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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매수권 준다는데…"빌라 전세 아예 없애라" 전문가 한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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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여당이 전세 사기 피해자에게 거주 주택 경매 시 우선매수권을 주고, 낙찰 때 세금 감면과 저리 대출 혜택을 제공한다. 세입자가 이를 원치 않으면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그 집을 매입함으로써 그대로 살 수 있도록 한다.

정부와 국민의힘은 23일 당정협의회에서 이런 내용을 골자로 한 ‘전세 사기 피해자 지원 및 주거안정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에대해 ‘반쪽짜리 대책’이라고 지적하는 전문가가 많다.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이 2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전세 사기 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주현 금융위원장, 빅 의장,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한동훈 법무부 장관. 김성룡 기자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이 2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전세 사기 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주현 금융위원장, 빅 의장,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한동훈 법무부 장관. 김성룡 기자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당정은 특별법을 통해 피해 임차인의 주거권을 보장하겠다”며 “현재 거주하는 임차 주택을 낙찰받기를 원하는 분에게는 우선매수권을 부여해 ‘내 집’을 마련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피해 세입자에게 살던 집이 경매에 넘어갈 경우 우선 매수할 수 있는 권리를 준다는 것이다. 집을 살 의사는 없지만, 살던 집에 계속 거주하고자 하는 피해자에겐 LH가 매입임대제도를 활용해 그 집을 사들일 계획이다. 세입자가 우선매수권을 포기할 경우 LH가 대신 행사하는 격이다.

매입임대제도는 LH가 기존 주택을 사들인 뒤 개·보수해 무주택 청년·신혼부부에게 시세보다 30~50% 싸게 빌려주는 사업이다. 2년 단위로 계약을 갱신해 최장 20년까지 거주할 수 있다.

부동산 전문가는 당정 협의안에 대해 “방향은 맞지만,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우선매수권 도입이 대표적이다. 예컨대 전세 사기 피해 주택이 감정가 1억원으로 경매에 올라와 응찰자가 경합을 벌이면 낙찰가가 1억3000만원까지 뛸 수 있다. 최고가 낙찰제가 적용되기 때문이다. 우선매수권을 써도 비싼 가격에 집을 사야 하는 셈이다.

기존 보증금을 건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우선매수권을 행사해도 선순위 채권자들이 배당을 받은 뒤 차례가 돌아오기 때문에 피해 세입자는 한 푼도 돌려받지 못할 수 있다.

고준석 제이에듀투자자문 대표는 “대항력이 없는 세입자의 경우 전세 대출로 마련한 전세금을 떼이고, 그 집을 사기 위한 자금도 대출을 받든 추가로 부담해야 한다”며 “실효성이 큰 제도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LH의 매입임대제도도 세입자의 거주권 확보 측면에선 긍정적이지만, 피해 보증금을 보전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전세 사기 피해 주택의 범위가 불명확하고, 역전세난으로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한 다른 세입자와 형평성 문제가 불거질 가능성이 있다. LH가 매입할 피해 주택 기준과 범위 등 세부 내용은 국토교통부 내 심의위원회에서 결정된다.

고준석 대표는 “제2, 제3의 전세 사기를 막으려면 근본적 대책이 필요하다”며 “아파트를 제외하고 선순위 권리가 있는 빌라, 오피스텔 등은 전세를 아예 놓지 못하게 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전세 사기 피해자에게 무이자 장기 대출을 지원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김진유 경기대 도시교통공학과 교수는 “피해자를 위한 구제기금을 조성해 돈을 무이자로 10~20년간 빌려줄 필요가 있다”며 “그래야 기존에 전세 대출받은 보증금을 갚고 LH에 임대료를 내는 등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말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전세대출을 받은 세입자의 주거 안정을 위해 이자 후불제나 이자 유예제도를 도입하는 방안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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