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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한한령 악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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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최현주 기자 중앙일보 기자
최현주 증권부 기자

최현주 증권부 기자

6년 전이다.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출입문 옆에 ‘인위이해 소이등대(因为理解  所以等待)’라는 중국어 포스터가 걸렸다. 이 포스터는 백화점 주요 장소에 배치됐고 잠실 롯데백화점, 명동 세븐일레븐 소공점에도 등장했다. 모두 중국인 관광객이 몰렸던 곳이다. 해당 문구는 ‘당신을 이해합니다. 그래서 기다립니다’라는 뜻이다. 당시 롯데는 한국 정부의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때문에 곤욕을 치르고 있었다. 다급한 마음에 국내 매장에 홍보물을 부착했다.

2016년 9월 정부는 사드 부지로 경북 성주군에 있는 롯데스카이힐 성주CC를 지정했다. 중국은 즉각 보복에 나섰다. 한류를 금한다는 ‘한한령’(限韓令)이다. 중국은 ‘한국 기업 때리기’에 나섰고, 롯데가 첫 번째 타깃이 됐다. 중국 롯데마트는 1년 내내 소방점검·세무조사 등 불시 단속에 시달렸고, 112개 매장이 문을 닫는 지경에 이르렀다. 중국 선양·청두에 짓던 복합단지(연면적 44만평)인 롯데타운 공사도 중단됐다.

당시 정권을 넘겨받은 문재인 정부는 중국의 경제보복 조치를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겠다고 했다가 “지금은 북한 핵 도발로 중국과 협력을 유지해 나가는 것이 중요한 시점”이라며 하루 만에 태도를 바꿨다. ‘국가 간 풀어야 할 숙제’라며 숨죽이고 있던 롯데는 결국 1년 만에 중국에서 완전히 철수했다. 손해액이 10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됐다. 이마트, 한국 화장품·식품업체 등도 줄줄이 철수했다. 한한령은 최근까지 계속됐다. 2017년 이후 국내 게임업체는 판호(게임 허가권)를 받지 못해 중국에 신작을 선보이지 못했다. 영화 상영, K팝 공연이 중단된 것은 물론이다.

지난 19일 윤석열 대통령이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대만 해협 문제에 대해) 힘에 의한 현상 변경에 절대 반대하는 입장”이라고 밝히자 중국 당국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한국을 향한 표현 수위가 매우 거칠다. 코로나19 족쇄가 풀리면서 게임·드라마·관광 등에서 한한령 해제에 대한 기대감이 커진 상황에서 또 다른 악재가 되지 않았으면 한다. 경제계에선 ‘제2의 한한령’마저 걱정하고 있다. 삐걱대는 정치·외교에 경제·문화가 휘청대는 ‘콜래트럴 데미지(collateral damage)’는 더 이상 없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