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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반도체 놓칠라…G7유일 中일대일로 참여 이탈리아 이탈 조짐

중앙일보

입력

지난해 11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서 조르자 멜로니(왼쪽) 이탈리아 총리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만나 악수를 나누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지난해 11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서 조르자 멜로니(왼쪽) 이탈리아 총리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만나 악수를 나누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주요 7개국(G7) 중 유일하게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육상·해상 실크로드)에 참여했던 이탈리아가 프로젝트에서 이탈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반도체 산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대만과의 협력이 절실한 이탈리아가 대만 측에 일대일로 참여를 철회할 수 있다는 뜻을 밝혔다고 블룸버그통신이 1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이탈리아 산업부 관계자들은 반도체 생산·수출 분야 협력 증진을 위해 최근 타이베이에서 대만 정부 측과 비공개 회담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이탈리아 산업부 관리들은 “최종적으론 조르자 멜로니 총리가 결정할 문제이지만, 이탈리아는 중국의 일대일로 사업에 참여했던 것을 기꺼이 철회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잔카를로 조르제티 경제 장관도 지난 14일 일대일로 참여와 관련해 “중국과의 무역 관계에서 보다 신중해야 한다”고 밝히며 이탈 가능성을 시사했다.

지난 2013년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지시로 시작돼 올해로 출범 10주년을 맞은 일대일로는 중국이 대규모 인프라를 짓거나 자본을 투자하며 여러 나라와 경제·외교 관계를 강화해 온 정책이다. 육상 실크로드(중앙아시아~유럽)와 해상 실크로드(동남아시아~중동~아프리카~유럽~남미)를 건설해 해당 국가들과 중국과의 경제 공동체를 표방해 왔다.

지난 2019년 시진핑(왼쪽) 중국 국가주석과 주세페 콘테 이탈리아 총리가 로마에서 열린 일대일로 양해각서(MOU) 서명식을 마친 뒤 악수하고 있다.EPA=연합뉴스

지난 2019년 시진핑(왼쪽) 중국 국가주석과 주세페 콘테 이탈리아 총리가 로마에서 열린 일대일로 양해각서(MOU) 서명식을 마친 뒤 악수하고 있다.EPA=연합뉴스

개발도상국을 중심으로 일대일로 사업을 벌여온 중국으로선 G7 국가 중 유일한 참여국인 이탈리아의 존재가 가볍지 않다. 지난 2019년 3월 주세페 콘테 당시 이탈리아 총리는 이탈리아를 국빈 방문한 시 주석과 에너지·항만·항공우주 등 분야의 협력을 강화하는 걸 골자로 하는 양해각서(MOU)를 맺고 일대일로 참여를 공식화했다.

블룸버그는 “이탈리아의 일대일로 참여는 미국과 미국의 동맹국들과 갈등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매우 상징적인 가치가 있다”며 “멜로니 총리가 일대일로 참여 철회를 결정하지 않는다면 양국 간 협약은 2024년에 자동 갱신된다”고 전했다. 이탈리아로서도 중국과의 무역 거래와 관광 수입 등을 고려하면 일대일로 참여 철회가 부담스러운 일이다.

지난 2021년 피아트의 모기업 스텔란티스가 운영하는 이탈리아 투린 공장의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2021년 피아트의 모기업 스텔란티스가 운영하는 이탈리아 투린 공장의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그럼에도 이탈리아가 노선 변경을 시사한 것은 그만큼 반도체가 중요해서다. 유럽연합(EU)은 지난 18일 총 430억 유로(약 62조원)를 투입해 EU의 반도체 산업을 육성하는 반도체법 시행에 합의했다. 이탈리아 역시 이 같은 EU의 흐름에 동참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독일과 함께 유럽의 대표적인 자동차 제조업 강국인 이탈리아는 반도체에 대한 수요가 높다.

반도체 생산 능력이 부족한 이탈리아로선 세계 최대 반도체 생산 업체인 TSMC 같은 대만 기업과의 협력 강화가 필수적이다. 실제로 현재 독일 작센주 드레스덴과 유럽 내 첫 생산공장 건설을 놓고 협의 중인 TSMC는 지난해엔 이탈리아를 공장 후보지로 고려하기도 했다. 이탈리아는 미 반도체 회사 인텔과 지난해 북동부 베네토주 비가시오에 신규 반도체 공장을 건설하기로 합의했다.

지난해 9월 대만 신주현에 있는 대만 반도체 연구소에서 한 직원이 관련 시설에 들어가기 전 사물함을 열어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해 9월 대만 신주현에 있는 대만 반도체 연구소에서 한 직원이 관련 시설에 들어가기 전 사물함을 열어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이탈리아는 지난해 10월 반중성향이 강한 멜로니 총리의 취임을 전후해 친 대만 움직임을 보여왔다. 멜로니 총리는 지난해 9월 총선 직전 대만중앙통신사와 인터뷰에서 이탈리아의 일대일로 참여 결정에 대해 “큰 실수”라고 평가하면서 자신이 총리가 되면 일대일로에서 탈퇴하겠다고 말했다. 한달 뒤인 10월 대만 에바항공은 타이베이-밀라노 항공노선을 취항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에바항공의 밀라노 취항은) 대만 항공사가 25년 만에 유럽 시장에 진출한 것”이라고 전했다. 같은 해 11월엔 이탈리아와 대만 의회가 친선협의회를 구성했다.

이탈리아는 대만이 밀라노에 설치를 요구한 ‘밀라노-타이베이 사무소’(辦事處·판사처)도 용인할 분위기다. 연합보 등 대만언론에 따르면 대만 외교부는 구체적인 개설 시기를 밝히지 않았으나 판사처 개설 준비가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판사처는 경제분야에 치중한 비공식 외교채널이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대사관과 총영사관 역할을 한다. 밀라노에는 세계 주요 국가들이 총영사관을 두고 있다.

다만 실제 멜로니 총리가 일대일로 이탈을 결행할지는 확실하지 않다. 멜로니 총리는 취임 이후 중국의 대만 정책을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일을 자제하는 등 신중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달 초 일부 이탈리아 의원들이 대만을 방문하려던 계획도 막판에 취소되기도 했다. 블룸버그는 “미국 등 주요 국가들이 멜로니 총리의 최근 친미 성향 발언이 사실인지 확인하기 위해 이탈리아의 일대일로 참여 철회 여부를 주시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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