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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루만 되면 힘 솟는 간큰 남자 이의리

중앙일보

입력

KIA 타이거즈 왼손투수 이의리. 연합뉴스

KIA 타이거즈 왼손투수 이의리. 연합뉴스

만루에서 강타자를 만나면 더 힘이 솟는다. '간 큰 남자' 이의리(21·KIA 타이거즈)가 시즌 초반 기세를 이어가고 있다.

19일 부산 롯데 자이언츠전에서 선발로 나선 이의리는 0-0으로 맞선 3회 말 위기를 맞았다. 김민석에게 안타를 내준 뒤, 안권수의 내야 안타, 고승민의 볼넷까지 나오면서 무사 만루에 몰렸다.

하지만 중심 타선을 만난 이의리는 괴력을 발휘했다. 잭 렉스와 전준우, 안치홍을 공 12개로 삼진 처리했다. 렉스에겐 떨어지는 슬라이더를 뿌렸고, 전준우와 안치홍은 시속 150㎞ 안팎의 강속구를 던져 헛스윙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KIA 타선이 4회 초 5득점을 했고, 5와 3분의 2이닝 3안타 3볼넷 8탈삼진 무실점한 이의리는 시즌 2승째를 추가했다.

낯설지 않은 장면이다. 이의리는 지난해 9월 24일 NC 다이노스전에서 세 타자 연속 볼넷을 준 뒤 박건우·양의지·닉 마티니로 이어지는 중심타선을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다음 등판인 10월 4일 잠실 LG 트윈스전에서도 4-2로 앞선 5회 1사 만루에서 김현수와 채은성을 각각 유격수 뜬공과 3루수 땅볼로 잡아냈다. 당시에도 빠른 공으로 압도했다.

이의리는 "만루가 되면 조금 많이 간절해지고 집중력도 올라가는 것 같다"며 "형들이 평상시에도 그렇게 무사 만루라고 생각하고 던지라는데, 아예 느낌이 달라서 쉽지 않다"며 웃었다.

실제로 이의리는 만루가 되면 더 강해진다. 올 시즌 만루에서 6명의 타자를 상대했는데 모두 아웃카운트를 이끌어냈다. 주자별 통산 피안타율도 만루시(0.154)에 가장 낮다. 삼진율도 37.8%로 제일 높다. 2021년 데뷔 이후 한 번도 만루 홈런을 맞은 적이 없다. 밀어내기 볼넷도 3개 밖에 주지 않았다.

만루에만 잘 던지는 투수는 아니다. 이의리는 올해 4경기에서 2승 1패 평균자책점 1.93을 기록중이다. 탈삼진(22개)은 키움 안우진(39개), NC 에릭 페디(29개)에 이은 3위다. 볼넷이 많아 조기강판된 지난 9일 두산전(3이닝 2실점)을 제외하면 꾸준히 좋은 투구를 하고 있다.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 다녀온 대표 선수들이 힘들어하는 걸 감안하면 더욱 의미있다.

WBC 당시 이의리는 전광판에 시속 155㎞를 찍었다. 정규시즌 평균 구속은 146.2㎞(스탯티즈 기준)로 7위에 해당한다. 국내 왼손 투수 중에선 가장 빠르다. 문동주, 김서현(이상 한화), 안우진 등 우완 강속구 투수들의 활약에 가려졌지만, 이의리도 무서운 공을 뿌리고 있다.

이의리는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지 않느냐는 물음에 "오히려 다른 선수가 저를 보고 그렇게 느낄 것이다. 우진이 형이나 동주는 저보다 월등하게 빠르니까 딱히 신경은 안 쓰인다. 대신 왼손 중에는 제가 제일 빠르니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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