 맞춰서 걱정하지 말라고 저를 안심시켰는데, 현실은 그게 아니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어 “그때 당시 계약을 중개한 공인중개사 사무실을 찾았지만, 이미 문을 닫았다”며 “대학생 자녀가 있는데 등록금도 못 줘서 아이가 아르바이트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전세 사기 피해자 6명 고소

전세사기 고소가 접수된 경남 창원의 한 빌라형 원룸의 전세계약을 중개한 공인중개사 사무실. 현재는 다른 가게가 들어서 있다. 안대훈 기자

전세사기 고소가 접수된 경남 창원의 한 빌라형 원룸의 전세계약을 중개한 공인중개사 사무실. 현재는 다른 가게가 들어서 있다. 안대훈 기자

해당 빌라형 원룸에 사는 세입자 6명은 지난 2월 법적 건물 소유자와 그의 남편, 그리고 공인중개사와 중개보조원을 각각 사기와 공인중개사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이들의 피해 금액은 4억8000만원으로 파악됐다. 경찰 관계자는 “일부 피고소인은 불러 조사했다”며 “수사 중인 사항이라 자세한 이야기는 해줄 수 없다”고 말했다.

경남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7월부터 지난달 말까지 진행된 특별단속에서 전세사기 37건이 적발돼 49명이 검거됐다. 전세사기 범죄유형은 허위 보증·보험, 깡통전세 등 보증금 미반환 사례였던 것으로 파악됐다. 같은 기간 전국에선 2188명을 검거하고 209명을 구속했다. 확인된 피해자는 1705명, 피해 금액은 3099억원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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